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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진 한양대 신경과 교수. [사진 = 한경우 기자] |
흔히 '필름이 끊겼다'고 표현하는 블랙아웃 현상은 혈중 알코올이 뇌 부분 중 이성적 판단과 기억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키면서 발생한다. '어쩌다 한 번'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한국에서 대학·사회생활을 하면서 '어쩌다 한 번 음주'는 쉽지 않다.
지난 10일 한양대병원 신경과 진료실에서 만난 김희진(44) 교수는 "한국 사회는 세계적으로 음주량이 많다"며 "이로 인해 죽은 뇌신경세포는 복구할 수 없지만, 관리하면 뇌신경세포들을 연결해주는 시냅스를 강화해 뇌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사회생활을 유지하려면 완전히 술을 끊기는 힘들다. 그나마 뇌손상을 줄이거나 회복시킬 방법으로 김 교수는 ▲뇌신경세포 강화에 필수적인 비타민 B1·B12와 충분한 물·음식 섭취 ▲꾸준한 운동을 제시했다. 특히 20~30대 젊은 세대들에게 운동을 강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운동은 유산소 운동과 근력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유산소 운동은 혈액순환을 촉진해 알코올이 체내에서 빨리 빠져나가도록 돕고 뇌에 혈액 공급을 원활하게 하면서 손상된 뇌를 회복시킨다.
근력운동을 통해 근육량이 늘면 대사량이 커져 알코올이 빨리 분해된다.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알코올성 질환 위험이 절반 정도로 낮은데, 이는 근육량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그가 젊은 세대에게 운동을 강조한 이유는 식욕을 일으키는 호르몬 작용이 중장년층 이상 연령대보다 상대적으로 활발해 술 마신 다음날 식사를 거를 가능성이 낮아서다.
알코올 자체도 열량이 상당해 술 마신 다음날 식욕이 떨어진다. 술 마신 뒤 식사를 하지 않으면 뇌에 영양분 공급이 되지 않아 뇌의 구조적 손상을 부른다.
실제 김 교수가 치료하고 있는 50대 여성은 몇 년 동안 식사를 거르면서 술만 마셔 체중이 28kg까지 줄은 상태에서 급성 알코올성 치매 증상으로 병원에 왔다. 당시 눈동자를 움직이지 못하고 가족도 못 알아봤다고 한다. 자기공명영상(MRI)에는 뇌의 크기가 줄었고 곳곳에 뇌 손상 소견이 보였다.
김 교수는 비타민 B1·B12와 엽산 등을 투여해 뇌의 구조는 어느 정도 회복시켰지만 여전히 뇌기능이 정상인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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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를 거르고 장기간 과음하면서 급성 알코올성 치매 증상이 생긴 50대 여성 환자(왼쪽)와 정상인(오른쪽)의 뇌사진. 뇌 사이의 검은색 공백은 뇌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뇌척수액이 찬 것을, 흰색이 선명한 부분은 알코올로 인한 뇌신경세포가 파괴된 것을 각각 나타낸다. [자료 제공 = 한양대병원] |
과음이 장기간 이어지면 뇌의 물리적 형태도 변한다. 먼저 알코올은 뇌하수체의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한다. 멜라토닌은 수면을 돕는 호르몬으로 수면 사이클이 망가지면 휴식을 취하지 못한 뇌의 크기가 작아진다.
또 분해되지 못한 뇌척수액이 물주머니를 형성하면서 뇌를 짓누르기도 한다. 보통 성인은 하루 500ml의 뇌척수액을 생성·분해하면서 100~150ml를 유지한다. 알코올은 혈관 장애를 일으켜 뇌척수액 분해 작용을 지연시켜 머릿속 뇌척수액 양을 늘린다.
하지만 자신도 음주량이 적지 않다고 토로하는 김 교수는 알코올성 치매에 대해 지나친 공포를 가질 필요는 없다는 듯이 말했다. 최근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병원을 찾는 젊은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 실제 알코올성 치매 진단을 받는 사람은 약 1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 장기간 과음으로 인해 뇌신경세포가 파괴돼도 시냅스를 다시 활성화시키면 정상 생활이 가능하다. 김 교수는 "뇌의 구조적 변화가 꼭 기능적 손상을 수반하지 않는다"며 "사람은 뇌의 10~15%만 쓰고 살기 때문에 손상된 뇌신경세포 대신 다른 뇌신경세포가 기능을 대신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희진 교수는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신경과학 석·박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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