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박정선 기자] “레전드 강혜정이요?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데요.”
분명 강혜정에게도 여배우로서 ‘레전드’였던 시기가 있었다. 지난 2003년 영화 ‘올드보이’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이름을 알린 강혜정은 2005년 ‘연애의 목적’ ‘웰컴투동막골’로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는데 성공했다.
두 작품을 연달아 선보이며 인기를 끈 배우 강혜정에게 2005년은 그야 말로 최고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겠다. 먼저 개봉한 ‘연애의 목적’은 2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전작인 ‘올드보이’에서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뽐냈다. 800만이 넘는 관객을 몰았던 ‘웰컴투동막골’에서 역시 강혜정은 파격적인 변신을 선보였다. 머리에 꽃을 꽂고 내뱉었던 대사 “마이 아파~”는 현재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기며 그 해 각종 시상식의 여우조연상을 휩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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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여러 작품에서 간간히 모습을 비춘 그녀지만 사실상 전작들만큼 두각을 드러내진 못해 팬들의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최근에는 TV 예능프로그램에서 ‘하루 엄마’로서의 역할으로만 일상을 공개해왔던 그녀였다. 물론, 그 모습도 팬들에게는 충분히 기분 좋은 에너지를 줬지만 스크린 속 강혜정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져갔다.
그런 그녀가 ‘하루 엄마’가 아닌 ‘여배우’로서 관객들 앞에 나섰다. 최근 개봉한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바로 강혜정의 5년 만에 스크린 복귀작이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집 나간 남편 대신 가장이 된 철부지 엄마 역을 맡아 영화 속에서 이레, 홍은택과 함께 가족애를 그려나가는 중심축 역할을 했다.
“대중들에게 ‘하루 엄마’로 기억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사실 하루 엄마 맞잖아요.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데요. 저에게 배우와 엄마의 경계는 뚜렷하게 있어요. 배우의 본분을 다하면서도 집에서는 하루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하죠. 전혀 두렵거나 불안한 건 없어요.”
그녀의 말대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하 ‘개훔방’)에서는 TV 예능프로그램에서 봐왔던 하루 엄마는 없었다. 온전히 배우로서의 모습으로 대중들을 다시 만나게 한 ‘개훔방’은 미국의 여류작가 바바라 오코너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사라진 아빠와 집을 되찾기 위해 개를 훔치려는 10살 소녀의 기상천외한 도둑질을 그린 ‘견’범죄 휴먼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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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투동막골’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와 비슷한 전율을 느꼈어요. 그런데 걱정도 많았죠. 오랜만에 간 촬영 현장이 긴장되더라고요.(웃음) 다들 ‘레전드 강혜정’을 기억하고 계신 것에 대한 부담도 있고요. 처음엔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는데 촬영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했어요.”
제법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당시부터 ‘이 작품이다’라고 무릎을 ‘탁’ 쳤던 그녀는 영화 촬영 이후에도 여전히 만족감을 드러냈고, 이 선택에 조금의 후회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이들 주연의 작품이다 보니 비교적 분량이 적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을 것도 같았다. 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전혀 아쉽지 않았어요. 오히려 어른들이 많이 안 나와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어른들이 나와서 비중싸움만 하다 끝나는 그런 영화가 아니잖아요. 제가 영화에서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아요. 어떻게 나오느냐의 문제죠. 아역배우들의 빈자리를 적절히 채워주는 식의 균형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김성호 감독이 그런 밀당을 잘 하더라고요.(웃음)”
극중 강혜정은 두 남매의 엄마로 열연을 펼쳤다. 실제로 엄마가 된 후 맡은 엄마 역할은 기존 강혜정만의 독보적인 색깔에 성숙함까지 더하며 관객들이 마음을 건드렸다. 실제로 그녀가 영화 속에서 엄마 역할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들 제가 아이를 둔 엄마라는 생각을 못하더라고요.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와도 타블로와 이하루의 동거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요. 워낙 독립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역할을 많이 해서 그런가 봐요. 심지어는 제 주변에 가족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세요. 박혁거세가 알을 깨고 나온 것처럼 홀로 버티는 이미지라고나 할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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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을 통해서 이전 작품들과는 또 다른 모습을 선보였던 강혜정은 “아역들에게 많이 배웠다”면서 극중 딸 지소 역의 이레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카리스마하면 강혜정 아닌가. 그런 그녀를 상대로 절대 주눅이 들거나 피하지 않는 이레의 모습에 그녀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아역들 같은 경우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티가 날 수도 있는데 걱정과는 달리 잘 따라와 줬어요. 특히 이레에게 감정 연기를 많이 배웠죠. 눈물 연기를 잘 하길래 ‘무슨 생각 하면서 연기하냐’고 물었는데 이레가 ‘지소가 많이 불쌍하잖아요. 아빠가 보고 싶은데 보지도 못하는 게 마음이 너무 아파요’라는 대답을 하더라고요. 보통 성인 연기자들도 슬픈 기억을 떠올려 눈물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레가 스스로 스토리와 캐릭터만으로 감정을 이입하더라고요. 저보다 낫던걸요?(웃음)”
강혜정은 ‘개훔방’으로 5년 만의 스크린 복귀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새해에는 더 많은 작품으로 팬들을 찾겠다는 포부를 보였다. 다음에는 또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들을 놀라게 할까.
“저를 간절히 원하고 제가 재미를 느끼는 작품을 선택할 거예요. 남편도 제 선택을 지지해줘요. 그런데 이번에 ‘개훔방’을 촬영한 다음에는 ‘국민 엄마’가 되길 바란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사진=곽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