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궁: 제왕의 첩’을 만든 황 대표는 김 위원장에게 “영화를 만드는데 이렇게 도움이 되는 사업은 처음”이라고 했고, 두 사람은 10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올해 처음 도입한 ‘한국영화 개봉작 적립식 지원제도’ 얘기다. 적립식 지원제도는 개봉 실적에 따라 차기작의 기획개발비를 지원하는 제도. 기획 및 제작 역량을 갖춘 제작사들이 차기 작품을 안정적으로 준비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이에 따라 황기성사단은 차기작품인 ‘나쁜 교수’를 만드는데 6600여만원을 지원받게 됐다. 이외에도 22편이 영진위의 지원을 받아 차기작품을 만들 준비에 들어갔다.
현재 영화제작사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수익지분이 감소하고 있다. 기획개발비 외부 조달도 어렵다. 날로 높아져 가는 제작비를 충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차기 작품에 도움이 되는 건 제작자 입장에서는 크나큰 도움이다.
김 위원장은 또 영진위가 운영하는 영화발전기금이 다양한 영화전문 투자펀드의 시드머니(종잣돈)가 돼 한국 영화 제작의 근간이 되고 있다고 자부했다. 영진위는 2000년부터 영상전문투자조합 출자를 시작, 지난해 말까지 40개 영상전문투자조합에 1112억원을 출자했다. 조성된 금액은 5159억원에 달한다. 올해 흥행 10위권에 든 ‘도둑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등에 모두 영진위의 자금이 투입됐다.
영진위가 출자하는 영상전문투자조합 내 예술영화 전용펀드도 현재 170억원 정도 조성돼 있다. 영진위는 이런 방식을 이용해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피에타’의 P&A 비용에 4억원의 도움을 줬다고 밝혔다. 총 제작비가 8억5000만원 가량이니 상당한 부분 도움을 줬다는 거다.
영진위는 ‘피에타’처럼 10억~20억원 미만의 저예산 영화에 집중적으로 투자, 2015년까지 500억원 규모로 확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또 기획 단계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쉽게 영화로 제작될 수 있도록 ‘제작초기펀드’ 규모도 기존 360억원에서 2015년까지 700억원 규모로 확대한다. ‘독립영화제작지원’(7억원→2013년 12억원 규모)도 확대되고, 영화관람 소외지역을 위한 독립·예술영화 상영공간 확보도 노력 중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성과가 컸는데 경영 평가 실적이 D로 나왔다. 이전까지 영진위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하며 “외부 평가위원들이 영진위의 성과에 대해 홍보를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부끄럽지만 오늘은 자화자찬을 해야겠다”며 “한국영화가 영진위의 든든한 지원으로 번창할 수 있는 초석을 만들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영화의 성과와 변화의 노력은 김 위원장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작은 영화와 큰 영화가 공존하는 한국영화의 건강한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세운 것이 기초다. 김 위원장은 “나름대로 영진위는 욕도 먹지만, 할 일도 잘 하고 있는데 잘 안 알려지는 것 같다”며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뜻을 내비쳤다.
영화감독 출신인 김 위원장은 이날 개인적인 바람도 드러냈다. “한국영화가 가장 호황이었던 때가 2006년이었는데 올해가 더 호황이라며 한국영화 관객만 1억명을 돌파할 것 같다”고 전망한 그는 더 나아가 “중국과 합작하고, 미국에서도 활동하는 감독들이 늘어가면서 한국이 두 나라의 중간에서 서로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바랐다.
“20년 전 홍콩영화가 잘 나갈 때 홍콩영화 제작비를 한국에서 3분의 1 가량을 댔다. 올해 한국영화가 그런 상황이다. 중국 사람들이 한국영화를 공식적으로 많이 안 볼 뿐이지 불법으로는 ‘미녀는 괴로워’ 같은 경우는 프린트 1억장이 나갔다. 그런 시장의 돈을 회수해야 할 것 같다. 또 영진위가 대기업과 상생문제, 독립·예술 영화 해결을 위한 윈윈 노력을 하겠다.”
강한섭, 조희문 두 명의 전임 위원장이 불명예 퇴진했던 영진위가 새롭게 변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1년 3월 첫 임무를 맡았던 김 위원장을 수장으로 하는 영진위는 1년 6개월째 큰 마찰 없이 잘 굴러가는 중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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