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군의 간계에 의해 왕, 조정으로부터 버림받고 파면 당했던 조선 최고의 장군 이순신(최민식 분)은 위기에 빠진 조선의 수군을 이끌 삼도 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다. 왜군에 대한 두려움이 퍼진 조선 수군의 현실을 지켜보며 번민에 휩싸인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 남은 거북선마저 불에 타버리자 절규한다. 그러나 결코 조선의 바다를 포기할 수 없는 그는 모두의 반대에도 남은 12척의 배를 이끌고 330척 왜군에 맞선다. / ‘명량’
[MBN스타 여수정 기자] 위인전과 그저 대중의 상상 속에만 존재했던 이순신 장군이 영화 ‘명량’으로 부활했다. 이는 작품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의 덕이겠지만, 최민식과 류승룡, 조진웅, 권율, 이정현, 진구, 박보검, 이해영, 이승준 등 수많은 배우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결실을 맺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인지 연기인지 구분이 안 되는 일촉즉발의 전쟁 상황, 공포보다 무더위를 날려줄 것 같은 해전 장면, 왜군을 쿨하게 제압하는 이순신 장군의 카리스마, 왕보다 이순신 장군을 믿는 많은 백성들이 작품의 묘미다. 그러나 단언컨대 가장 돋보이는 건 이순신 장군 역을 맡은 최민식이다.
세 글자만으로 작품의 품격을 높이는 최민식은 ‘올드보이’에서 야무지게 군만두를 시식하며 “누구냐. 넌”이라는 유행어를 남긴가하면, 술잔을 기울이며 ‘찬찬찬’이 아닌 여유롭게 예술을 즐기는 모습, 적을 무찌르는 용기를 지닌 베테랑 형사, 민간인도 건달도 아닌 어정쩡한 반달, 웃으며 살인을 즐기는 연쇄살인마까지 다양한 필모그래피만큼 이색적인 캐릭터로 대중을 웃기고 울리고 오싹하게 했다.
↑ 사진=한희재 기자 |
“‘명량’을 향한 긍정 반응을 들을 때는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고 기분이 좋다. (웃음) 영화 관객층의 80%가 젊은 층인데 ‘명량’은 15세 관람가이며 역사를 다룬 작품이다. 때문에 중, 고등학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궁금하다. 영화를 통해 그동안 잊고 살았던 가치를 느꼈으면 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집안 청소 중 구석에서 발견한 것들의 먼지를 털고 깨끗이 닦아 다시 원위치에 올려놓은 셈이다. (웃음) 감독과 출연 배우들, 제작진 모두 사명감을 가지고 촬영에 임했다. 이 진심이 관객에게까지 전해졌으면 한다. 물론 CG가 들어가지만 화려한 기법이 아닌 직구로 표현되어 있어 좋았다. 정통 드라마이자 오리지널의 맛을 느꼈다.”
최민식은 ‘명량’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눈가가 촉촉해졌다. 마치 촬영 당시, 본인이 맡은 이순신에 대한 간절함, 고마움, 벅찬 감동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장군의 모습에 인간미까지 더한 이순신을 다룬 작품은 없었고 대한민국의 한 배우로서 역사적 인물 이순신 역을 맡아 제 기량을 발휘하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사실 젊은 세대들이 ‘명량’을 어떻게 볼까 걱정이다. 우리의 진심이 전해지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한다. 난 언론배급시사회 당일 일부러 서서 영화를 관람했다. 괜히 혼자 숨어서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런 감정을 정말 오랜만에 느꼈다. 예전엔 재미있게 작업을 했다면 요즘은 무대 위의 카타르시스, 소통의 짜릿함, 창작에 대한 결과물의 걱정, 이를 향한 대중의 평가, 내 직업의 의미 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내가 잘하고 있나, 생각했던 배우의 모습대로 살고 있나, 세상과 소통하고 있나 등을 깊게 떠올리고 있다. 물론 연기로 대중에게 보이겠지만 그에 앞서 내 스스로의 만족에 대한 의미가 깊어진다. 그래서 더 작품에 집착하게 되더라. 만약 40대 초반에 ‘명량’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면 더 씩씩하게 작업했을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은 내가 잘하고 있는지 무섭고 조심스러워진다. 소심해진다랄까? (웃음)”
최고의 배우인 최민식도 연기에 대한 욕심과 갈망, 아쉬움을 보이고 있다. 그 스스로는 잘 연기한 ‘명량’ 속 모습이 100%의 만족감을 안기지는 못할지라도 대중의 눈, 스크린에 비친 모습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며 불가능을 가능케 한 이순신 장군의 아바타와도 같다.
↑ 사진=한희재 기자 |
“김한민 감독이 ‘명량’ 같은 영화가 필요하다고 날 설득했다. (웃음) 나 역시 역사를 영화화하는 과정에 주저함이 없고 작품의 질도 좋아 오랫동안 고민했다. 생각해보니 재포장과 재해석의 깊은 의미를 줄 수도 있겠더라. 또 험난한 역사가 영화적 소재로 무궁무진하고 잘 제작되어 다듬어진다면 좋을 것 같았다. 사실 싸우는 장군의 모습보다는 인간적인 면모를 표현하는 과정을 주로 생각했다. 이는 ‘명량’ 출연을 결정한 요인이기도 하다. 만약 인간적인 면모 없이 그저 장군으로서의 역할만 강조됐다면 아마 출연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군으로서의 이순신 모습은 누구나 상상해보지 않았겠냐. 그러나 난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부하를 잃은 장군으로서 느낄 수 있는 한 인간의 분노, 슬픔, 기쁨 등의 감정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난중일기’에 묘사된 부분이 정말 좋다. 이순신 장군의 기백과 신념, 의지, 실천, 행동 등 감동적이다. 왜 위대한 분인지 다시금 느꼈다. 이순신 장군도 사람인데 왜 두렵지 않았겠냐. 그럼에도 이를 극복하고 실천하는 행동이 감동적이더라.”
아들 역의 권율과 마주 앉아 식사하는 최민식, 전쟁에서 승리한 후 토란소년 수봉(박보검 분)에게 다정하게 미소를 지어주는 최민식, “장군, 억울하오”라며 전쟁 당시 억울한 죽음을 당한 부하들의 영혼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 사과하는 최민식, 구선이 불에 타자 격하게 오열하는 최민식, 폭탄이 터져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도 당당히 배를 지키는 리더 최민식 등 다양한 그의 모습이 인간 이순신에 대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게 도왔다.
“이순신 장군은 정말 존경할 수 밖에 없는 거대한 존재감이다. 그래서 잘 표현하고 싶었고 이게 장군을 향한 나의 예의라 생각했다. 물론 실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분이라 표현에 두려움이 있었지만 정말 잘 연기하고 싶었다. 연기하는 내내 이순신 장군이라면 어땠을까를 자주 상상하곤 했다. 그러다 진짜 딜레마에 빠진 적도 있다. 정말 이순신 장군이 궁금하고 보고 싶었다. 가능한 일이 아닌 걸 알면서도 내게 왜 이런 강박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배우가 연기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궁금하고 만나서 의견을 듣고 싶었다. 인간으로서 남자로서 장군으로서 이순신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 사진=한희재 기자 |
“아들 이회와 밥을 먹는 장면 등 장군외의 모습이 표현되길 바랐다. 어머니의 위패를 보며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들로서의 죄송한 마음. 내 상상 속에서 이순신 장군은 정말 외로웠을 때나 고민이 있을 때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했을 것 같더라. 아들로서 어머니에게 칭얼거리기도 할 것 같았다. 이를 표현하려 노력했고 이점이 다른 이순신 장군을 그린 작품과의 차별 같다. 차별보단 내가 접근하고 싶은 이순신의 모습이었다. 이미 유명한 어록들 역시 거울을 보고 연습해서 되는 게 아니더라. 느낌이 중요한데 이를 도와준 이들이 바로 후배들이다. 부하가 된 후배들이 눈빛이 날 너무도 정확하게 보고 있어 장
한편 이순신 장군으로 천만 배우 타이틀을 얻은 최민식은 오는 9월 4일 ‘루시’로 다시 한 번 스크린 장악에 도전한다.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