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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도원(38)은 소탈한 배우다. 연예인이란 범주에 넣기보단 아직 일반인에 가까운, 사람 냄새 폴폴 나는 배우다. 송강호의 뒤를 이을 ‘생활형 카리스마’라는 찬사는 어쩌면 그의 일상에서 나오는 희로애락(喜怒哀樂)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남자, 요즘 달라진 인기를 실감하는 중인 듯 했다. 톱스타들만 나온다는 그 유명한 이동통신사 광고에 등장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아, 그 CF요? 3개월만에 잘렸지만 정말 좋았어요.(웃음) 회사 사장님이 영화 보고 저를 추천하셨대요. 한번은 영동대교 남단을 건너는데 대형 전광판에서 그 광고가 나오는데 가슴이 벅차더군요. 그거 보면서 우리끼리 ‘야~ 곽도원 출세했네’ 그랬다니까요.”
무엇보다 곽도원은 배우와 감독들이 인정하는 배우로 떴다. 올해만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러브픽션’ ‘점쟁이들’ ‘분노의 윤리학’ ‘베를린’ 등에 줄줄이 출연했다. 흥행 면에서도 안타 이상이다. ‘신스틸러’라는 애칭은 그냥 생겨난 게 아니다. TV 드라마에서도 그를 원했다. 소지섭과 함께 출연했던 ‘유령’은 첫 드라마 경험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곽도원은 “영화 캐릭터 때문인지 남성 팬들이 더 많다”면서 “사실은 그게 좋다”며 털털하게 웃었다. 그리곤 “ ‘범죄와의 전쟁’까진 오디션을 거쳤는데 이번 영화는 미팅만으로 출연하게 됐다”며 또 한번 웃었다.
3일 개봉하는 ‘점쟁이들’은 술자리에서 시작된 영화다. ‘범죄와의 전쟁’을 끝낸 후 휴식기를 갖던 그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하필 그날 친구와 싸워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았어요. 감독님(신정원)이 부르신다길래 안 좋은 마음으로 술자리에 가서 진탕 술을 먹었죠. 거기서 사는 얘기하다 친구랑 싸운 얘기하다, ‘이번 영화 같이 합시다’ 해서 ‘그럽시다’ 했죠. 술자리가 캐스팅 미팅이 된 셈이죠.”
이번엔 전작들과 사뭇 다른 코믹 연기다. 극중 귀신 보는 점쟁이 심인 스님 역을 맡아 능청스런 웃음을 선사한다. 탑골공원에 머무르며 반값에 점을 봐주고 있지만, 알고보면 제야에 숨겨진 고수 중의 고수다. 18살 차이가 나는 김윤혜와 젊은 시절 로맨스도 닭살스럽게 연기했다.
곽도원은 “영화에서 무서운 것만 하다보니 막 떨리더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의 코믹 연기는 신선하기까지 하다. 스크린을 통해선 처음이지만, 코믹은 일찌감치 마스터한 장르였다. 연극무대 시절 코믹파트는 그의 전담이었다. 약장수, 변사, 차력쇼 등 셀 수 없는 캐릭터들을 섭렵했다.
“코믹 연기는 진실성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웃기려고 덤벼들면 오버스러워서 안돼요. 연기가 조금만 넘쳐도 억지가 되고, 조금만 모자라도 재미가 없어지니까. 상황과 설정 속에 코미디가 묻어나야 제 맛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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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도원은 “근데 너무 무섭게 쳐다보더라. ‘너희가 신을 모독했어?’ 이런 눈빛이었다. 아직도 생생하다”고 기억했다. “처음엔 어떤 점쟁이를 따라할까 고민했는데 ‘그러지 말자’ 싶더라고요. 그냥 ‘점 보는 분들의 눈빛만 따라하자’ 싶었죠.”
공교롭게도 이 영화는 또 다른 출연작인 ‘회사원’(11일 개봉)과 촬영 시기가 일부 겹쳤다. 때문에 촬영장을 이동할 때마다 ‘몰입’이 필요했단다. ‘회사원’에선 살인청부회사의 낙하산 전무이사 권종태로 분해 비열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회사원’에선 늘 왕따 당하고 콤플렉스도 많은 인물이어서 신경이 날카로워지더군요. 모든 사람들을 다 미워야만 했죠. 그러다 ‘점쟁이들’ 촬영 현장으로 가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어요. 촬영할 때조차 호흡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웃고 다녔다니까요.”
두 영화는 1주 간격으로 개봉을 맞는다. 장르도 캐릭터도 다르지만 곽도원은 “두 영화 합해 천만 정도의 관객이 들면 좋겠다”는 바램을 드러냈다.
그 흔한 대학 졸업장 하나 없는 곽도원은 18살 때 처음 연극을 본 이후 배우를 꿈꿨다. 무작정 극단(연희단거리패)에 들어가 갖은 고생을 하며 20여년을 버텼다. 수많은 밤을 술로 지새우며 배우의 길을 고민했고, 헤아릴 수 없는 고난에도 꿈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연기를 때려치워야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수십 번, 수백 번. ‘범죄와의 전쟁’을 찍기 전에도 연기를 그만뒀었다. 집까지 내놓고 제주도에 내려가 게스트하우스나 할 생각이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모든 게 “판타스틱”하다. 돈 걱정 안하고 연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과거에 비하면 출연료도 수십배 올랐고, 선택 당하길 기다리던 쪽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입장도 됐다. “너무 연기를 잘 해 징글징글할 정도”라는 대선배의 칭찬에 지난 세월을 보상받은 듯 하지만, 곽도원은 “배우로서 아직 시작도 안했다”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저런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시지만 이제 시작했다고 봐야죠. 사람들의 삶 속에서 그들을 웃고 울리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연극계 선배들이 하루에 한 가지씩 배우면 1년에 365개, 10년이면 연기하면서 먹고 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 참, 소녀시대 태연처럼 속 깊고 밝은 여자 만나서 결혼하는 것도 꿈입니다. 엠블랙 지오가 한번 만나게 해준다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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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사진=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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