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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마흔 다섯의 개구진 설경구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최근작에서 인간적이거나 어딘지 모르게 허술한, 친근한 캐릭터로 관객과 만나왔던 그다.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스파이’(이승준 감독)에서 설경구는 코믹은 물론, 몸을 내던지는 핸드메이드(?) 액션을 선보이며 웃음폭탄을 터뜨리고 있다.
최근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설경구는 “이렇게 허술한 첩보는 없다”면서도 “색깔을 빼는 연기가 더 어려운 법”이라고 했다.
‘스파이’는 추석 대목에 개봉하는 유일한 코미디 영화다. 한국 최고 스파이지만 아내가 대북첩보전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각 캐릭터들은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지만, 그들을 지켜보는 관객의 입장은 즐겁다. 여기에 망가진 문소리가 큰 웃음을 주고, 다니엘 헤니의 비주얼 매력까지 흠뻑 들어있다.
무엇보다 설경구의 허당 이중생활은 영화를 보는 ‘빅재미’ 중 하나다. 밖에선 총 쏘는 소말리아 해적을 맨손으로 제압하는 최고 요원이지만, 집에만 들어가면 마누라에게 달달 볶이고 말 한번 잘못 했다간 맞기도 일쑤다.
“40대 중반의 평범한 월급쟁이인데 마누라가 끼어들면서 너무 바쁜 거죠. 월급에서 삥땅 치면서 좋아하고… 이름도 철수잖아요. 막~ 쓰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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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역도산’ 때 만들어놓은 근육이 아직 남아 있어서. (문)소리가 고생이었죠. 엉금엉금 기어다니면서 난리도 아니었다니까요. 누구한테 총을 겨누지도 못하는 난장판에 스파이란 스파이는 다 출연했고.”
이번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다. 당초 ‘미스터 K’에서 ‘스파이’로 제목이 달라졌고, 감독도 중간에 교체됐다. 이명세의 스타일리시함과 윤제균의 코미디를 떠올리며 출연을 결정했던 설경구는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마음을 붙잡은 건 같이 땀을 흘린 동료들이었다. 설경구는 “그들이 없었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며 “정말 열심히 찍었고 지금의 완성본이 최선이다”고 했다.
전작 ‘감시자들’에선 정우성을 쫒더니, 이번에 다니엘 헤니와 맞붙었다. 설경구는 “정우성도 모자라 다니엘 헤니라니, 이런 젠장”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리곤 “그들은 ‘고’(Go) ‘파이어’(Fire)만 해도 멋지지만, 난 몸으로 엄청 때워야 한다”며 웃었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이후 11년 만에 만난 문소리와의 호흡은 “리허설이 필요 없었다.” 오히려 돌발상황을 기다렸다. 그녀와는 몇 년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는, 짖궂은 농담도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사이다. 문소리 역시 “(설경구는) 촬영장에서 반 이상 헛소리 혹은 농담을 한다”고 증언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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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흥행 성적까지 따라주니 배우로선 한해 농사가 제법 괜찮다. ‘감시자들’은 550만을 넘겼고, ‘스파이’는 개봉 6일 만에 110만을 넘기며 순항 중이다. 10월 2일에는 “의무와도 같은 영화여서 출연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준익 감독의 ‘소원’이 개봉한다.
“2년간 계속 작품을 했지만, 중간에 몇개월씩 텀이 있었어요. 쉬는 동안엔 술도 마시고 평범하게 보냅니다. 줄넘기는 매일 하려고 하고, 텐트 들고 캠핑 가고 싶단 생각도 하고. TV에서 야사나 인간극장 같은 다큐 하면 막 집중해서 보고.”
올 가을 충무로는 ‘설송김’(설경구-송강호-김윤석)의 빅매치에 주목하고 있다. 여름 극장가 보다 더 치열하다고도 한다. 국가대표급 배우들을 이렇게 한 시즌에 볼 수 있으니 관객들의 눈은 호강한다. ‘스파이’는 ‘관상’의 송강호와 붙고, ‘소원’은 김윤석의 ‘화이’와 대결을 펼친다. 부담감은 없을까.
“얼마 전 ‘설국열차’ ‘더 테러 라이브’ ‘숨바꼭질’ 이 세 영화가 다 잘됐잖아요. 이번에도 같이 잘됐으면 해요. 영화 시장이 지금 좋으니 관객들이 다 봐 주지 않을까요.”
천만영화의 시작을 알린 배우, 천만 영화(‘실미도’ ‘해운대’)에 두 번이나 출연한 국내 유일의 배우가 설경구다. 티켓파워, 몸값도 최고다. 돈은 많이 벌었을까.
“어휴, 1년 벌어 1년 살아요. 저는 별 욕심이 없어요. 하하”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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