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오늘(2일) 한국을 '백색 국가(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2차 경제 보복을 감행하면서 한일 간 '경제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닫게 됐습니다.
지난달 초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1차 경제 보복 조치 이후 한국 정부와 국민이 거세게 반발하고 최근에는 미국까지 자제를 촉구했지만, 일본은 결국 양국 간 갈등에 기름을 부어 불길을 더 키운 것입니다.
우리 정부가 이미 여러 차례 일본에 대한 총력대응을 공언한 데다, 일본 정부도 추가적인 보복 조치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만큼 이미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받는 한일 관계는 한층 격한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한미일 동맹이 깨지길 원치 않는 미국이 중재 움직임을 보이는 데다, 일본 내에서 일본 기업과 관광 업계가 역풍을 맞는다는 비판 여론이 높아지는 만큼 일본 정부는 당분간 속도 조절을 하며 추가 공격을 삼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일본 정부가 그동안 두차례 단행한 무역 규제 강화 조치는 한국 대법원이 작년 10월 이후 내린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입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보복'이 아니라고 누차 주장했지만, 일본 내에서도 이를 수긍하는 시각은 극히 드뭅니다.
일본 정부는 작년 10월 한국 대법원이 전범기업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에 대해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게 1억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린 뒤 줄곧 징용 '보상'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해결이 끝난 일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이후 비슷한 판결이 잇따랐지만, 일본 정부와 보조를 맞춘 전범기업들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판결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가 이미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명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청구권 협정에 기초한 2국간 협의, 중재위 설치 등을 제안하며 보복 조치의 명분을 쌓아왔습니다.
또한, '삼권분립 하에 법원의 판결과 판결의 이행에 개입할 수 없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해결책을 제시하라고 우리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이어 지난달 이후 강행한 경제 보복 조치는 한국과 국제 사회는 물론 일본 내부에서도 '국제 정치와 무역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깼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지난달 4일 첫 보복 조치 이후 "일본이 중시해온 자유무역의 원칙을 왜곡했다"(마이니치신문), "국제정치의 도구로 통상정책을 이용하려는 발상"(니혼게이자이신문), "자유무역의 원칙을 왜곡하는 조치"(아사히신문) 등의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 우치다 마사토시(內田雅敏) 변호사 등 일본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지난달 말부터 '한국이 적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걸고 수출 규제 철회 촉구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을 잇달아 강행한 배경에는 '한국 때리기'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첫 경제 보복 조치를 발동시킨 지난달 4일은 같은 달 21일 투개표가 실시된 참의원 선거의 선거운동 개시일이었습니다.
자민당은 선거의 후보자들에게 유권자들을 만날 때 한국에 대한 규제 강화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라는 지침을 내리며 한국 이슈를 선거에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공적 연금의 보장성 논란과 소비세 인상 문제 같은 여권에 불리한 이슈가 묻히며 여권은 과반 의석 획득이라는 승리를 거뒀습니다.
아베 총리가 선거 끝났음에도 이날 두 번째 보복을 단행한 것은 한국에 대한 공격을 계속해 보수층을 계속 자신의 편에 묶어 두면서 오랜 야심인 개헌을 추진하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아베 정권을 중심으로 한 개헌 세력은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 발의선인 전체 의석의 3분의 2 확보에 실패해 '2020년 개헌 달성'이라는 목표가 좌절될 가능성이 크지만, 집착은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일본 임시국회 개원 첫날인 전날 자민당 중·참의원 의원총회에서 "엄중함이 증가하는 국제정세 안에서 국익을 지켜나가 헌법개정 등 곤란한 문제를 한 몸이 돼 다뤄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엄중함이 증가하는 국제정세'는 강제징용 문제와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를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 상황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한일 갈등 상황을 내부 결집에 활용해 개헌 논의를 가속하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입니다.
아베 총리는 2021년 9월까지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지만, 임기의 후반으로 갈수록 정권의 구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가 이르면 올해 연말 열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상황이어서 '한국 때리기'는 장기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일본이 적어도 당분간은 추가적인 보복 조처를 하지 않고 속도 조절을 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한일 갈등 상황이 한미일 동맹에 해가 될 것이라고 보는 미국이 일본에 확전 자제를 요청하고 있는 데다, 일본 내에서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가 일본 기업과 관광업계에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차 보복 조치 후 반도체와 전자제품의 공급망을 훼손해 일본 기업이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일본 내 비판 여론은 이번 조치가 더 광범위한 규제라는 점에서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에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과 일본 여행 안 가기 운동이 거세지고 있는 것도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입니다.
규슈 등 한국 관광객이 자주 찾던 지방 관광지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일본 정부가 내세운 '2020년 인바운드(해외에서 일본을 찾는 관광) 관광객 수 4천만명' 목표가 달성되지 못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지방 관광 경기의 악화는 중의원 총선거를 앞둔 자민당 입장에서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압박 요인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여부입니다. 협정의 유효기간은 1년인데, 기한 만료 90일 전인 오는 24일까지 협정 종료 의사를 통보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1년이 연장되는 까닭에 한국 정부는 이 시한 이전에 협정 종료를 일본에 통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미 간 화해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북한이 여전히 발사체 발사를 하며 도발하는 상황에서 아베 정권 입장에서 GSOMIA의 파기는 국내 정치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향후 일본 정부의 추가 보복 조치 여부를 결정할 첫 분수령은 GSOMIA 종료 시
이와 함께 일본 정부는 소송에서 승리한 한국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의 자산을 현금화하는 시점에서 추가적인 보복 조치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추가 조치로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관세 인상, 송금 규제,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기준 강화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