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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 4일 계획한 여행이 6박 7일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울릉도의 겨울은 불규칙한 기상악화로 뱃길이 자주 막힌다. 그럼에도 스키어들이 육지의 스키장을 뒤로하고 이곳까지 온 이유는 파우더 스노(Powder snow) 때문이다.
파우더 스노는 스키를 타기에 적합한 습도의 눈을 말한다. 푹신하면서도 부드러워 스키어나 스노보더라면 한 번 쯤 꿈꿔봤을 최고의 설질이다.
스키만 26년 째 타고 있다는 스키고수 김황한 씨는 1년을 기다린 끝에 심한 멀미를 참아가며 울릉도까지 왔다. 스키 지도자를 할 정도로 수준급 실력을 자랑하지만 나리분지에서는 넘어지고 구르며 체면을 구기는 일도 다반사다. 정비해놓은 슬로프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나리분지의 눈을 설렘, 짧지만 뜨거운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이달 초 2m 넘게 쌓인 나리분지 눈에 처음 스키를 올려놓은 일행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짜릿함을 경험했다. 눈 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와 인적 끊긴 작은 학교, 민가의 하얀 강아지는 나리분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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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기간 중 유일하게 날이 맑았던 날, 스키어들이 기다리던 진짜 산악스키를 탈 수 있게 됐다. 무거운 스키를 들고 외륜산 정상에 오른 스키어들의 행렬에 어김없이 어린 강복 군이 있었다.
그러나 스키어 한 명이 능선을 따라 걷던 중 눈이 갈라져 추락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다행히 부상은 없었으나 눈덩이에 깔렸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던 순간이었다. 외륜산의 가파른 경사가 어린 선수에게 무리라고 판단한 일행의 뜻에 따라 강복 군은 하얀 눈에 아쉬움을 묻고 돌아서야만 했다.
이들의 마지막 일정은 3박 4일 나리분지 탐험을 허락해 준 주민들에게 스키점프 묘기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기꺼이 포크레인을 이용해 묘기 준비에 도움을 준 주민들은 TV에서 나오던 장면을 실제로 보게 됐다며 아이처럼 들떴다.
주민들의 환호
설국에 펼쳐진 꿈같은 시간, 이들의 함성이 깨운 나리분지의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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