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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벤틀리] |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만끽하게 해주니 당연히 가격은 비싸다. '억억억' 소리는 기본이다. 당연히 영국 왕실, 중동 부호, 헐리웃 스타 등 VVIP가 주요 고객이다.
벤틀리는 폼 나는 명차이기에 도로에 나서면 '황제' 대접을 받는다. 도로에 나타나면 다른 차들이 알아서 비킨다. 아스팔트는 레드카펫이 된다. 험한 길을 달리는 험한 꼴도 겪지 않는다. 꽃길만 달려온 셈이다.
꽃길만 걷던 벤틀리는 2010년대 들어 고민에 빠지게 된다. SUV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면서 스포츠카 분야에서 명성을 쌌던 포르쉐에 이어 재규어까지 SUV를 내놨기 때문이다.
벤틀리도 이에 2012년 스위스 제네바모터쇼에서 콘셉트 EXP 9F를 공개하며 SUV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다. 그 결과물이 지난해 출시된 벤테이가(Bentayga)다.
차명은 지구 북반구에 넓게 펼쳐진 세계 최대의 침엽수림 타이가와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에 있는 봉우리 로크 벤테이가에서 영감을 받았다. 꽃길에서 벗어나 거친 숲과 산맥까지 점령하겠다는 벤틀리의 야심이 느껴진다.
벤테이가는 명차 브랜드 벤틀리의 첫 번째 SUV답게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강력한 고품격 SUV'를 목표로 만들어졌다. 영국 크루 공장에서 장인들의 수작업과 첨단 설비를 통해 300시간에 한 대씩 제작된다.
외모는 스포티한 콘셉트를 위해 원형 헤드램프를 채용하고 장식을 배제한 스타일을 지향했다. 전반적으로 웅장하면서도 정갈하다.
전면부에서는 다른 벤틀리처럼 4개의 원형 LED 헤드램프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안쪽 두 개는 헤드램프, 바깥쪽 두 개는 주간주행등이다. 번쩍이는 은색의 매트릭스 그릴은 1920년대 벤틀리의 상징이었던 높고 큰 사각형의 철망을 두른 라디에이터 그릴의 유전자를 이어받았다.
앞바퀴를 감싼 펜더는 알루미늄 패널로 이음새 없이 성형해 만들었다. 직사각형 리어램프에는 벤틀리 엠블럼 'B' 형태의 일루미네이션 그래픽이 들어있다. 머플러는 가로가 길고 세로가 좁은 타원형이다. 외모를 얼핏 본다면 벤틀리 플라잉스퍼를 위로 잡아 늘린 것같다.
실내에서는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내부는 천연 우드와 가죽으로 럭셔리의 극치를 표현했다.
크루 공장에는 목공 58명이 벤테이가에만 쓸 나무를 가공한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나무를 구하는 별도 팀도 있다. 실내 표면은 목공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만든 15개의 베니어 마감재로 장식됐다.
가죽에도 공을 들였다. 서늘한 유럽에서 자란 황소의 가죽을 쓴다. 모기에 물린 자국이 거의 없어 깨끗하고 가죽이 처지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시트는 결이 고운 가죽을 사용한 뒤 벤틀리 고유의 다이아몬드 퀼팅 박음으로 마감했다.
앞 좌석시트는 22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다. 온열·통풍 기능은 물론 6가지 마시지 기능도 갖췄다. 센터페시아 상단에는 명품 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이 제작한 아날로그 시계가 장작됐다.
어쿠스틱 유리를 채택한 파노라마 선루프는 천장 면적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넓어 시원한 개방감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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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벤틀리] |
앞좌석에 앉으면 감촉 뛰어난 시트가 몸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시동버튼을 누른 뒤 시트와 스티어링휠을 조절하다 문득 시동이 다시 꺼진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하이브리드카처럼 조용했기 때문이다.
드라이브 모드는 온·오프로드 모드 합쳐 8가지다. 온로드 모드는 커스텀, 컴포트, 벤틀리, 스포츠 4가지다. 벤틀리 모드는 벤테이가에 최적화된 세팅이다. 오프로드 모드는 눈과 풀, 흙과 자갈, 산악, 모래 4가지로 구성됐다.
서킷에서는 컴포트 모드와 스포츠 모드 2가지를 사용했다. 출발은 컴포트 모드로 시작했다. 가속페달에 발을 놓은 뒤 힘을 살짝 줬을 뿐인데 길이가 5m 이상이고 무게가 2.4톤 이상인 거구가 가볍게 움직였다.
스티어링휠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코너 구간에서는 높이가 1.7m 이상인 차체가 좌우 흔들림없이 안정적으로 진입한 뒤 빠져나왔다. 코너를 돌 때 몸 쏠림 현상도 거의 없었다.
고속 구간에서는 스포츠 모드를 선택한 뒤 가속페달을 밟았다. 발에 힘을 주는 순간 망설임 없이 내달린다. 발진가속도(시속 0→100km 도달시간)는 4.1초에 불과하다. 'SUV 탈을 쓴 슈퍼카'로 마력(馬力)이 아니라 마력(魔力)을 발산한 셈이다.
다만, 귀로 짜릿한 속도감을 맛보게 해주는 배기음은 굉장히 억제돼 아쉬웠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스포티함 대신 '안락하면서 스포티한 승차감'을 추구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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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벤틀리] |
드라이브 모드를 오프로드 산악 모드로 바꾸면 디스플레이에 지상고, 경사, 바퀴 조향 각도, 방위, 고도 등의 정보가 나온다. 롤링 코스에서 한쪽 바퀴가 접지력을 잃으면 다른 바퀴로 구동력을 옮겨줘 편안하게 탈출할 수 있었다. 사면 코스에서는 차체가 30도 가량 비스듬한 상태에서도 제어력을 잃지 않았다.
오프로드 코스 압권은 언덕 코스다. 오르막에 진입한 뒤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는 주차할 때 주로 사용하는 360도 어라운드 뷰를 작동하면 된다. 전방 모드를 선택하면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차체 앞쪽 풍경이 디스플레이에 나온다.
언덕 중간에 멈추면 밀림방지 장치가 작동해 차체가 뒤로 밀리지 않는다. 언덕에 올라간 뒤 내리막 주행제어장치를 작동하자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 없이 차가 알아서 저속으
벤테이가는 꽃길에만 안주하지 않겠다는 벤틀리의 야심작이다. 길 이어도, 길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각오도 느껴진다. 단 3억4900만원에 달하는 럭셔리 SUV로 험한 꼴을 경험하려면 간이 커야 한다.
[최기성 디지털뉴스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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