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화제가 된 이들을 향한 러브콜을 꼽아보면, 우선 띠동갑 후배 가수 주니엘은 공개적으로 페퍼톤스의 객원보컬이 되고 싶다 열망했다. 한창 대세로 떠오른 배우 유준상은 현재 준비 중인 앨범에 수록될 곡의 보컬을 신재평에게 맡기고 싶다고 공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간 유희열, 엄정화, 에프엑스 등과 작업했던 페퍼톤스는 올 봄 데뷔를 앞둔 투개월의 음반에도 참여했다. 어디 그뿐인가.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 SBS ‘정글의 법칙’ 등의 예능 프로그램 BGM 단골손님이자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하면 검색어 1위는 무난하게 달성하고 있다(비록 그들은 낮은 인지도에 따른 결과라 자평했지만).
지난 3월 공개한 디지털 싱글 ‘Thank you’(이하 땡큐)는 현재 SBS 예능 프로그램 ‘땡큐’ 타이틀곡으로 사용되고 있다. ‘힐링’ 음악으로 대표되는 페퍼톤스와 일맥상통하는 프로그램 덕분에 ‘땡큐’라는 콜라보레이션이 탄생하게 됐단다.
“어쩌다보니 ‘땡큐’ 작업을 하게 됐는데, 힐링이라는 테마에 맞춰 곡을 쓰다 보니 따뜻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어요. 어떤 음악을 해야겠다 꼭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그러한(힐링) 길을 걸어오게 돼, 즐거워해주시고 좋은 피드백을 주시는 분들이 많아 감사합니다.”
한동안 이들을 수식해 온 ‘인디계의 아이돌’이라는 칭호가 무색할 정도로 이젠 페퍼톤스도 경력이 꽤나 쌓인 중견밴드지만, ‘청춘밴드’ 특유의 청량한 감성은 그대로다.
특히 ‘우울증을 위한 뉴테라피’를 꿈꾼 페퍼톤스는 일명 ‘힐링’ 시대를 맞아 제대로 꽃 폈다. 혹자는 “두통약보다 효과 만점인 페퍼톤스 음악”이라고 할 정도니, 이 정도면 음악적으로 목표한 바를 어느 정도 이룬 듯도 보인다.
이에 대해 신재평은 “즐겁고 밝은 게 밑바탕에 깔려 있으니 처지고 우울할 때 들으면 그런 기분이 완화될 수 있게 작용하는 것 같다”며 “노래들이 우리가 생각한대로 쓰이고 있다니 다행”이라며 웃었다.
음악이 주는 긍정 에너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의식적으로 가져가는 부분도 있지만 가사나 정서, 그것은 내가 세상을 이렇게 살겠다는 의지와 비슷한 것 같아요. 다양한 일을 겪게 되지만 낙천적으로 살겠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유지되는 것 같아요.”(신재평)
외로움 내지는 슬픈 감성 역시 페퍼톤스가 연주하고 부르면 긍정으로 치환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검은우주’와 ‘신도시’는 사실 오묘한 곡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퍼톤스 음악처럼 들릴 것 같았어요. 우주 이야기도 나오고, 쓸쓸함에 집중한다기보다는 공상과학처럼 들리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비트감이 있고 신나는 구성을 했기 때문에 일관성이랄까 그게 유지된 것 같아요. 고민을 하면서 작업을 했었죠.”
신재평의 말을 듣고 있던 이장원은 “이상하게 다르게 작업을 해도 사람들이 다 페퍼톤스인 줄 알더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자신들만의 독특한 색을 잃지 않고 음악 활동을 해온 결과, 지금은 흔한 표현으로 ‘누구의 아류’도 아닌 그 자체로 ‘페퍼톤스’로 자리매김했다. 인디씬의 확장과 어쿠스틱의 홍수 속에서도 감히(!) 페퍼톤스와 유사한 느낌의 팀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음악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니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2년 동안 딱 10곡 써서 10곡이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많은 곡을 쓰지만 대부분 식상하다던지 뻔하다던지 그런 이유 때문에 버려지는 것이죠. 여과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판단하는 기준은, 조금 새로웠으면 좋겠다, 독특하고 유니크했음 좋겠다라는 망에 대고 거르고 있고요.”(신재평)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음악 가운데 걸러 나가는 작업이 만만치 않겠다 부연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보면 점점 약간 느슨해지는 타임인 것도 같아요. 처음 데뷔했을 때는 사운드에서도 철저하게 고집이 있었어요. 그런데 밴드 음악으로 넘어온다는 건 어떤 면에서 (그런 고집을) 버린, 포기한 것도 있죠. 왜냐면 밴드 사운드라는 건 전통적인 사운드잖아요. 흔한 편성이니까. 저희도 그 중 하나를 택하면서, 일종의 어느 정도의 우리만의 유니크함은 덜어놓고서 다른 면에서 가져오자 (생각했죠). 그게 가사와 정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포인트가 그 쪽으로 많이 간 거죠. 그리고 또, 작년 한 해를 겪으면서 곡이 잘 써졌는데, 그것들을 묵히고 삭히고 예전처럼 갖고 있다가 골라서 버리고 진짜 좋은 것들만 추려서 음반에 넣고 하기에는 우리가 좀 안달이 났어요. 빨리 레퍼토리 늘려서 다른 공연을 하고 싶고, 더 풍성한 셋 리스트를 짜고 싶은 거죠. 그래서 곡을 발표하는 텀이 좀 빨라졌어요.”(신재평)
페퍼톤스의 음악을 기다리는 팬들의 입장에서야 좋겠지만 이른바 ‘다작’이란 필연적으로 양면성을 띨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묻자 신재평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다 보면 범작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게 제일 겁난다”며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범작’ 얘기가 나오자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내놓은 음반 중 페퍼톤스가 스스로 생각하는 ‘역작’은 과연 무엇일까. 두 사람 모두 2집이라 입을 모았다.
“2집을 내놓기까지 시간이 제일 오래 걸렸어요. 너무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요소들이 너무 많아져서 대중적인 취향에는 못 맞춘 것 같아요. 오히려 선이 굵게 보여줄 것만 딱 보여주는 게 더 듣기 쉬울 것 같아요. 다른 앨범에 비해서는 대중성은 덜하지만 아픈 손가락이란 느낌 때문인지 2집에 제일 애착이 갑니다.”
“4집으로 넘어오면서부터 조금은 만화 속 이야기 아닌, 현실을 사는 이야기를 하게 됐다”는 페퍼톤스는 패기 넘치던, 혹자들로부터 ‘미치광이 과학자 같은 느낌’이라는 평까지 들을 정도로 과감했던 음악적 실험을 벗어나 더 다정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친근함’으로 다가왔다. 그 행보의 연장선은 지난해 가을 발매한 EP, 그리고 이번 ‘Thank you’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페퍼톤스는 확실히 ‘공연형’ 밴드로 거듭났다. 꼭 1년 전 발매한 정규 4집 ‘Beginner's luck’(비기너스 럭)부터 5인조 밴드 형태로 그야말로 ‘춘하추동’ 공연을 이어갔다. 계절은 바뀌었지만 페퍼톤스의 지난 1년의 여정은 그 어느 해와 비교해도 뜨거웠다.
5월 첫째, 둘째 주에는 10일 동안 단독 콘서트를 선보인다. 이름하여 ‘十日夜話’(십일야화)다. 어쿠스틱 셋과 밴드 셋으로 나눠 2색 공연을 펼친다.
“소극장이기 때문에 안에 모인 사람들끼리의 은밀한 경험이 될 수도 있고, 열흘 동안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그 날 그 날 연주의 합, 관객 분위기 등에 따라 달라지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이렇다 할 개인기를 준비하진 않은, 여느 때와 같이 순수하게 음악으로만 채워질 콘서트지만 평소 선보이지 않았던 비장의 선곡을 준비 중이라니 기대해 볼 만 하다. 이장원은 “굉장할 것”이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단독 공연은 우리가 파티를 여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죠. 기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물론, 지나고 보면. 할 땐 죽을 것 같으니까 하하.”
어쿠스틱 셋, 밴드 셋 중 어떤 공연을 가면 좋겠는지 묻자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어쿠스틱 공연에 오라”(신재평)는 답변과 “짱짱해진 합을 더 보시려면 밴드 셋에 오라”(이장원)는 두 가지 답변이 돌아왔다. 이런 매력이라니. 가히 ‘영업의 달인’이라 하겠다.
단독 콘서트에 앞서 이들은 지난 주말 고양 아람누리에서 열린 뷰티불민트라이프2013 첫날 공연에서 당당하게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올랐다. 무려 108분에 달하는 공연으로 봄 밤을 뜨겁게 수놓았다는 소식이 장안의 화제다. 이제는 ‘노래’에도 점점 자신감을 보이는 페퍼톤스, 라이브의 강자라는 기분 좋은 칭호도 종종 들려오지만 오히려 손사래 친다.
“라이브의 강자라는 표현은 저희에게는 맞지 않아요. 저희 공연을 보신 분들 중엔 잘 한다는 얘기를 해주시는 분도 계시지만 매력 있다는 표현을 많이 해주시거든요. 좋았다 정도?”(신재평) “‘잘 한다’는 얘기도 좋지만 ‘좋았다’ 정도면 정말 좋겠다.”(이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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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장원에게 물었다. 지난 연말 ‘FINE’ 콘서트 때 ‘검은 우주’를 처음 라이브로 불렀던 당시 느낌은 어땠는지.
“그 때 좀, 웃겼나봐요(웃음). 스탭들로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고, 밤에 연습을 많이 해서 다음날 돌아왔죠. 그런데 그 때부터 안 웃기다고 실망스러운 반응이 돌아오더라고요. (신재평:사실 그 노래가 안 웃기는 노래거든요) 그런데, 노래가 되게 힘들어요. 웃긴 건 어쩔 수 없죠, 웃겼으면 할 수 없는 건데, 근데 원래는 안 웃겼어야 된다는 거 그리고 다음날 사람들이 안 웃겼다고 실망한 거에 제가 좀 실망했어요.”
* 인터뷰 말미, ‘땡큐’ 타이틀에 걸맞는 질문을 던졌다. “신곡 제목이 ‘땡큐’니까, 서로에게 고맙다 얘기할 만한 일 하나씩만 얘기해주세요.”
세상에. 한 시간 남짓 인터뷰 중 가장 고민하는 두 남자다. 오글거림이 공존하는 몇 초간의 적막을 먼저 깬 건 이장원이었다.
“가끔 기댈 수 있는 추억이 있어서 그게 참 고마워.”
‘땡큐’ 가사를 읊은 이장원에 결국 모두가 빵 터졌다. “차라리 노래를 불러달라”는 주문에 여전히 쑥스러운 듯 빙글빙글 웃기만 하는 이장원 대신 신재평이 입을 열었다.
“사실 ‘땡큐’의 첫 가사는 장원이가 저한테 해준 말이에요. 서두르지 말고, 흔들리고 물들지 말라고. 이 친구랑 제가 같이 다양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시간이 길었던만큼 이런저런 고민도 했죠. 중심을 못 잡고 할 때 그런 얘기를 해줬었어요.”
신재평의 훈훈한 선방(!)에 이장원은 연신 끙끙거리며 고민을 거듭했고, 신재평은 “쑥스러워 도저히 못 듣겠다”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마운 게 없는데 어떡하느냐”며 능청스러운 하소연을 하며 고민하던 그는 신재평이 돌아오기 직전, 겨우겨우 고마운 일을 찾아냈다.(물론, 앞서 이장원이 언급한 ‘땡큐’ 가사가 그의 진심임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말이다.)
“음...... 어...... 대학교 때 밥 같이 먹어줘서 고마워 하하하.”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안테나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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