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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수(Popular Singer)의 사전적 정의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가수’다. 노래를 발표하고 이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면 그는 대중가수다.
대중가수의 정의는 어떻게 왜곡됐나
‘나가수’의 근본적인 논란 중 하나는 다양한 개성과 장르의 뮤지션들이 대중들의 감동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 순위가 매겨지는 방송 프로그램 시스템에 있다. 대중의 취향과 대중의 기준과 선택이라는 점은 프로그램의 기본 철학이다.
여기서부터 대중가수에 대한 정의가 왜곡되기 시작한다. 앞서 언급했듯 ‘대중들이 좋아하는’ 가수가 ‘대중들에게 선택된 가수’ 가수로 바뀌는 것.
한 20년차 중견가수는 “과거 MBC ‘일밤’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처음 시도했을 당시 선배 가수들의 분위기는 냉담했다”며 “가수가 대중을 이끌어야지 대중을 좇고 구걸을 하면 되겠냐는 설명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동일한 콘텐츠를 가지고도 더 많은 대중들을 끌어오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것은 그 음악을 판촉하는 마케터의 영역이지 가수 자체의 역할은 아니었다.
실제로 대중음악사에서 음악은 소수의 권력에 봉사하는 위치에서 대중들에게 추앙받고 존경받는 위치로 진화하고 발전했다. 모차르트가 전자였다면 비틀즈는 후자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음악적 퀄리티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뮤지션 스스로의 자기 정체성, 자의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 실제로 ‘나가수’를 통해 재조명된 임재범의 영웅신화는 애초 그렇게 쓰여졌다.
방송은 어떻게 가수를 왜곡하나
‘나가수’는 영웅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비춰 그들을 지상으로 끌어내린다. ‘나가수’ 카메라는 가수들이 대기실에서 초조해 하고 무대로 내려올 때 다리가 풀리는 모습, 긴장해 손을 떠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이는 이 프로그램의 주체가 가수가 아니라 방송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실제로 방송의 목적은 음악의 목적과 전혀 다르다. 음악이 3~4분의 짧은 시간 동안 응집된 카타르시스를 쏟아내는 방식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방송은 이야기, 즉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데 목적이있다.
이는 전혀 별개의 영역인 듯 보이지만 최종적으로 방송이라는 콘텐츠를 만드는 주체의 의도나 태도와 음악이라는 콘텐츠를 만든 주체의 그것이 상반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음악이 주는 감동이 방송이라는 콘텐츠가 비추는 스토리(사생활이나 주변 상황들)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임재범의 ‘너를 위해’가 암투병으로 힘든 생활을 겪은 아내를 향한 ‘애가’(哀歌)가 되고 ‘여러분’이 대중들을 향한 임재범의 그리움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곡해된다면 이는 일종의 심각한 작품 훼손이 된다. 방송이 가수를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더 이상 독립된 콘텐츠로서의 가수도, 영웅신화도 설 자리가 없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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