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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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가의 주름이 많아졌고 싱그러운 젊음이 풍기진 않지만, 중년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임을 전해준다. 과거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건 변함없이 날씬한 몸매와 상대를 향해 살포시 미소 짓는 모습 때문이다.
'페이스 오브 러브'의 첫 장면. 늦은 시각 수영장 앞에서 홀로 술을 마시는 니키(아네트 베닝)로 시작한다. 쓸쓸해 보이는 니키의 뒷모습. 흐느끼는 그에게서 과거 아름다움을 떠올리지 못한다. 아네트 베닝의 20년 전, '러브 어페어'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과거 회상 장면에서다. 결혼 30년을 기념해 떠난 멕시코 여행길,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니키와 남편 가렛(에드 해리스).
하지만 니키는 계속 행복할 수 없다. 바닷가에서 남편이 수영을 하다 사망했다. 이내 현실로 돌아온 니키. 사랑했던 남편을 떠나보내고 현실에 수긍하고 살아야 하는 여자. 또 한 명의 사랑하는 존재인 딸(제스 웨이슬러)도 있고 친근한 매력의 옆집 친구 로저(로빈 윌리엄스)도 있지만,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 있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잊을 때도 됐지만 쉽지 않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남편과 자주 오던 곳이지만 발길을 끊었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오랜만에 들른 미술관에서 벤치에 앉아 있는 남자에 눈길이 멈춘다. 남편과 똑같이 생겼다. 깜짝 놀라 어쩔 줄 모르는 니키는 집으로 돌아와 이 이야기를 로저에게 했더니 "그리움이 만든 허상"이라는 답을 듣는다. 그 남자를 다시 만나도 "아무것도 안 할 것"이라고 했지만, 니키는 미술관을 계속 드나들며 남편을 닮은 남자를 만나길 바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남편을 닮은 남자 톰을 만나게 된 니키. 니키는 개인 미술 수업을 핑계로 인연을 이어가고 결국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위태로워 보이기만 하다. 둘은 어떻게 될까.
'페이스 오브 러브'는 남편과 사별한 여성이 남편과 똑같은 얼굴의 남자를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나간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잔잔하지만 여주인공 니키의 감정은 폭풍우처럼 몰아칠 듯하다. 남편을 잃었고, 다시 남편을 닮은 남자를 만났으며, 이내 혼돈에 빠지기 때문이다. 설렘과 즐거움, 희열, 여기에 미안함까지. 다양한 감정이 혼재한다.
톰에게 사실은 그가 죽은 남편을 닮았다고 말하지 못하는 니키. 톰을 만난 딸이 놀라며 난리를 치자 오히려 딸을 나무라는 니키. 톰을 가렛이라고 착각하고(혹은 의도적으로) 남편으로 대하는 니키….
아네트 베닝은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이 혼란의 인물을 제대로 표현했다. 그녀의 매력에 또 한 번 빠져도 될만하다. '러브 어페어', '대통령의 연인'이 그녀의 대표작이긴 하지만 '페이스 오브 러브'도 손에 꼽아야 않을까.
이 영화는 아리 포신 감독이 자신의 어머니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 남편을 잃은 그의 어머니는 5년째 되던 해, 우연히 죽은 남편과 닮은 남자를 마주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에 감독의 상상력이 더해졌다.
베닝의 감정을 섬세하게 카메라에 담은 감독의 연출력도 돋보인다. 톰의 이야기를 후방 배치한 뒤 마지막 장면을 통해 가슴 먹먹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사랑했던 이를 향한 니키의 눈물겨운 애정. 집착이 될 수도 있지만 그건 분명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톰의 반응과 행동도 사랑이다. 92분. 15세 관람가.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