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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인 영화 ‘소원’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에게 축하 문자를 보내자 이 같은 답문이 왔다. 웃음 이모티콘에서 동그란 안경 너머, 주름은 깊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그의 웃음이 생각났다.
이 감독은 인터뷰 자리, 사석, 청룡영화상 무대에서도 더는 자신의 은퇴와 관련해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이제는 진짜 은퇴와 관련해서 언급할 일이 없어 마지막일지 모르니 이 말은 꼭 해야 할 것 같다.
영화 ‘왕의 남자’(2005)와 ‘라디오스타’(2006), ‘님은 먼 곳에’(2008) 들 연출한 ‘명장’ 이준익 감독은 지난 2011년 은퇴 선언을 했다. 야심 차게 준비한 영화 ‘평양성’이 흥행하지 못했고, “이 영화가 흥행하지 못하면 상업영화에서 은퇴하겠다”는 공언을 실행했다.
하지만 그는 2년 만에 현장에 돌아왔다. 언제고 복귀하고 싶었지만 명분이 없었다. 몇몇 영화에 카메오 출연하며 복귀 의사를 전하기도 했으나 쉽지 않았다. 영화 ‘소원’으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영화계에서는 따가운 시선이 있었다. 사실 ‘소원’은 다른 제목으로, 다른 감독이 연출하고 다른 배우가 출연하기로 돼 있었다. 한 배우는 제작사와 계약까지 했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문제로 영화 제작은 지연됐고, 결국 감독과 배우가 교체됐다. 요즘 영화계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이라 별다를 일 없는 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선배 감독이 후배의 영화를 빼앗고 다른 배우를 무시한 모양새가 될 수도 있었다.
내용도 아동 성폭행이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였다. 이 감독이 다뤄보지 않은 것이라 미심쩍었다. 연출 복귀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취재를 하는 기자에게 예의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만 했던 이 감독. 이미 ‘소원’을 연출하기로 마음먹은 때였다. 사실 기자는 자극적인 소재로 얼마나 괜찮은 영화를 만들지 두고 보자는 심정이었는데, 시사회를 보고 보기 좋게 한방 먹은 기분이었다. 그의 조심스러움과 진심이 온전히 담겼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개봉을 즈음한 인터뷰에서 ‘소원’을 맡기 전 “40개 시나리오를 거절했다”고 했었다. 하지만 영화 ‘소원’은 그럴 수 없었다. 이것마저 거절했으면 스스로 “비겁한 놈”이라고 했을 것이라고 했단다. 은퇴를 선언했는데 뒤집는 건 ‘전혀’ 창피한 일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인터뷰 내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피해자들에게 누가 될까 노심초사한 기억도 있다. 영화는 자극적인 접근과 그 사건의 차용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한 노력이 돋보였다. 어떤 특정한 사건에 집중하기보다 아픔의 과거를 치유하려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으려 한 점이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 감독은 지난 10월 초에도 영화가 흥행 기운을 보이자 기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돌렸다. 언론과 평단의 호평이 조금 도움이 됐을지 모르지만, 이 감독의 이야기가 관객의 마음을 동하게 했고 진심이라는 힘이 통한 게 가장 컸을 것이 분명하다. 제34회 청룡영화상이 최우수작품상 선정으로 확인시켜줬다. 그의 복귀는 명분이 있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