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그는 한낮 광대였다. 소를 잡는 백정보다 못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외모를 묘사한 기록들을 보면 하나같이 못 생기고 초라했다고 나와 있다. 입이 하도 커서 주먹이 다 들어갈 정도였는데 달문은 오히려 그것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다고 한다. 연암 박지원을 비롯해서 그를 기억하는 양반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그의 이름을 딴 달문가라는 노래가 지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미천하고 못 생겼지만, 당대 아니, 조선 후기 최고의 광대라는 찬사와 기억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못 생긴 외모를 오히려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 넉살 좋은 성격과 뛰어난 재주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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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영화 "왕의 남자" |
집이 없었기 때문에 나이가 들도록 결혼을 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낙천적이고 선량했던 그는 자신의 못 생긴 외모 때문에 아무도 시집을 오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얘기하고 다녔다. 청계천의 거지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그러다 주변의 소개로 약방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주인이 물건 값을 잊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당연히 집도 절도 없는 그가 의심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달문은 미안하다고 하면서 물건 값을 치르고 약방을 그만두었다. 며칠 후 친구가 찾아와서 급하게 쓰느라 돈을 가져갔다면서 돌려주자 약방주인은 그때야 달문이 누명을 쓰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달문은 미안한 마음에 사과하러 온 약방주인에게 오히려 번거롭게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후 달문은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중개해주는 거간꾼을 하거나 기생의 뒤를 봐주는 조방군, 즉 기둥서방 노릇을 했다. 하지만, 자유로운 예술가였던 그에게는 하루하루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은 지옥과 같았을 것이다. 결국, 하던 일을 때려치운 달문은 조선 팔도를 유람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끌어 모으며 인기를 누렸지만, 근본도 없는 떠돌이 광대라는 손가락질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는 춤을 추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지만 관습과 신분제의 틀에 갇혀 있던 조선에서는 불온하고 근본 없는 광대에 불과했다. 추재기이에서는 노총각인 그를 나라에서 결혼을 시켜주자 은혜에 감읍해서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하지만, 눈물을 흘렸다고는 해도 정말 고마워했을 것 같지는 않다. 한낱 못 생긴 광대에 불과했지만,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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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