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과거 악행에 혀를 차는 이가 많다. 입에 담기도 힘든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 그 악독한 일에 대한 체감 온도는 높진 않지만, 그래도 당시를 경험한 이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한 고통이었으리라.
과거 일본의 생체실험 내용을 담은 영화들을 보고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있다. 사람들이 고문당하던 그 장면을 떠올리는 이들도 꽤 많을 거다. 영화 ‘언브로큰’은 과거 일본의 잔혹함을 알리는 작품은 아니다.
1940년대 미국의 영웅이었던 루이 잠페리니의 실화를 담은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한 사람의 일생을 담는 데 신경을 썼다. 이민자 집안의 아들인 잠페리니가 형의 권유로 육상을 시작하고 최연소 올림픽 국가대표로 발탁되지만, 2차 대전의 발발로 전쟁에 참여하고 모진 고문을 당하는 인생이 기록됐다.
공군 장교로 참전한 잠페리니(잭 오코넬)는 임무 수행에 나섰다가 추락, 바다에 표류한다. 47일 동안 바다 위에 떠다니며 생존한 그의 앞에 나타난 건 일본군. 일본 포로수용소에서 온갖 역경과 고난을 견뎌낸다. 고행이었지만 제목처럼 부러지지는 않았던 잠페리니의 삶이 영화 전반에 흐른다.
연출자로 메가폰을 잡은 안젤리나 졸리는 잠페리니의 일생을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유쾌한 장면들이 간혹 졸리 감독의 유머 감각을 알 수 있게 하지만, 감독은 대부분 거의 담담한 연출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원작 소설에서는 일본군의 생체실험과 인육을 먹이는 등의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 영화에서는 없다. 수감자들 사이에서 ‘새’라고 불린 포로수용소의 악명높은 와타나베(미야비)가 잠페리니를 괴롭히는 장면들이 수차례 나오지만 수위가 그리 세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악랄하기보다 짜증나는 악역이다. 과거 충격적인 영상들을 본 경험이 있는 우리들에게 와타나베의 악행이 잔잔하게 다가올지 모르겠다(심하게 말하면 사실 미야비가 연기를 잘했는지도 모르겠다).
졸리의 연출은 안정적이다. 대단한 것도 없어 보이고, 못한 것도 아니다. 다만 관객에게 분노라는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데는 실패했다. 감동적이지도 않은 것도 아쉽다. 실제 루이 잠페리니가 등장하는 영상과 자막에서도 감동을 찾을 순 없다.
일본의 극우 세력은 일본 내 상영 금지와 졸리의 입국 금지를 요구하고 있고, 미야비에게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데 소설의 내용만 봐서인 듯
안젤리나 졸리가 감독하고, 영화 ‘인셉션’과 ‘인터스텔라’ 등을 만든 제작진과 코엔 형제가 각본에 참여했다는 유명세만으로 한국 관객에게 호감을 살지는 미지수다. 137분. 15세 관람가. 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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