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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개봉한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가 한겨울 극장가를 훈훈하게 달구고 있다. ‘마이 리틀 히어로’는 허세 가득한 삼류 음악 감독 유일한(김래원)이 인생 역전을 노리고 참여한 대형 뮤지컬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 확률 제로의 소년 영광(지대한)과 파트너가 돼 불가능한 꿈에 도전해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개봉 이튿날인 지난 11일, 충무로 매경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조안에게 출연 배우로서의 영화 감상평을 묻자 “영화를 몇 번 더 봐야겠다”며 빙긋 웃었다. “영화 전체를 잘 못 보고 제 연기만 보는 편이에요. ‘저기서 더 이렇게 할 걸’ 이러면서요. 열댓 번 보다 보면 조금씩 전체가 보이죠.”
극중 조안은 브로드웨이 진출을 꿈꾸는 뮤지컬 ‘조선의 왕, 정조’ 주인공을 뽑는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조연출 나성희 역을 맡았다. 기존 캐릭터와 늘 그러하듯, 이번에도 조안은 자신의 연기에 대해 못내 아쉬움을 표했다. 어떤 점이 그리도 아쉬웠던걸까.
“좀 더 터프하게 연기할 걸. 아쉬워요. 제가 사극(‘광개토태왕’)을 1년 하고 영화 촬영에 들어갔는데, 정통사극 톤이 목에 베어있는 상태라 발성을 조심하다 보니 마음껏 연기하지 못하고 조심조심한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 부분이 아쉽죠.”
실감나는 현장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터프하고 싶었다는 조안. 스스로는 아쉬움이 가득하지만 관객 입장에선 충분히 프로페셔널한 현장 PD 느낌 그대로다.
냉정히 말해 ‘마이 리틀 히어로’에서 조안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분명 유일무이한 여주인공인데, 두 명의 남주인공 유일한(김래원 분), 김영광(지대한 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팩트가 적다. 그녀 역시 이 점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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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좋아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지극한 아이 사랑을 지닌 조안은 촬영 중간 중간 있었던 아역들과의 즐거운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일상적인 이야기 외에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묻자 “동화를 만들며 놀았다” 한다.
“저는 주로 대한이랑 촬영을 많이 했는데요, 그 나이 또래 아이에 비해 더 순수한 면이 있어요. 대한이랑 동화 스토리를 같이 만들며 놀았죠.(웃음)”
어렸을 적, 자신의 엄마가 밤마다 들려주신 동화 만들기 놀이는 조안이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는 하나의 무기가 됐다. “동화 속엔 김래원, 이광수, 김성훈 감독도 등장하곤 했다”며 웃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이 해맑다.
개봉 전부터 뜨겁게 화제를 모은 어린이 배우 지대한, 황용연의 연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두 친구 모두 정말로, 너무 잘 했어요. 감독님이나 배우 분들이 잘 놀아주면서 연기하게 해줘서 그런 것 같아요. 김래원 선배님도 아이들을 진짜 잘 챙기셨고, 연기적으로도 잘 이끌어주셨어요. 특히 대한이에게 연기를 많이 가르쳐줬는데, 어느 때는 대한이가 리틀 김래원으로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내추럴한 연기가 굉장히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마이 리틀 히어로’는 다문화가정 어린이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색적인 감동 소재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영화는 결코 눈물을 강요하거나 억지 감동을 유도하지 않는다.
“감독님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너무 불쌍하게 그리지 않으셨어요. 따뜻하고 잔잔하게 그리면서, 이 사람들도 모두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게 아닌, 당연히 우리와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셨죠. 동정하려는 이야기로 비춰지지 않기 위해 더 담담하게 그리신 것 같아요. 좋은 취지인 만큼 반향을 일으켰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중반부에는 단 며칠 만에 와이어 액션을 선보여야 하는 영광의 고군분투가 그려진다. 쉬지 않고 와이어를 타고 날다 보니 엉덩이 살이 까지기 일쑤. 연습을 쉬라는 ‘큰형님’ 강희석(이성민 분)의 말에도 영광은 “이거(연기) 하는 거 좋으니까, 감독님한테 얘기하지 말아요”라고 말해 많은 이를 뭉클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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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너무 좋아요. 맨 처음에 시작할 땐 연기하다 죽고 싶었어요. 꿈이, 연기하다 죽는 거였어요.”
“진짜 죽는거요?”
“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다 죽는 거. 가장 베스트는 그거에요. 죽는 장면을 연기하면서 죽는 거죠. 죽는 장면을 연기하고 죽었는데, 관객들은 제가 죽은 줄 모르고 최고의 연기라고 극찬을 하는데, 제가 안 일어나는 거죠. 그렇게 된다면 제 연기 인생 최고일 거예요.”
혹자는 충격으로 받아들일 법한 얘기를 너무나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영락 없는 AB형(!)이다.
“어려서 맨 처음 연기를 시작했던, 그 때 그 마음 그대로 전 연기를 너무 사랑해요. 연기 하는 게 힘들 때도 있고, 이렇게 힘든데 끝까지 매달려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연기를 떠나 제가 행복할 자신이 없는 거죠. 카메라 앞에 서면, 그 때 난 지금 죽어도 좋아. 그렇게 생각했었죠. 그렇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어떻게든 연기를 하려고 발버둥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에겐 가장 재미있는 일이에요.”
우연히 들어선 배우의 길. 하지만 이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녀의 전부가 돼버린 연기. 소위 청춘이라 말하는 20대를 많은 작품 속에서 울고 웃으며 보낸 조안.
어느새 서른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인형 같은 미모가 대번 눈에 들어온, 말 그대로 예쁘장한 첫인상이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그녀에게선 연기에 대한 열정, 욕심과 고민이 엿보였다.
“나이가 점점 들수록 더 깊은 연기를 해야 되잖아요. 좋아하는 일이다보니 더 욕심이 커지는 거예요. 진짜 아줌마가 되면 아줌마 연기도 하고 싶고, 할머니가 되면 할머니 역도 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더 잘 해죠. 점점 더 잘 해야 하는데, 안 보려 해도 자꾸 제 부족한 점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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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