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은 쏟아야‥
지난해 국내에서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강남스타일’의 싸이는 국내 굴지의 엔터기업 YG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빅뱅의 ‘어라이브’(ALIVE) 앨범 역시 마찬가지 YG엔터테인먼트의 자본력이 뒷받침 되지 않았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작품이다. 2012년 상반기 돌풍을 일으켰던 버스커버스커 역시 싱어송라이터라는 점이 강조됐지만 기실 국내 굴지의 엔터기업 CJ E&M의 지원이 없었으면 이 같은 퀄리티의 앨범을 만들어내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곡과 앨범의 퀄리티는 자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국내 정상급 작곡가들의 노래는 곡비만 수천만원씩 한다. 더 좋은 노래를 만들기 위해 해외 유명 작곡가에게 곡을 의뢰하는 것도 흔한 일이 됐다.
사운드의 퀄리티는 자본에 정비례한다. 현재 팝 씬에서 조차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새롭고 참신한 사운드가 국내 가요에 도입되고 전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은 자본의 힘이다. 소녀시대의 ‘아이 갓 어 보이’(I got a boy)는 국내 정서와 다소 멀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운드 퀄리티와 완성도에서는 현재 나온 전세계 어떤 팝 앨범에도 뒤처지지 않는다. 한 때 예술성 없는 저렴한 상품으로 취급받던 아이돌이 가장 진보적인 사운드를 들려 주고 있는 것은 큰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대형 기획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영미 팝계에서 자본이 전체의 유행과 스타일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 비욘세, 어셔 같은 블록버스터 앨범들의 사운드는 어떤 뮤지션들의 그것보다 앞서있다. 물론 이들은 국내 아이돌과 달리 회사가 아니라 아티스트 자신이 주도적으로 움직여 대중음악 전체의 방향성을 제시한 경우지만, 적어도 이들이 음악을 만드는데 있어 자본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혁신적인 제품이 초거대자본의 기업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 가요관계자는 “일반적인 아이돌의 경우 2억원 정도, 대형기획사의 정상급 아이돌의 경우는 10억원 이상도 투자가 된다. 5배라는 금액의 차이는 퀄리티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이는 대중들의 귀에도 명확하게 구별된다. 청자 입장에서는 더 좋은, 잘 만든, 공들인 노래를 듣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부익부 빈익빈
자본화는 분명 퀄리티를 올려준다는 면에서 전체 우리 대중음악의 수준을 올려주는 역할을 하지만 이 자본이 앨범 퀄리티에만 집중되지 않는 까닭에 문제가 생긴다. 실제로 자본은 프로덕션이 아니라 마케팅의 영역에서 더 큰 영역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대형 유통사 중심으로 음악시장이 형성된 일본의 경우 대형유통사가 오프라인 대형 레코드점은 물론 신문과 방송 등 미디어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국내 미디어의 경우 대형기획사의 종속성은 덜 하다 볼 수 있지만 전체 시장 규모가 작은 까닭에 영향력은 일본 못지않다.
실제로 가요계가 아이돌 일색이 돼 버린 것은 비단 대중들의 수요가 아이돌에 집중됐기 때문 뿐 아니라 미디어가 장르적 안배나 작품 자체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없이 아이돌만 집중적으로 출연시킨 결과기도 하다.
록이나 힙합 등 비(非)아이돌은 고사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과 낮은 퀄리티를 가진 아이돌 조차 방송 출연 등 미디어에 노출될 기회를 잡기 힘들어진다. 대중음악이라는 취향의 문제에 있어 대중들의 태도는 수동적인 까닭에 미디어 노출 빈도가 낮을 수록 대중의 관심도 낮을 수 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결과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으로 고착되는 것.
국내 음악 시장규모 탓에 이렇게 미디어로부터 소외돼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뮤지션들은 종종 생계를 위협받는 수준까지 몰린다. 달빛요정 역전만류 홈런(본명 이진원)의 사망은 비단 유통사의 불합리한 음원 수익 분배율 문제 뿐 만이 아니다. 미디어를 포함한 대중문화 토양 전체가 자본들의 싸움 구경에 정신이 팔려 다른 어떤 의미에도 눈을 돌리지 못하는 수준이 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대중음악의 수준은 비단 노래나 앨범의 완성도 뿐 아니라 다양성이라는 측면도 고려돼야 마땅하다. 또 이 같이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는 시장은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주요한 토양이 된다. 대중문화에서 자본의 영향력이 확장되는 것은 단순히 다른 산업에서의 그것과 동일하게 바라볼 수는 없는 이유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