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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구. 소소할지라도 추억 하나쯤은 있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이자 장소다. 최강희 역시 어린 시절이 생각날 수밖에 없다. 또 말 안 듣는 꼬맹이들과 몇 개월을 지지고 볶고 대치했는데, 요즘 유행하는 말로 추억이 ‘돋았을 수’밖에 없다.
“어린시절 보물창고 같았다”는 문방구의 기억. 그리고 어린 시절 동무들과 함께한 놀이가 스쳐 지나갔다는 최강희. “저도 아이들과 많이 뛰어놀았죠. 해가 지고 집에 들어가면 엄마가 땟국물이 줄줄 떨어지는 걸 보고 씻고 밥 먹으라고 했던 게 기억나요.”(웃음)
최강희는 어린 시절 여느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고무줄이나 공기놀이는 잘하지 못했다고 했다. “전 주로 피구나 얼음땡 같은 놀이를 했어요. 못하는 건 과감히 포기했죠. 요즘 휴대폰 오락도 아무리 꽂혀도 안 되는 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뭐를 다운받아도 안 되면 휴지통으로 보내버리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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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추억을 쏟아낸 그는 한쪽 편에 자리한, 돌아가신지 10년도 더 된 아버지 이야기도 꺼냈다. 최강희는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아빠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회상했다.
“과거에는 엄마를 더 많이 챙겼어요. ‘엄마 불쌍해’, ‘엄마 좋아’ 등등. 모든 게 엄마 위주였어요. 하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아빠에 대해서 생각해봤죠. 외로웠을 수도 있겠고, 진짜 나를 좋아하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제 기억에서 아빠는 속을 썩인다고 생각했거든요. 엄마가 힘들어했으니까요. 아빠가 뭐하고 있는 지도 몰랐어요. 여행도 혼자 다니시고, 집에도 잘 안 들어오시고…. 자유로운 분이셨죠. 지금 생각해 보면 멋있는 분인데 그때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미나 문방구’는 어떻게 보면 별 것 없을 것 같은 작품인데도 최강희를 빠져들게 했다. ‘최강희의 재발견’을 이끈 영화 ‘애자’(2009) 이후 블록버스터, 로맨틱 코미디, 남들이 그를 보면 연기변신이라고 할만한 작품 등 다양한 영화에 엄청나게 출연 제의를 받았다는 그는 “궁금한 영화가 별로 없었다”며 신중했다. 그런데, 단순해 보이는 ‘미나 문방구’를 택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미나 문방구는 다 읽고 나서 무척 개운했어요. 울고 났을 때 기분처럼요. 개인적으로 파랑 거(최강희는 크로마키 기법 촬영을 위한 블루스크린을 이렇게 귀엽게 표현했다) 앞에서는 자신이 없어요. 공감이 중요한 것 같은데 파랑 거 앞에서는 잘 못하겠더라고요. 전 영웅 영화도 안 좋아해요. 그럴 거면 차라리 굉장히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죠. 무척 맛있는 음식을 여러 번 먹어서인지 이번에는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었어요. 다른 자극이 필요했는데 괜찮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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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청소년 드라마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로 데뷔한 최강희는 또 다른 청소년 드라마 ‘나’로 아역상을 받기도 했다. “그때 나이가 스무 살이어서 아역상이 약간 민망했다”고는 했지만, 이후 그는 연예계에서 승승장구했다.
막 성인이 된 딸이 다른 일도 아니고 연예인으로 진로를 정한 것에 부모님이 우려했을 것 같은데 전혀 걱정하지 않았단다. “학창시절, 제가 공부는 잘 못했지만 엄마는 걱정 안 하셨어요. 제 편에 맞춰주셨죠. 오히려 지금 더 걱정하세요. 엄마가 달라졌는데 올해부터 시집 얘기를 하는 거예요. 교회도 다니시고, 또 신학대학도 다니시는데 주변에서 물어보시나 봐요. 그래서 뒤늦게 고민을 하고 있죠. 남자친구, 애인, 프러포즈, 남편, 아이 뭐 이런 순인데 1번부터 막혀있는 상황이라 난감해요.”(웃음)
결혼이나 연애에 대한 생각이 없느냐고 하니 항상 작품을 하면서 사랑을 많이 받고, 상대 남자들에게도 작품 속에서 연애 감정을 느끼니 그렇게 연애에 목마르지 않은 듯하단다. 다만 결혼이나 연애보다 “이번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이 정말 예뻐서 나중에 저런 아이 낳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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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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