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보다 아름다운, ‘꽃다현’ 김다현이 ‘상남자’ 스카이를? 아무리 봐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그림이다. ‘스카이’스러운 김다현? 김다현에 흡수된 스카이? 도무지가 감이 잡히질 않아 직접 확인해봤더니,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스카이 김다현’이다.
“스카이만이 가지고 있는 남성적인 섹시함을 잃지 않으면서 뼛속까지 녹아있는 유쾌함을 모두 살려내야 하는 것이 관건이었어요. 대놓고 웃기는 ‘개그’가 아닌 순간의 재치와 세련된 위트가 살아있는, 멋스러운 유머가 포인트죠.”
김다현은 이번 공연에서 한 번도 내기에서 진 적 없는, 전설의 도박꾼 ‘스카이’로 새롭게 합류했다. 새 멤버로서의 소감을 묻자, 김다현은 “사실 저와 ‘아가씨와 건달들’의 인연은 굉장히 깊답니다”고 환한 미소로 답했다.
“고등학교 때 선배들과 ‘워크샵’에서 처음 ‘뮤지컬’이라는 걸 준비하게 됐는데 그게 바로 ‘아가씨와 건달들’이에요. 당시 막내였던 제 역할은 ‘건달 1’이었어요. 아는 게 없는 저였지만, 이 작품은 충격이자 감동이었어요.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죠.”
김다현이 극 중 맡은 ‘스카이’는 전형적인 ‘남성성’을 지닌 인물로 섹시하면서도 대범하다. 내기 한 판에 인생을 걸 정도로 뜨거운 심장을 가졌고, 한 번 약속을 하면 반드시 이를 지키는 ‘의리’ 또한 투철하다. 흡사 ‘바람둥이’와 같은 스킬과 자신감을 지녔지만, 알고 보면 순백의 순정을 지닌 매력남.
“브로드웨이 원작 속 스카이들은 유머스럽지만 멋은 없어요. 섹시하지도 않죠. 이 두 가지를 모두 놓치지 않으려고 많은 연구를 한 것 같아요. 말투와 표정에서부터 걸음걸이와 자세, 손짓 하나 하나까지 모두 세밀하게 의도된 설정을 넣었어요. 약간의 사악함, 부드러운 듯 한 방의 냉정함이 있고, 의외의 순종미도 있죠. 어찌나 어려웠던지!”
해석을 쉽지만 무대 위에서 이를 모두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김다현의 ‘스카이’는 기존의 ‘온리 상남자’의 틀을 깨고 이 다양한 면모를 모두 느낄 수 있게 한다. 그의 연기가 유독 호평을 받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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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세계에서 늘 자신만만하던 ‘스카이’는 우연한 내기로 인해 ‘선교사’ 사라를 만나게 된다. 내기로 시작된 이 만남으로 그는 순식간에 사랑의 노예가 돼버린다. 천하의 도박꾼도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는 천진난만한 소년일 뿐이다.
“스카이는 네이슨과의 내기 때문에 처음 사라를 알게 돼요. 하지만 그녀를 처음 마주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첫 눈에 반해버리죠. 내기를 핑계로 ‘작업’에 들어가지만 결국 모든 마음을 빼앗긴 채 사랑에 올인하게 된 건, 사실 첫 만남부터 정해진 운명일지 몰라요. 제가 아내를 만났을 때처럼”
‘그럼 그렇지!’ 김다현의 ‘스카이’는 완벽한 공감과 해석이 동반된 결과였다. 게다가 그의 실제 경험, 과거의 기억들이 녹아들어 있으니 이 같은 연기가 가능할 수밖에. 그에게 아내와의 첫 만남 당시를 물었다. 입가에 수줍은 웃음이 가득 퍼진다.
“공연차 지방에 내려갔다가 우연히 아내를 만났어요. 아내에게 한 번도 첫 눈에 반했다고 얘기한 적은 없지만, (저 역시 반하지 않았다고 믿어 왔지만) ‘스카이’를 연기하면서 ‘사실은 나도 모르게 운명적으로 아내에게 이끌렸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어요. 스카이가 사라에게 반해 그 내기에 모든 걸 걸었듯이, 자칫 스쳐지나갈 수 있었던 아내와의 인연을 결실로 맺은 건…저의 마음이 그랬던 것 같아요.”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천천히, 한 층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야기를 했다. 진심을 털어놓고 조금 민망했는지, 곧바로 “그렇다고 연애할 때 엄청 좋은 남자는 아니었어요”라며 농을 던진다.
“평소 매너가 좋은 편이지만 속마음을 잘 드러내는 타입은 아니에요. 애인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서운할 수 있죠. 그래서 그런지 ‘착한’ 남자친구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무심하고 멋없는 저를 옆에서 믿어준 게 바로 제 아내에요. 참 고마운 사람이죠. 아, 아내 이야기는 그만~!”
한편, 김다현은 올해로 뮤지컬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그간 ‘뮤지컬계 원빈’으로 불려온 그는뮤지컬 ‘헤드윅’,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잭 더 리퍼’, ‘라카지’, ‘해를 품은 달’, ‘아가씨와 건달들’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다.
10주년 소감을 물었더니 “이제야 ‘진짜 배려’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답했다. 그는 “한 때는 상대 배우의 연기 하나 하나에 불만을 가진 적도 있었다”고 운을 뗐다.
“‘아, 내가 이렇게까지 맞춰주는 데 왜 이 친구는 이렇게밖에 못 받아주지?’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상대방 자체를 먼저 이해하고 호흡을 맞추기보다는 그저 ‘배우’로서만 접근했던 것 같아요. 시야가 좁았던거죠.”
일명 ‘완벽주의자’로 통하기도 하는 그. 매번 무대에서 극찬을 받을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혹독한 연습량에 있다고 했다. 이제는 제법 편법을 쓸 때도 됐는데, 무대를 준비하는 그는 여전히 ‘신인’의 자세 그대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실수에도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노하우’가 생기고, 코앞의 한씬 한씬 보다는 작품 전체를 보게 됐어요. 완벽함을 추구하려다 보니 굉장히 예민하고 까다로운 면이 많았는데, 보다 완성도가 높은 공연을 만들 수 있는 진짜 방법을 깨달았죠. ‘나’ 아닌 ‘우리’를 생각하게 됐어요.”
그는 또한 뮤지컬뿐만 아니라 드라마, 예능에도 발을 넓혔다. TV 드라마 ‘무사 백동수’, ‘금 나와라 뚝딱!’ 등에서 안정된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최근 KBS2 ‘불후의 명곡2’, ‘해피투게더3’ 등을 통해 대중성까지 갖췄다. 그야말로 ‘대세’다.
가장 달라진 점을 물으니 “주변의 뜨거운 반응?”이라고 웃는다. 그는 “처음 예능 프로그램 출연 제의를 받고 걱정이 많았어요. 분량뿐만 아니라 이미지, 주변의 시선 등등”이라고 운을 뗐다.
“기승전결이 있는 무대가 아닌 단 한 번의 무대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게 참 허무하고 긴장됐죠. 토크 위주의 프로그램의 경우는 더 떨렸어요.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말을 꺼내고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다행히 신동엽, 유재석씨 같은 선수(?)들이 잘 이끌어 준 덕분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어요. 하나 하나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려던 제 모습이 하나의 캐릭터로 재미있게 표현된 것 같아요. 유쾌한 경험이었죠!” 그가 한 층 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끝으로 그는 “뮤지컬 무대는 집 같은 공간이에요. 무엇을 하든 꼭 다시 돌아와야 할 곳”이라고 했다. “무대는 제게 편안하고 설레고, 또 힘을 주는 공간이에요.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게 해 주는…당분간 방송 활동에도 주력할 예정이에요. 확실한 건 어디서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무대에는 꼭 돌아올 것이라는 거죠! 아름다운 무대,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파이팅!”
한편, 김다현은 오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해 ‘김다현의 ‘If only' with you christmas’로 관객들을 만난다. 이번 콘서트는 김다현의 생애 첫 국내 단독 콘서트로 밀레니엄 심포니오케스트라 주최로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개최된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