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바(Amoeba)는 하나의 세포로 구성된, 가장 단순한 형태의 생명체다. 이 단세포 생명은 식물부터 영장류까지 우리가 생명체라 부르는 모든 존재의 근본이기도 하다. 다이나믹듀오, 슈프림팀, 프라이머리 등이 소속된 아메바컬쳐는 한 명의 아티스트를 하나의 단세포 생명체인 아메바라고 말한다. 이 아메바는 다른 단세포 생명과 교류하고 새로운 세포들을 흡수하는 과정을 통해 다세포 생명체로 진화를 꿈꾼다. 또 이들이 무리를 이루고 상호 교류하고 성장, 진화하며 하나의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서 탄생한 것이 아메바컬쳐라는 연예기획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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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바후드 콘서트 ‘확인과 발견’
3월 16일 17일 양일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2013 아메바후드 콘서트에는 아메바컬쳐 소속 아티스트 다이나믹듀오와 슈프림팀, 프라이머리, 플래닛쉬버, 리듬파워, 얀키, 자이언티까지 총 7팀이 총출동했다.
어떤 무대든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는 다이나믹듀오는 자신들의 실력을 200% 이상 끌어올린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 개코는 지금까지 숨겨둔 보컬 실력을 맘껏 발휘하며 관객들을 흥분시켰다.
멤버 이센스의 대마초 구설로 팀 활동이 중단됐던 슈프림팀은 이날 공연에서 2년 만에 활동재개를 선언했다. 슈프림팀은 에너지 넘치고 강렬한 사운드의 신곡 ‘이트 잇’(Eat it)과 ‘그대로 있어도 돼’ 두 곡을 이날 공연에서 최초로 공개했다. 다이나믹듀오와 슈프림팀의 무대는 현재 국내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가 누군지를 확인시켜주는 무대였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뮤지션들의 무대는 새로운 발견과 의외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플래닛쉬버는 환상적인 일렉트로닉 공연을 펼쳐보였고, 코믹한 이미지 탓에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던 리듬파워는 압도적인 무대 매너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메바컬쳐의 새로운 얼굴 자이언티와 숨은 고수 얀키의 무대는 이날 공연장을 찾은 다이나믹듀오, 슈프림팀의 팬들을 죄다 훔쳐가기 충분했다. 자이언티는 조만간 발매될 자신의 새 앨범 소식을 처음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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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세포들의 진화 방식 콜라보레이션
이날 공연은 여느 소속사 합동공연과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7팀, 총 12명의 아티스트들은 각각 속한 팀의 이름과 경계를 넘는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선보였다. 그 중심에는 아메바컬쳐의 새로운 핵으로 떠오른 프로듀서 프라이머리가 있다. 프라이머리는 최자(다이나믹듀오)와 자이언티, 최자와 사이먼디(슈프림팀), 자이언티와 크러쉬 등을 생화학적으로 결합시킨 장본인이다.
프라이머리뿐 아니라 이날 공연에는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이 줄을 이었다. 얀키는 아키라와 합동무대를 선보였고, 이센스(슈프림팀)와 보이비(리듬파워), 다이나믹듀오와 사이먼디의 합동무대 역시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토록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무대가 가능했던 것은 이들이 한 소속사 아티스트라는 점뿐 아니라 힙합 장르 자체의 음악적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록 음악은 3인 이상 인원이 모여 밴드라는 형태를 이루고 멤버들의 화학작용을 통해 하나의 곡이 완성된다. 반면 힙합은 기본적으로 한명의 래퍼(MC)가 음악을 이끈다. 이 같은 장르적 특성은 힙합 뮤지션들에게 다양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크루(Crew)와 피처링이라는 방법론을 발전시켰다. 하나의 크루에는 다른 래퍼들뿐 아니라 보컬리스트, 연주자, DJ, 댄서 등이 함께할 수 있다. 단세포 생명이 다른 세포들을 흡수하면서 다세포가 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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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3에 없는 것
K-팝의 세계적인 성공은 대한민국 가요계의 빅3 SM, YG, JYP가 만든 시스템의 성공이다. 트랜드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프로듀서와 작곡가, 가창과 무대 퍼포먼스에서 철저하게 트레이닝을 받은 가수들, 패션과 스타일에서 독창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들의 조합은 K-팝을 전 세계 팝 시장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게 했다.
이제 K-팝은 단순히 콘텐츠를 수출하는 영역에서 벗어나 시스템을 수출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아시아 각국의 제작자들은 자국의 가수들을 한국에 유학 보내 2~3년간 트레이닝을 받게 한다. 이들은 한국 작곡가와 프로듀서로부터 곡을 받아 앨범을 제작해 현지에서 데뷔한다. 이렇게 데뷔한 중국과 아시아 가수들은 자국에서 톱스타 반열에 오르며 K-팝 시스템의 우수성을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K-팝이 언제까지 아시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약속은 할 수 없다. 아시아 각국의 제작자들이 현재처럼 K-팝 시스템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정상급 가수들은 언젠가 K-팝 가수에서 현지 가수들로 대체될 수 있다. 이미 중국은 그 과정이 끝났다는 평가다. 90년대 대한민국의 10대의 우상이 뉴키즈온더블럭에서 H.O.T로 대체됐듯 말이다.
현재 국내 빅3 기획사의 핵심부서는 A&R 팀이다. 아티스트 앤 레퍼토리(Artist&Repertoire)의 줄임말인 A&R 부서에서 하는 일은 말 그대로 새로운 아티스트를 뽑고 곡들을 수집하는 역할이다. 빅3의 경우 각각 약 10명의 A&R 직원이 근무하는데 이들은 새로운 아티스트 보다는 연습생을 주로 선발하고, 작곡가들로부터 곡 수집에 주력한다. 해외의 경우 A&R들이 클럽들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섭외하는 역할을 하는 것과 다소 다른 모습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아메바컬쳐가 대한민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급부상한 것도 이 같은 상황들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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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바의 꿈, 10명의 직원 12명의 아티스트
아메바컬쳐는 12명의 아티스트에 10여 명의 직원으로, 직원보다 뮤지션이 더 많은 회사다. 2006년 다이나믹듀오 최자와 개코 두 사람이 만든 이 회사의 설립 취지는 ‘좋은 아티스트를 세상에 소개하자’는 것이었다.
이날 공연에서도 다이나믹듀오 멤버이자 회사의 대표기도 한 개코는 소속사 모든 아티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인 무대를 바라보며 “좋은 음악을 하는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은 있었던 것 같다”고 뿌듯해했다. 실제로 이는 회사 경영철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아메바컬쳐 설립 멤버였던 노영열 부장은 “힙합 관련 사이트, 정기, 비정기적으로 언더 클럽 공연, 아티스트들이 직접 추천한 친구들까지, 우리는 좋은 아티스트를 찾는 것이 1순위다”며 “직원들 모두 각각 자신의 파트별 업무가 있지만 음악에 대한 이해가 기본이 돼야 한다. 모든 직원이 A&R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메바컬쳐는 다른 연예기획사들처럼 연습생을 두지 않는다. 노영열 부장은 “원칙적으로 스스로 작사 작곡이 가능한, 최소한 자신의 음악적 방향이 뚜렷한 뮤지션이 영입대상이 된다. 곡을 쓰는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스스로를 프로듀싱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한 친구들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다”며 “회사의 역할은 이들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서포트 해주는 것이다. 음악적인 면에는 조언 이상의 선을 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위대한 아티스트는 타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고 스스로 발견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단세포 생명체에게 필요한 최대한의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메바컬쳐라는 회사의 기본 경영방침이다.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DNA를 왜곡시키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다세포 생명체로 진화할 수 있어야 지금까지와는 다른, 누구와도 닮지 않은 전혀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것은 결국 현재 K-팝 시스템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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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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