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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이후 근 1년간 레이다망에서 사라졌던 그는 “평범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야구모자 눌러쓰고 내곡동 집근처에서 자전거를 탔다”거나 “연남동과 망원동 단골 노가리 집에 들러 종종 음악하는 지인과 술잔을 기울였다”며 빙그레 웃었다.
“얼마 전에는 정지우 감독과 소박한 일본 여행도 다녀왔다”며 “서너평 남짓한 좁은 공간 안에서 맥주 마시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추억했다.
9일 개봉한 ‘고령화 가족’은 인간 박해일의 소소한 일상과 닮아있던 작업이었다. 모이기만 하면 ‘빵 터졌던’ 촬영장 분위기, 실제 가족 같았던 팀워크. 박해일은 “과정에서 얻는 게 참 많은 영화였다”고 만족해했다.
이 영화는 오갈데 없는 사고뭉치 삼남매가 엄마 집에 모여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어둡게 흐를 수 있는 주제지만, 유쾌한 터치로 그려냈다. 무엇보다 연기파 배우들의 조합은 이 보다 더 ‘퍼펙트’ 할 순 없었다.
최근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난 박해일은 “사이즈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가 주는 기운이 좋았다”고 선택 이유를 밝혔다. “제 나름대로 강약이 있는데, 전작과의 간극이 큰 것도 출연 이유 중 하나였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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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성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이 영화는 “로-버짓(low-budget; 저예산) 어벤져스”, 게다가 흥행에 취약한 ‘가족 이야기’다. 하지만 개봉 4일 만에 50만을 동원했고, 매서운 입소문을 타고 있다.
배우들 역시 출연료를 자진 삭감하며 이 영화에 동참했다. 작품에 보내는 애정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표류하다 싶을 정도로 투자 유치 과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무렵, 박해일은 감독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게다가 대책 없는 백수 형 ‘오한모’ 역에 윤제문을 적극 추천, 동참시켰다.
“시나리오를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가볍기만 한 영화였다면 안했을 겁니다. 한 번쯤 내 가족,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죠. ‘파이란’을 연출한 감독님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요. 한모 역에 윤제문 선배를 추천한 건 그 자체였기 때문이에요. 평소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기만 하면 되겠다 싶었죠.”
박해일이 연기한 ‘오인모’는 실패한 영화 감독이다. 야심차게 만든 영화는 다 말아먹고, 이혼 위기에 처해 있다. 월세도 낼 돈도 없어 툭 하면 죽을 궁리를 한다. 낭떠러지 끝까지 간 이 남자는 닭죽 끓여놨다는 엄마의 전화 한통을 받고 집으로 들어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희망이라곤 없는 삶이지만 “무겁고 진지한 톤으로만 연기하지 않으려 했다”는 게 박해일의 설명이다.
“관객을 피로하게 하거나 힘들게 만들지 말자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캐릭터에 대한 연민도, 애증도 있었지만 누구나 느껴봤음직한 패배의식에 빠져 있는 캐릭터잖아요. 다행이었던 건 주변에서 많이 보는 영화감독 역이라서 공감이 많아 갔죠.”
윤제문과 치고받는 호흡은 완벽한 앙상블을 이룬다. 15년도 전부터 친분을 쌓아온 사이라고 하니 그럴만도 했다. 연극 ‘청춘예찬’(1999)을 하면서 인연을 맺었다는 두 사람. 당시 아버지와 아들로 1년 가까이 호흡을 맞췄다. 박해일은 “몇몇 작품에서 짧게 만나다 형제로 연기하니 생활 연기가 그냥 나왔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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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해서 넣는 거니까 얼른 찍고 빨리 넘어가길 바라죠. 그거 공사도 하고 CG처리도 한 겁니다. 요즘엔 확대해서 보고 캡처 뜨고 그런다니까요.(웃음)”
여동생 공효진과 어머니 윤여정, 조카 진지희와의 호흡은 실제 가족 같다. 현실에선 구박할 여동생이 없는 그는 “(공)효진이는 진짜 여동생 같았다. 만나면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조카로 나오는 진지희의 연기에도 칭찬을 보냈다. “연기를 하지 않을 땐 간혹 귀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촬영할 땐 진지하더군요.”
작품을 끝내고 앓이를 한다는 그는, 이번에도 잔잔한 여운에 취해 있다. 가족 구성원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고, 이례적으로 시사회에 가족도 초대했다.
“지지고 볶다가도 힘든 순간 돌아갈 수 있는 것이 가족이잖아요. ‘초라하면 초라한대로 찌질하면 찌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는 마지막 내레이션처럼 다시금 용기를 내주게 만드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네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사진=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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