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채원(27)은 신비주의적인 아우라와는 달리, 가끔 카페에서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거나 집 혹은 근처 영화관에 가서 영화 보는 게 일상이라 했다. 예상보단 평범해 보이는 일상. 하지만 한 꺼풀 벗겨내 보니 역시나 비범하다. 영화를 보더라도 하루에 기본 두 편 많으면 너댓 편 이상, 남들처럼 여가 차원에서 스트레스 풀며 보는 게 아니라 “습관처럼, 공부하듯” 본다는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한 게 있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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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굿닥터’를 성공적으로 마친 문채원을 강남 한 카페에서 만났다. 차윤서 선생을 새록새록 떠올리며 내비친 싱그러운 미소는 볕이 좋은 카페의 가을 정취와 퍽 잘 어울렸다. 먼저 극중 박시온(주원 분)과의 러브라인이 해피엔딩으로 끝난 데 대해 묻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써주신 작가 선생님께 감사드린다”며 눈을 반짝였다.
“사실 어디까지 어떻게 그려주실 지 예견을 못 했어요. 극 중반부쯤 작가 선생님과 전화 통화로 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희망적으로 잘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드라마가 자폐 분들에게도 열린 시각과 메시지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저조차 무의식중에 멜로에 선을 그어놨던 거였죠. 다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선을 정해놓지 않고 있을 것’이라고 말씀 드리고 반성 아닌 반성을 했어요.”
극 후반부로 갈수록 그녀에게 문채원은 없고, 온통 차윤서 뿐이었다. 다만, 그녀의 ‘차선생’은 특별했다. 그랬기 때문에 시청자에 앞서 차윤서를 만나곤 했던 문채원은 연기에 앞서, 그를 이해해야 했다. 하지만 때로는 많은 생각이 문채원을 고민하게 했다.
“후반부, 시온이의 고백을 윤서가 받아주는 장면은, 리드하는 입장에서 그 호흡까지 가는 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멜로씬을 찍다 보면 여러 가지 직·간접 경험을 통해 생각하게 되는 게 있는데, 이번에는 독특한 특성을 가진 친구와의 멜로라 그런지 어떤 그림도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온전히 제가 만들어 가는 게 처음 보여지는 그림인데, 적당히 넘어가듯 찍고 싶진 않았어요. 윤서가 시온이를 받아주는 순간에서만큼은 동정이나 연민 아닌 남녀의 사랑으로 보여드리고 싶었고 그래서 그 장면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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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굿닥터’의 일원으로서, 어느 한 순간도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었다. 드라마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작품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단다. 인터뷰 내내 작품에 대해 얘기한 그녀에게 역으로 궁금해진 것은 많은 러브콜 가운데서도 ‘굿닥터’를 선택하게 된 이유였다.
“제가 ‘굿닥터’를 선택한 건 한 번쯤 의사 역할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정치 냄새가 나고 남성적인 의드보다는 ‘종합병원’같은, 사람냄새 나는 의드를 해보고 싶었죠. 또 외과나 흉부외과 소재의 작품은 앞으로도 많이 나오겠지만 제가 메리트를 느낀 부분은 소아외과라는 설정보다는, 극중 의사들이 이미 성장해버린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그리고 자폐라는 소재가 있기 때문에 보여줄 게 많았다고 생각했죠.”
차윤서가 파트너와의 멜로를 어느 정도 주도할 수 있는 캐릭터라는 점도 문채원의 흥미를 끈 부분이다.
“사실 많은 의드에서 여자가 누군가를 좋아할 때, 자기보다 윗사람을 좋아하는 그림을 봐왔는데요, 우리는 시온이와의 사랑을 그려가는 부분에서 제가 선배 역할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사랑에 있어서 제가 쓸 수 있는 스토리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에 ‘굿닥터’에서 전해져 온 ‘좋은’ 느낌도 작품 선택에 한 몫 한다. “처음 작품을 선택할 때부터 ‘시청률이 어느 정도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다만 사람들에게 좋은 느낌을 줄 것 같다는 예감은 들었죠. 예전에 ‘커피프린스 1호점’을 완성도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봤는데, 그런 기분 좋은 긍정의 느낌이 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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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선택할 때는 제가 여자라는 생각은 없어요. 그냥 하고 싶은 걸 택하죠. 남자 배우들이 여자 캐릭터를 두고 ‘해보고싶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할 것 같은데, 전 개인적으로 남자 캐릭터를 보다 보면 갈증을 느끼는 편이에요.”
최근 영화 ‘화이’를 보며 배우로서 캐릭터 욕심을 내게 됐다는 문채원은 “‘화이’ 같은 여자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일은 거의 없지 않느냐”며 “능동적으로 스토리를 쓸 수 있는 캐릭터를 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제가 바라는 건, 제가 맡은 캐릭터가 사랑스러운 무언가가 있었으면 하는 거에요. ‘굿닥터’ 같은 경우, 윤서는 꾸밀 줄 모르고 털털한 사람인데, ‘귀엽다’가 아닌 ‘구(귀)여운’ 모습을 어떻게 보여질 지를 생각하는 게 과제였어요.”
그러고 보면 ‘공주의 남자’ ‘착한 남자’ 등 주로 ‘남자’가 더 부각될 듯한 작품에서도 그녀의 존재는 특별했다. 자칫 상대 배역에 묻힐 수도 있다는 점에서 난해한 캐릭터조차 특별하게 빛날 수 있게 만드는 건 오롯이 문채원의 능력이다. 선배 주상욱 또한 그런 문채원에 대해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쯤 되면 ‘믿고 보는 문채원’이라는 평가도 겸허히 받아들일 법 한데, 문채원은 “주원씨만요”라며 손사래 쳤다.
“저는 아직 제가 믿고 보는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자신도 아직까지 저를 다 신뢰하지 않는걸요. 앞으로도 많은 경험과 부딪치고 싶어요.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1~2년 안에 (제 연기가) 갑자기 좋아질 순 없는 것 같아요. 갑자기 누구에게나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앞으로도 많은 고민을 하며 연기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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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대사인 ‘좋은 사람이 좋은 의사’라거나 ‘고민하는 모든 의사가 좋은 의사’라는 말은 그리 새로운 얘기는 아닌데, 이번 작품을 통해 ‘끊임 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의 좋은 태도 때문에 그 사람이 좋은 의사가 되고, 좋은 배우 나아가 좋은 사람이 되는구나’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실의 갈증 때문에 불만족스러워 하고 속상해하기 보다는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노력하자는 배움을 얻었죠.”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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