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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박지윤이 보여준 스펙트럼은 놀라웠다. 어린 나이답지 않은 호소력 짙은 표현력이 인상적인 곡 ‘환상’은 지금도 ‘응칠’ 세대에게 빼놓을 수 없는 불멸의 발라드 넘버 중 하나로 기억된다. 어디 그뿐인가. 갓 스무 살의 나이에 ‘성인식’으로 파격 변신한 무대는 1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다.
2003년 불현듯 가요계를 떠난 박지윤은 2009년 싱어송라이터로 옷을 갈아입고 당당하면서도 수줍게 돌아왔다. 직접 프로듀싱한 7집 ‘꽃, 다시 첫번째’가 인디씬의 큰 사랑을 받으며 음악적 저변을 넓힌 것은 분명하지만, 흔히 말하는 메이저 시장으로의 컴백이 아니었기에 가수로서의 행보는 크게 두각되지 않았다.
이후 또 3년의 시간이 흘렀고 많은 후배 가수들이 가요계를 평정하고 나섰다. 드라마와 시트콤 등을 통해 ‘가수 겸 연기자’로 활동해 온 박지윤의 활약은 그렇게 과거의 영화로 기억되는 듯 했다.
그랬던 그녀가 돌아왔다. 여전히 박지윤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반가운 목소리로 말이다. 프로듀서 윤종신의 손을 잡고 내놓은 첫 싱글 ‘미스터’. 타이틀곡 ‘미스터리’는 대세 작곡가 프라이머리의 작품이다. 앨범 전체적인 그림 역시 윤종신의 진두지휘 하에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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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스로 갖고 있는 기준치가 굉장히 높은 편이에요. 누구나 욕심은 있겠지만 저는 늘 뭔가 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고, 작품의 결과물에 있어서는 욕심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다보니 당시엔 제가 가진 걸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해봤는데, 다음엔 또 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제가 보지 못한 부분을 끌어내줄 수 있는 프로듀서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죠. 고민하던 차에 (윤)종신오빠에게 연락을 받았고, 2003년 JYP 이후 10년 만에 기획사에 들어오게 됐어요.”
박지윤이 언급한 “음악적 갈증”은 단순히 스스로 만들어내는 결과물에 대한 불만족은 아니었다. 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은 열망이었다.
7집 ‘꽃, 다시 첫 번째’(2009)와 8집 ‘나무가 되는 꿈’(2012)를 직접 프로듀싱 했던 데서 달라진 변화의 심연에는 어떤 생각이 있었던 걸까.
“저는 늘 새로운 시도에 대해 긍정적인 편이에요. 지금 보여주는 음악 또한 제 음악 인생의 과정이라 생각하는데, 7, 8집에서 제 감성대로 로우한 어쿠스틱 밴드 음악을 했다면, 지금 시점에는 밝고 트렌디한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변화를 주게 됐죠.”
지난 두 장의 앨범이 박지윤의 ‘민낯’이 강조된 음반이었다면 이번엔 오랜만에 ‘패셔너블’하게 돌아왔다. 박지윤은 “굉장히 오랜만에 신나는 곡을 부른 것 같다”며 “즐기면서 해보자는 마음으로 심각하지 않게 작업했는데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고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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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걸친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첫 시작을 어떻게 할 지 고민이 많았어요. 7, 8집은 마니아적 성향이 있는 음악이라 보다 많은 대중이 듣진 못했는데, 그렇다 보니 이전 댄스 음악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아직 박지윤이 활동하고 있고, 살아있다는 걸 보여드리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트렌드한 음악과 가사로 접근해보면 어떨까 싶었죠.”
데뷔곡 ‘하늘색 꿈’ 당시부터 박지윤은 자기만의 보이스 컬러로 화제가 됐지만 가요계가 ‘오디오’ 중심에서 ‘비디오’ 중심으로 넘어가던 과도기에 바짝 활동을 펼친 탓에, 대중은 그녀의 목소리에 앞서 비주얼에 유독 관심을 쏟았다. 상대적으로 ‘보컬’로서의 박지윤에 대한 평가는 논외가 됐다.
“스스로 그 부분에 대해 늘 안타깝고 억울하기도 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박지윤은 “이번 앨범에서는 박지윤의 보컬리스트로서의 재량을 좀 더 강조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이전에 했던 것들이 비주얼적으로 강했고, 그리고 저희 때만 해도 댄스 음악 아이돌 가수들은 노래를 잘 못한다는 막연한 선입관이 많았잖아요. 저한테도 그런 게 있었고. 그렇다 보니 음색이 특이하긴 한데, 만들어진 이미지로 막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인식을 달라지게 해드리고 싶어요.”
그렇다면 과거에 비해 현재 박지윤이 전하는 노래는 어떤 느낌일까.
“저는, 노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전에는 어렸기 때문에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불렀다면, 7집은 제 얘기를 했던 것이고 지금은 30대 여성이 표현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이해하고 부를 수 있게 됐죠. 진짜 좋은 노래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노래 아닐까요. 그런 노래를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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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렇게 욕심이 많던 아이가 아니었어요. 그저 노래하는 걸 좋아했던 성악을 배운 아이였을 뿐인데 해야 하니까 해야 되는줄 알았죠. 아무 생각 없이 제 앞에 주어지는 일을 하면서 살아왔지만 제 미래에 대한 고민할 여유도 없을 정도로 일에 치여 살다 보니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도 해왔었죠.”
정신없이 돌아가는 스케줄을 소화하다 평범한 사춘기 시기를 그냥 지나쳤지만, 늦게 찾아온 ‘사춘기’는 그녀의 가수 생활에 잠시 쉼표를 찍게 해줬다. “긴 시간을 통해 나를 다시 찾고, 7~8년의 공백기가 있었는데 신인 때 몰랐던 많은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그 때 비로소 알게 됐어요.”
데뷔 17년차. 내년이면 인생의 절반을 가수로서 보내는 셈이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자 하니 그저 미소만 짓는다.
“반반인 것 같아요. 좋았던 일도 있었지만 힘들었던 기억도 있고, 이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했던 시점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의 시점에서는 그 모든 시간이 다 소중하고, 노래하는 게 너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죠. 인생의 반을 이 일을 해왔지만 앞으로 하고 싶은 게 굉장히 많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웃음)”
긴 시간이 준 많은 깨달음 가운데 무게중심과 여유 또한 빼놓을 순 없다. “균형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갖고 있는 것만 계속 할 순 없는 것 같아요. 세상과의 소통도 생각해야 되고, 제가 갖고 있는 걸 정말 잘, 그 중심을 흔들리지 안으면서 계속 잘 소통해나가면서 노력하는 게 중요하겠죠?”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이 ‘성인식’을 기억하듯, 박지윤에게 ‘성인식’은 큰 의미다. 하지만 그에게 ‘성인식’은 뛰어 넘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아직도 박지윤 하면 ‘성인식’을 떠올리고 과거의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이젠 그걸 뛰어넘는 타이틀을 만들어야겠다는 게 제 숙제인 것 같아요. 이번 앨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그걸 꼭 해내고 싶고요. 과거보다는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제가 만들어가야겠죠.”
사흘이 멀다 하고 하루에도 신곡들이 수십 곡씩 쏟아져 나오는 가요계, 모처럼 의욕적으로 나서는 박지윤에게 출사표를 던져 달라 주문했다. 잠시 망설임 끝에 담백한 출사표가 돌아왔다.
“1년 동안 지켜봐주세요(웃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미스틱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