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의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평일에만 10만명씩 관람한다. 현재 210만명 이상이 영화를 보고 가슴 아파했거나 분노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정치 등 모든 분야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황동혁 감독은 힘들어보였다. 잠도 깊이 들지 못하고, 모르는 번호로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화가 걸려 오며 인터뷰 요청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무겁고 어두운 영화라 흥행이 잘 될까’라는 얘기들이 있어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하시고 가슴 아파하시더라고요. 못 만들지 않았구나 생각했죠. 처음에는 좋았는데 잠깐이었고, 지금은 조금 힘들어요.”
‘도가니’는 2005년 광주 인화학교 교직원들이 청각장애 학생들을 성폭행하거나 강제 추행한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 작가 공지영씨의 동명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작품이다.
황 감독은 “어느 정도 반응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다”면서 “하지만 그 반응이 너무나 빠르다”고 조심스러워했다. “순제작비 25억원을 들여 만들었는데 이미 손익 분기점은 넘겼어요. 솔직히 이 상태로 간판을 내려도 괜찮아요. 손익분기점도 넘고 좋은 평가도 받았으니, 200만 정도만 찍고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모르겠네요.”
그러면서도 몇 가지 논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실제 사건과 극중 재판의 판결 형량(실제 사건 1심 판결은 실형, 고법 판결은 집행유예가 나왔지만 극중 판결은 1심에서 집행유예가 됐다)을 다르게 한 의도와 아동보호법 17조를 위반했다는 지적 등에 대한 것.
황 감독은 “형량을 줄인 게 판사의 판결 자체를 왜곡하고 매도하려고 한 뜻은 아니었다”며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에 1심과 2심 재판과정을 모두 넣을 수 없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징역 몇 개월에 집행유예 몇 개월이라는 판결은 그날 바로 석방되는 가벼운 형량인데 제 주변 사람들 60~70%는 잘 모르시더라고요. 그 사람들을 무죄로 만들 수는 없고, 그렇다면 숫자라도 줄여서 무척 가벼운 형량이라는 것을 보여주자는 생각이었어요.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르고 풀려날 수 있는지를 중점으로 안타깝고 분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는 또 “법정에서 재판관은 ‘검찰 측은 석방절차를 준비해주십시오’라는 영화 속 대사를 하지 않는다”며 “혹시라도 사람들이 가해자들이 징역형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할까봐 일부러 이 대사도 넣었다”고 강조했다.
아동보호법 위반 논란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했다. 아동보호를 철저히 시행하고 있는 미국에서 공부해 현장 경험이 있는 그는 “‘도가니’ 현장에서 촬영하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라고 했다.
“오히려 법적 장치가 없는 게 문제가 아닐까요? 법적 장치가 마련 돼 있다면 제작하는 사람들은 그대로만 따르면 괜찮잖아요. 미국에서는 ‘스튜디오 티처’가 있어 아이들과는 몇 시간 이상 찍으면 안 되는 것을 알려주고, 수위 높은 장면에 대해서는 판단해주거든요. 솔직히 아동보호법 위반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당황스러워요. 저희를 비난하는 것을 넘어서 시스템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데뷔작인 ‘마이 파더’(2007)는 입양아 출신 주한미군의 친부모 찾기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내리 두 편을 우리 사회 문제와 직접 관련 있는 일을 연출했다.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도를 묻자 또 솔직하다.
“서울대 신문학과(현 언론학부) 90학번인데, 80년대 후반 학번 선배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데모도 많이 했죠. 다른 사람들처럼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졌는데 어느 순간 지쳤어요. 대학 졸업할 무렵에는 뭘 할지 정하지도 못했고, 막연하게 사회적인 문제들과는 멀리 떨어져야겠다 했어요. 그런 생각으로 영화를 시작했는데 다시 사회의 한 가운데 서있게 되니 어리둥절합니다.”
그래도 그는 “이슈라는 건 다른 이슈가 생기면 대체되고, 언젠가는 이 문제가 잠잠해지겠지만 아예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뭔가를 남겼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급작스러운 관심을 받게 됐는데 이 파장이 정치적인 방패나 창으로 이용되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논의가 돼서 건설적인 방향으로 갔으면 해요. 언론과 정치인 같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할 일이잖아요. 잘 이끌어줬으면 해요.”
전작 ‘마이 파더’가 흥행에 부진해 속상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과해서 다음 작품 준비에도 고민이 많다는 황 감독. 내리 두 작품을 무거운 주제를 택하게 된 그는 일부러라도 주변에 다른 장르를 하고 싶다고 얘기하고 다닌다.
“제가 의도하지 않은 짐이 생겨버린 것 같아요. 다음 작품에는 조금 변화를 주려고요. 웃고 떠드는 코미디도 하고 싶어요. 만들 때도 그렇고, 관객들이 볼 때도 그렇고 즐겁잖아요.”(웃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 사진=팽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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