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그가 장기간의 파업이 맥없이 끝난 MBC에서 떠나겠다고 발표했을 때 그의 향후 행보는 많은 이들의 관심사였다. 지난 4월 대기업 CJ E&M 계열의 오락 채널 tvN의 ‘SNL 코리아’로 방송에 돌아온다는 소식은 파격이었다. 이는 그가 스스로 더 이상 언론인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과 다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어 최근 tvN 신규 토론 프로그램 ‘최일구의 끝장토론’ MC를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3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주점에서 만난 최일구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제2의 인생을 살고자 도전하는 것이라 이해해 달라”고 입을 열었다.
최일구는 “MBC 파업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고 나비효과처럼 커져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고 담담하게 털어놨다. MBC 파업이 없었으면 어땠겠냐고 묻자 “역사에 가정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답했다. 그는 “지나간 일에 후회하지 않고, 앞으로 올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현재에 최선을 다해 사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신규 토론 프로그램을 맡으며 좌편향적인 진행을 우려하는 목소리에는 “내가 왼쪽으로 치우쳤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난 가운데에 잘 서 있다”고 단단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면서도 “MBC에 다닌 27년 동안 한 번도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없다.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웠지만 도전하자는 자세로 수락하게 됐다. 시청자들의 눈높이 맞춰서 도대체 뭔 말인가 싶은 건 패널들에게 질문도 하고, 소통하는 토론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언젠가 내가 손석희 선배보다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며 웃었다.
하지만 대기업인 CJ E&M 계열의 tvN에서 방송되는 토론 프로그램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에 “주제를 선정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제작진의 몫이다. 토론의 아이템에서 이념적인 건 지양하려고 한다. 사회문화적 트렌드를 가지고 토론하려 한다”며 “엇갈리는 의견을 얼마나 잘 정리하고 종합할 것이냐가 내 앞에 놓인 과제다”고 설명했다. 그가 27년간 언론인으로 살아오다 이제 방송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중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실제로 그는 출연 중인 ‘SNL 코리아-위크엔드 업데이트’의 대본을 직접 쓰거나 아이템을 선정하는데 참여하지 않는다. 일정 부분 멘트를 작성하는데 참여하긴 하지만 그의 주된 역할은 아니다. 그는 “‘위크엔드 업데이트’는 뉴스가 아니다. 어느 정도는 연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길어야 30초짜리 멘트였지만 지금은 줄줄이 읽어야 하니 프롬프터를 따라가는 것 자체부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는 “매일 기자나 앵커로서의 내 모습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tvN이라는 매체의 특성과 성향 같은 것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기자와 앵커로서 살아온 27년을 발판으로 tvN에서 최일구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만들고 방송인으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것이 내 목표다”고 말했다.
최일구는 미국 HBO 채널의 ‘크리스 록 쇼’(Chris Rock Show)를 언급했다. ‘크리스 록 쇼’는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크리스 락이 진행하는 스탠딩 코미디다. 이 쇼는 거친 욕설 등 표현 수위 높을 뿐 아니라 성역 없는 풍자와 비판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크리스 록 쇼’를 봤는데 ‘저런 걸 죽기전에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방송인으로서 진짜 하고 싶은 건 그런 종류의 프로그램이다”고 말했다.
기자와 앵커를 거치며 보도국 부국장까지 역임한 그가 프리랜서 방송인이 된 현시점에서 그의 경제적 사정도 궁금해졌다. ‘살림 좀 나아지셨나?’고 묻자 그는 “수입은 비슷한 것 같은데 생활이 더 여유롭지는 않다. 일요일도 촬영이 있고, 한동안 안나가던 현장에도 자주 나가야 한다. 행복하고 힘들다”고 웃었다.
“예전에 권영길 의원이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을 때 현장 인터뷰를 진행하며 내가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권영길 의원이 하는 말이 ‘행복해지고 살림이 나아져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국민아니겠나’고 답하더라. 내 식대로 말하면 행복하고 살림이 나아져야 하는건 시청자가 아니겠나. 답이 됐습니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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