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우의 내공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다. 배고픈 마이너 무대에서 잔뼈가 굵었던 철인답게, 처절하게 몸소 터득한 생활연기의 달인 아닌가. 그의 연기엔 삶이 있고, 철학이 있고, 진한 페이소스가 출렁인다.
TV 드라마에서 주로 만나왔던 장현성(43)을 스크린에서 만나니 더욱 반갑다. 9일 개봉한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장준환 감독)에서 4명의 아빠 중 한명으로 등장했다. 아쉽게도 가장 빨리 죽음을 맞았으나, 극 초반 장현성의 카리스마는 단연 압권이었다.
장현성은 이 영화에서 이성적이고 치밀한 설계자, ‘화이’(여진구)의 조력자인 ‘진성’ 역을 맡았다. 관객들은 그가 아들 ‘화이’의 총에 죽었을 거라 짐작하겠지만, 그의 설명은 달랐다.
“진성이는 자살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연기했습니다. 석태(김윤석)는 화이를 우리 쪽으로 끌어오려는 사람이고, 진성은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서 화이를 저 언덕 안으로 밀어넣고 싶어하는 사람이죠. 밤새도록 그 한 장면을 찍는데, 화이가 총을 잡으면 진성이가 방아쇠를 잡아요. 방아쇠를 못 쏘게 잡는 게 아니라 쏘는 쪽으로 잡죠.”
‘진성’은 4명의 아빠 중 가장 엘리트다. 사진 한장으로 유추해 볼 때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는 유학파일 가능성이 있다. “뮤지션이었을테고, 허무주의자, 무정부주의, 아나키스트”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자세히 본 분들은 알겠지만, 팔에 화상을 크게 입었어요. 그 상처는 정치적으로 힘든 시기에 방화를 했거나 분신해서 생겼을수도 있겠죠. 진성의 손이 두 개 붙어있는데, 낚시바늘로 묶고 특수분장을 했어요. 사람이 웃긴 게 4시간 정도 지나니 이 손가락이 떨어져나가는 거 같더라고요.”
감독은 진성의 과거를 사진 한 장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쓰윽 지나가는 이 사진 한장 건지려고 “이틀을 풀로 내리 찍었다”고 한다. 장현성은 “누가 보면 미친 짓이라고 하겠지만, 감독에 대한 신뢰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감독의 몰입도가 얼마나 대단하냐면요, 뒤에서 폭탄이 터져도 모를 정도 같았어요. 촬영장에서 우리끼리 ‘만화영화에 나오는 미친 과학자 같지 않냐?’고 할 정도였다니까요. 하하!”
김윤석과는 극단 ‘연우’에서 인연을 맺은, 오래 전부터 형·동생 하는 사이다. 조진웅, 김성균, 박해준과는 “개고생 해본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웃었다. “박박 기어본 청춘시절을 보냈다는 점에서 우리끼리 ‘어, 인정!’ 하는 게 있어요. 동지애라고나 할까요.”
여진구 얘기가 나오자 “끝내주는 놈”이란 말부터 터져나온다. “수많은 미디어에도 언급됐지만, (여)진구의 연기에 매혹되고 감동 먹고 자극 받았다”고 한다. “연기를 이렇게까지 하면 어디 한 군데가 비어야 하는데, 심신이 너무 건강하고 에너지가 마그마처럼 끓어오르는 친구더라”는 것.
“말이 필요없는 놈이죠. 한마디로 끝~내주는 놈입니다. 진구를 보면서 내 아들이 저 새끼처럼 컸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사생활을 노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출연 고민이 많았다”는 그는 “아이들은 집안에서 모험처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걸 기뻐하더라”고 후일담을 전했다.
일찌감치 차기작도 확정했다. 청와대 경호실 이야기를 그린 미니시리즈(SBS)다. 쉴 틈이 없다.
“제가 메모해놓은 게 있어요. ‘배우, 저 하늘 위 누군가가 각별히 사랑스러워한 것이 틀림없다’. 직업배우로 살면서 처자식을 건사하고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크게 부유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작품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하기 싫은 작품은 안해도 되고… 누군가가 어디서 예뻐해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 같더군요. 감사하고 너무 감사해 가슴을 쓸어내리곤 합니다.”
장현성이란 배우로 산다는 건, 이런 것이다. 아니라면, 다시 만나볼 수밖에.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사진=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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