'3저호황'으로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취업은 '따논 당상'이던 1980년대 후반. 번듯한 직장 대신 시장통을 선택한 사내가 있다. 김동석 명일농산 대표(53)는 지게꾼으로 시작해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직원 30여 명을 거느리고 연간 3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거상이 됐다. 서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만난 김 대표는 장사를 시작하게 된 동기부터 지금의 사업체를 일군 비결까지 막힘없이 풀어냈다.
◆시장 짐꾼이던 휴학생이 300억 거상으로
![]() |
↑ 서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장사하는 김동석 명일농산 대표. [사진 = 한경우 기자] |
돈 버는 데 재미를 붙인 김 대표는 복학을 잠시 미뤘다. 하지만 28년이 지난 지금도 건국대에는 복학하지 못했다. 대신 생산지와 소매점(마트·식당)을 연결하는 국내 양상추 도매 유통시장의 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시장점유율 5%가 작아 보일 수 있지만, 국내에서 유통되는 농산물 절반 정도가 거쳐는 가락시장의 양상추 취급 상인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물론, 김 대표도 처음엔 초라했다.
"1년에 쉬는 날이 설날과 추석 딱 이틀이던 가락시장에 1990년부터 격주 휴무일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컴퓨터도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않았던 그 시절에 시민들이 그걸 알 리가 없죠. 휴무일이 생긴 걸 몰랐던 시민들이 시장에 찾아오는 걸 보고 일하던 점포에서 과일을 떼 노점을 차렸습니다. 하루 팔면 한달치 월급이 벌리더라고요."
하지만 김 대표는 노점 장사를 몇주만에 접어야 했다. 민원을 접수한 서울시가 노점을 단속했기 때문이다. 뒤이어 김 대표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지금은 하역원이라 불리며 지게차를 운전하고 있는 리어카 짐꾼이었다. 당시 한 달 일하고 집에 가져가는 돈이 300만원에 달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그 사람이야 고정적으로 일을 맡기는 상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나는 한 달 일하고 약 150만원을 벌었다"며 "그래도 적은 돈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짐꾼 생활도 금방 끝났다. 시장에 발을 들였으면 장사를 배우는 게 좋지 않겠냐는 선배의 조언을 김 대표가 수긍해서다.
리어카 짐꾼을 그만두고 양상추 상인의 점원이 된 김 대표의 한 달 벌이는 70만원이었다. 수입이 반토막난 것. 하지만 그는 5년여 동안 점포 직원 생활을 견디며 장사를 배웠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장은 지난 1996년 1월 1일 사업체를 김 대표에게 넘겨줬다. 이 사업체가 김 대표를 가락시장 내 양상추·브로콜리 대표 상인으로 거듭나게 한 발판이다.
◆"상품 가격 매긴다는 자부심으로 힘든 생활 버텨"
"그 때 모셨던 사장님은 장사보다 농업 쪽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벌려놓은 장사 때문에 기회만 보고 있었죠. 당시 거래처로부터 받아야 할 미수금이 7억5000만원 정도 있었는데, 장사로 돈을 벌어 몇 년동안 사장님한테 갚기로 하고 제가 사업체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사업체가 들어가 있던 점포도 샀어요."
김 대표가 점원 시절 모시던 사장은 무엇을 믿고 그에게 사업체를 넘겼는지 궁금해졌다. 김 대표는 처음엔 "성실했기 때문"이라고만 말했다. 그래서 당시 가락시장 상점 점원들의 생활을 물어봤다.
"보통 오후 2~3시쯤 출근해 일하고, 퇴근해 집에 도착하면 10~11시였습니다. 시장 화장실에서 쪽잠을 자며 버텼죠. 경력이 쌓이면서 거래를 주도할 수 있게 됐는데, 상품의 가치를 제가 직접 매긴다는 생각에 신이 나더라고요. 물론 가격을 아무렇게나 제시하는 건 아니에요."
상품 가격을 제대로 매기려면 그날 시장에 들어오는 물량, 생산지에서 수확 대기 중인 농산물의 물량과 생육 현황, 손님이 물건을 사용하려는 용도 등을 꿰고 있어야 한다. 가격을 잘못 제시하는 실수가 반복되면 거래는 끊기게 마련이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김 대표는 직원 시절부터 상품 반입이나 손님 방문이 뜸한 시간에 짬을 내 자전거를 타고 시장을 돌았다고 한다. 다른 점포는 어떻게 장사하는지, 물량을 누구에게 얼마나 받는지를 보기 위해서다. 사장이 되고 나서도 자전거를 타고 시장을 배회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자연스레 생산자·구매자·동료 장사꾼 등을 아우르는 거래선이 넓어졌다.
김 대표는 "농산물 장사꾼의 진짜 실력은 흉년일 때 드러난다"며 "물건이 없을 때 손님이 원하는 물건을 가져오는 게 그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려울 때 이를 해결해 준 거래처와는 신뢰가 쌓이는 법. 이 신뢰가 삼성웰스토리, 아워홈, CJ푸드빌 등 현재 명일농산의 거래처들을 만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노하우나 실력 쌓은 과정, 말로 설명할 수 없어"
현재 청년들이 맨손으로 가락시장에 들어와 자신만큼 성공할 수 있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했다. 최근 가락시장 상인 2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다 아버지 사업체를 물려받는 일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금수저(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을 말하는 신조어)들 말고, '맨손'으로 들어오는 사람 기준이 맞냐"고 재차 물었는데도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농산물 유통의 니은(ㄴ)자도 모르고 입사한 점원들에게도 중견기업 수준의 보수(월 급여 기준 세후 250만~300만원)를 줍니다. 낮밤이 바뀌고 근로시간이 10시간에 달하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죠. 경력에 따라 월급이 400만~500만원 수준까지 오르는 직원들도 있어요. 그쯤까지 버티면 선택해야 돼요. 독립해서 자기 장사를 할지, 아니면 월급쟁이로 남을지. 몇 년 전 내가 사업체를 물려받은 것처럼 내 밑에 있던 직원에게 사업을 물려주려 했는데, 자기 사업체를 차려서 독립하더라고요. 지금은 규모가 꽤나 커졌어요."
그가 어떻게 성공했냐고 묻자 김 대표는 또 "성실하게", "열심히"라는 말만 반복했다. 대한민국 기성세대들이 청년들에게 강요하는 '노오력'이란 단어가 생각나 불쾌했다. 자신에게 오는 말이 퉁명스러워지자 김 대표도 퉁명스럽게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하냐"고 받아쳤다. 그리고 거래가 이뤄지는 과정을 사계절에 비유해 설명했다.
"생산자에게 물건을 받아 품질 별로 나누는 게 봄, 이를 판매하고 거래처 사업장에 배달하는 게 여름, 수금하는 게 가을, 생산자에게 대금을 치르는 게 겨울입니다. 크게 나눠서 이래요. 각 계절 사이에 벌어지는 돌발 상황과 부대껴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설명합니까? 어깨 너머로, 몸으로 배우는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각 상황에 따라 느낌으로 장사하죠. 농산물 장사는 그래요."
이 같은 이유로 김 대표는 "알파고(구글이 만든 인공지능 프로그램)가 와도 농산물 장사는 사람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상인들끼리 경쟁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인공지능이 모두 배울 수도 없고, 배우더라도 그것을 순간적으로 상황에 맞게 계산해 실행에 옮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세계를 주름잡던 바둑기사들도 처음에는 알파고(구글이 만든 AI 프로그램)와의 대국에서 승리를 자신했지만, 무참하게 패배했다. 심지어 세계 1위인 중국의 커제 9
그럼에도 장사에서만큼은 인공지능이 인간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김동석 대표. 30여 년 장사꾼 인생을 바탕으로 한 그의 예상이 맞아떨어질지 시간을 두고 지켜볼 요량이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