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처음 만나는 이와의 대화가 쑥스러운 듯 눈을 맞추기를 어려워했다. 그러나 이내 수다에 꽃을 피우며 봇물이 터진 그는, 밝은 목소리로 재잘재잘 수다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 이내 고개를 긁적이며 민망한 듯 웃는다. “죄송해요. 제가 말이 좀 빠르죠?”
브라운관을 통해 접했던 박하선은 무엇인가를 지키는 여전사의 이미지보다는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가녀림이 더 강했었고, 청순함과 특유의 단아함으로 어딘가 모르게 느긋해 보이는 여배우였다. MBC 드라마 ‘투윅스’를 통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이름인 엄마가 되어 돌아온 박하선은 극중 인혜의 다부짐이 연기가 아니었던 듯 한결 단단해진 모습이었다.
무더운 여름, 치열하게 촬영되었던 ‘투윅스’가 끝나고 잠깐의 휴식을 취했던 박하선은 쉬는 시간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막상 촬영이 끝나니 공허하고 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하소연이다. 자신이 연기했던 극중 서인혜에 생각보다 더 많이 빠져들었기 때문이라고.
사진=옥영화 기자 |
‘투윅스’ 속 박하선이 연기했던 서인혜 역은 치열한 두뇌싸움과 액션 연기를 보여주어야 했던 다른 배역들과는 달리 골수이식수술을 앞둔 딸 수진(이채미 분)의 곁을 지키며, 이에 따른 내면의 갈등을 보여주어야 하는 감정 연기가 중요한 캐릭터였다. 대본을 보자마자 다른 배역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고 밝힌 박하선은 서인혜에 빠져든 이유로 그녀가 ‘버림받은 여자’라는 점을 꼽았다.
“버림받은 여자를 해 본 적은 없었어요. 저 역시 사랑을 해 봤고,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았던 경우도 있었을 수도 있었겠고, 정말 사랑했는데 헤어지는 감정도 경험해 봤고…그런 걸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사람이 설레고 편한 사랑도 해보고 때로는 힘들고 아픈 사랑도 해보고 그러잖아요. 설레는 사랑은 ‘하이킥’때 보여드린 것 같고 아프고 처절한 건 못 보여드린 것 같아서, 안 해 본 걸 하고 싶었어요.”
2005년 SBS 드라마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 단역으로 연기를 시작한 박하선은 주연배우 중 경력도 나이도 가장 어린 배우 중 한 명이었다. 선배들과 함께 연기하는 데 있어서 부담스럽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박하선은 “상대역인 이준기, 류수영뿐 아니라 김소연, 조민기, 김혜옥을 비롯한 선배 배우들, 그리고 함께 촬영하는 감독과 스태프 모두 좋은 사람들이어서 즐겁게 촬영했었다”고 답했다.
“촬영장에서 얼굴 붉히는 일이 전혀 없었어요. 이준기와 류수영 오빠, 조민기 선배님이 현장에서 굉장히 짓궂고 장난기가 많아서 웃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이전까지 저는 촬영장에서 조용히 제 연기만 했었는데, 선배 배우들의 연기뿐 아니라 현장에서의 자세를 보면서 배우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웠던 것 같아요. 제가 원래 모든 게시물의 반응은 다 보는 편이거든요. 잘못된 점을 고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무엇을 지적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고, 이를 가장 냉정하고 정확하게 해주는 곳이 바로 온라인 게시판이거든요. 현장에서의 좋은 에너지가 안방극장으로 전해져서인지, 다행히 이번 작품의 반응이 좋아서 감사했어요. 제가 ‘잘한다 잘한다’하면 더 잘하는 스타일인데, 즐거운 현장 분위기에 좋은 말들을 많이 들어서 신나게 연기 했던 것 같아요.”
사진=옥영화 기자 |
“물론 시청률 부분에서 아쉬운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그러시더라구요.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시청률은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작가님 역시 시청률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해 주셔서 그 부분에서의 부담이 줄어들었어요. 사실 뭐든 하나만 되면 된다고 생각해요. 시청률이면 시청률, 인기면 인기, 캐릭터면 캐릭터, 좋은 작품이면 좋은 작품. 사실 좋은 작품으로 인정 받는 것이 제일 어려운데, 우리 드라마는 좋은 드라마라고 인정을 받았잖아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고 뿌듯해요.”
극중 도망자인 태산(이준기 분)과 그의 뒤를 쫓는 승우(류수영 분), 재경(김소연 분)에 비해 병실에서 이들의 추격전의 결과를 전해 듣는 인혜는 유독 정적인 동작이 많았다. 이를 언급하니 박하선은 목소리를 높이며 “나도 액션신 잘할 수 있는데…”라며 짙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너무 아쉬워요. 매일 수진이와 함께 병실에만 있어야 해서 정말 많이 답답했어요. 그래서 그중에서 그나마 뒤쫓던 사람을 따돌리는 지하철 장면, 문일석(조민기 분) 패거리에게 납치당했던 장면 등을 찍을 때 정말 신나서 했어요. 사실 저 취미가 암벽등반이에요. 힘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달리기도 정말 잘하는데, 한 번 시켜주시면 그 누구보다 잘 할 자신 있어요.”
지금까지 박하선이 연기해 온 배역들을 살펴보면 ‘동이’의 인현왕후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하선, ‘광고천재 이태백’의 지윤 등 모두 밝고 선한 인물들을 주로 맡아서 연기해왔었다. 물론 이와 같은 배역들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고 소화해낸 박하선이지만 한편으로는 연기변신에 대한 목마름도 있었다.
“다양한 인물들을 연기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악역이나 남성스러운 여자 역할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크죠. 그러기 위해서 머리를 자를 수 있고, 배역을 위해서라면 삭발도 할 수 있어요. 원한다면 반삭도 가능합니다.(웃음) 팜므파탈 같은 그런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서글서글하게 생긴 사람이 못되게 구는 모습을 보게 되면 의외의 섹시함을 느낄 수도 있을 거예요.”
사진=옥영화 기자 |
“저는 저에게 마냥 잘 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외모는 중요하지 않아요. 사람으로서 바르다면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은 함께 보내야겠죠. 적어도 1년 이상 만나봐야 이 사람이 좋은지 아닌 지 알 수 있다고 봐요. 이제는 그냥 반쪽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제 부족한 면을 채워주고 제 편을 들어주는. 자잘한 것은 ‘남의 편’ 큰 건은 ‘내 편’을 들어주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요.”
박하선의 이상형을 듣다가 문득 “앞서 사심을 고백했던 류수영은 어떠냐”고 질문을 던졌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지금은 류수영 오빠와 형-동생 하는 사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사실 가끔 류수영 오빠가 이야기할 때 못 알아들을 때가 많아요. 아시는 것은 참 많은데…. 약간의 세대 차이를 느낀다고나 할까. 제가 오빠에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오빠 결혼식에 저 초대해 주세요.’”
유쾌했던 박하선과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차기 계획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아직
“영화를 무척 하고 싶어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아직 영화에서 이렇다 할 대표작이 많지 않다 보니…. 하지만 영화든 드라마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좋은 작품을 만나는 거겠죠?”
금빛나 기자 shinebitn917@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