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대우조선해양에 초대형 유조선(VLCC) 5척을 발주하면서 선대 확장에 나섰지만, 해운업계 안팎에선 컨테이너선을 발주하지 않은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년 전 몰락한 한진해운을 대신해 한국 해운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당위에는 맞지 않아서다. 하지만 유조선을 갖고 있으면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 현대상선 입장에서는 올바른 결정이라는 반론도 있다.
5일 조선·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과 대우조선은 전날 VLCC 10척(옵션 5척 포함)를 건조하기로 하는 본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상선이 적극적으로 선대확장에 나선 것은 무역보험공사·수출입은행·산업은행 등이 선박신조 지원 프로그램(일명 선박펀드) 추진 구조에 합의한 덕이다. 선박펀드는 민간과 국책 금융기관들이 각각 60%와 40%의 돈을 내 구성했다. 선박대금을 먼저 치르고 용선료를 받아 수익을 내는 구조다.
당초 현대상선이 선박펀드를 활용해 유조선 건조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해운업계 안팎에서는 컨테이너선 대신 유조선을 발주한 데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한진해운의 몰락으로 무너진 건 컨테이너선 경쟁력인데 엉뚱하게 유조선을 발주했다는 이유에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을 도와줄 때는 정책적 목표에 맞게 도와줘야 한다"며 "당초 정부는 한진해운의 몰락으로 무너진 컨테이너 정기선 경쟁력을 살리겠다며 해운산업 지원 정책을 내놨지만 유조선은 이와 관련이 없다"고 비판했다.
앞서 현대상선은 한진중공업이 필리핀 수빅조선소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있는 1만10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2척을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선두권 해운업체들이 2만TEU급 이상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발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절반 규모의 대형 컨테이너선 2척을 인수한 게 경쟁력이 될지는 의문이다.
다만 이번 유조선 발주가 현대상선의 경영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됐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유조선을 발주한 게 현대상선의 경쟁력 강화에 분명 도움이 된다"며 "정부에서 배를 사주는 모양새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유조선을 활용할 장기 운송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전제를 붙였다. 이에 대해 현대상선 관계자는 "현재 (장기 계약을 맺기 위해) 여러 곳과 협의 중에 있다"고 전했다.
정책 목표에 맞지 않는 유조선을 발주했다는 비판에 대해 현대상선 측은 컨테이너선 발주를 포기한 게 아니라 적절한 타이밍을 재고 있다는 해명을 내놨다. 회사 관계자는 "아직까지 세계 해운업계의 컨테이너선 과잉 공급이 해소되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선복량만 늘리면 결국 적자 규모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선복 과잉 공급이 해소될 때를 맞춰 컨테이너선을 발주하기 위해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조선 선대를 구축해 장기계약까지 맺어두면 회사 입장에서는 또 다시 위기가 찾아왔을 때 안전판이 될 수 있다고도 현대상선 측은 주장했다. 장기 계약이 돼 있는 유조선은 안정적으로
현대상선 관계자는 지난 2010년대 이후 시작된 해운업계 장기 불황에서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벌크선 사업부를 매각해 현금을 마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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