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23일 열렸던 MBC 드라마 ‘오만과 편견’ 제작발표회. 배우 이태환(20)은 긴장해 있었다. 큰 키 덕분에 딱딱한 행동거지가 더욱 돋보였다. 첫 지상파 드라마 출연. 약관의 막내. 그럴 만 했다. 정확히 석 달이 지난 2015년 1월 23일. 한층 여유로워진 그를 만났다.
“여유가 생긴 것 같나요? ‘오만과 편견’이라는 드라마가 워낙 무거운 분위기라서요. 처음엔 내용도 어렵고 대본 분석도 안 되고 고민이 많았죠. 게다가 첫 지상파 드라마였거든요. 긴장을 많이 한 게 사실이에요. 그래도 좋은 배역을 맡았어요. 선배님들께 배워가는 과정이기도 했고요. 감독님, 작가님, 촬영 스태프 분들 모두에게 도움을 받았어요. 그 분들의 경력과 노하우를 배울 수 있어 기뻐요.”
이태환은 ‘오만과 편견’에서 인천지검 수사관 강수 역을 맡았다. 태권도 선수 출신으로 속 깊고 마음 따뜻한 청년이다. 수사할 때를 빼 놓고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숫기 없는 꽃미남 순둥이다. 과거 출연했던 ‘방과 후 복불복’ ‘고교처세왕’에서의 다소 가벼운 캐릭터와는 성격이 다르다.
“(최)진혁이 형, 손창민 선배와 만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진혁이 형은 제게 많이 맞춰줬어요. 어려운 걸 물어봐도 항상 들어주셨어요. 그래서 연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손창민 선배님과는 주로 감정을 담은 장면을 촬영했어요. 촬영 전에 미리 시범을 보여주시더라고요. 굉장한 도움이 됐어요. 또 ‘방과 후 복불복’이나 ‘고교처세왕’에서는 코믹이라는 장르 특성상 애드립을 하는 등 자신감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분위기였거든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소화하는 데 선배님들 덕이 컸죠.”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연기의 쾌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온몸에 돋은 소름이 한동안 가시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귀에서는 ‘삐’ 소리가 나고, 머리는 멍했다. 짧은 연기 경력에서 첫 경험이기에 “잊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가위에 눌리는 장면이 있었어요. 촬영 전부터 감독님께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하더라고요. 포인트 분석을 다 해주시더니, 연기 지도까지 손수 받았어요. 그걸 염두에 두고 연기를 시작했죠.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다 하고 나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짜릿한 느낌만 받았거든요. 이런 게 연기의 쾌감인가 싶었죠. 감독님께서 제게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주려고 적극적으로 도와준 것 같아요.”
이태환은 또 작품이 끝나고도 캐릭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경험을 했다. 선배 배우 최민수의 “배우라면 촬영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 캐릭터로 살아야 한다”라는 조언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태환은 “처음엔 이해를 못 했다”고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강수처럼 조용한 아이가 돼 있었단다.
“말로만 듣던, 캐릭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험을 내가 할까? 의문이었는데 변해가는 제가 보이더라고요. 극 초반에 강수는 밝고 착한 캐릭터인데 중후반으로 갈수록 무겁고 우울해지거든요. 어느새 저도 그렇게 변해 있더라고요. 촬영이 없을 때도 슬프고요. 사람들도 다 싫어지고요. ‘아 바로 이런 거구나’하고 뒤늦게 깨달은 게 조금 아쉬워요. 덕분에 ‘강수답다’라는 칭찬을 많이 받긴 했어요.”
“가족을 제외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색할 것 같아요. 짝사랑에서 끝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모델로 데뷔해서 그런가 봐요. 15살에 모델계에 입문했는데, 어린 친구가 새로 왔다고 신기하고 귀엽게 봐주시더라고요. 집에서는 또 막내아들이거든요. 귀염 받기만 하는 데에 무언가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때 남자다워야겠다고 생각해서 운동도 많이 하고 외국 쇼를 보면서 ‘남성미’ ‘카리스마’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죠. 하하.”
이태환은 롤모델로 차승원을 꼽았다. 진로 고민에 빠져있던 중학생 때, 차승원의 존재를 알게 돼 그를 동경했다. 모델다운 카리스마, 예능에서의 자연스러움이 모두 부러웠다. 그렇게 부모님께 “모델이 되겠다”고 선포했다. 평소 “얼굴만 다치지 말고 건강히 커서 모델만 하라”고 농담처럼 말하던 어머니도 ‘진짜 모델’을 이야기하는 아들에게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엄마가 ‘키만 커라’고 장난으로 늘 말했거든요. 그걸 자꾸 들어서 그런지 모델이란 직업에 대한 추상적인 경외심은 갖고 있었어요. 그러다 차승원 선배님을 알게 된 거죠. 정작 엄마는 당황하고.(웃음) 엄마가 하라고 해서 하는 건데 뭐가 문제냐며 싸우기도 했어요. 그래서 모델학과가 생긴 학교를 조사분석해서 보여드렸죠. 엄마가 선생님을 만나서 상담한 후에야 저를 믿어주시더라고요. 걱정하는 부모님 마음은 다 똑같잖아요. 이후 모델로서 결과물을 계속 보여주니까 부모님도 이제는 막 자랑하고 다녀요.”
“서프라이즈 합류를 앞두고 다양한 연습을 한다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어요. 춤, 노래도 배역에 있어서 무시 못 할 요소거든요. 어떤 인물은 춤을 추고 노래를 할 수도 있잖아요. 또 신인 다섯 명이 팀으로 활동한다면 단점보단 장점이 많을 것 같았어요. 그래도 노래는 어려워요.(웃음) 스스로 점수를 매기자면 50점을 줄래요. 50점만큼 잘한다는 평가가 아니라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점수라고 봐주세요. 계속 연습하고 트레이닝 받을 거니까요.”
‘멀티 능력’도 좋지만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건 연기다. 이태환은 판타지오 특유의 기본기 훈련 방법을 소개했다. 그는 “가장 기본으로 몸 쓰는 법을 배웠다”며 “판타지오에서 처음 배운 것은 장풍 쏘는 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연기는 말이 먼저 아닌가요? 상대와 주고받는 대사가 최우선이잖아요. 그런데 판타지오에서는 두 명씩 짝을 지어서 장풍을 쏴보래요. 동물흉내도 내고요. 알고 보니 감정 전달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것이었죠. 갑자기 기를 모으고 장풍을 쏘는 걸 상상해보세요. 웃기잖아요. 하하. 놀랍게도 직접 하니까 달라요. 장풍 하나 쏘고 맞는 연기를 하는 데도 눈을 마주 보면서 하는 감정 교감, 합이 맞는 리액션 등이 매우 중요하더라고요.”
서프라이즈는 2월 1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제3회 드라마피버어워드에 참석해 공연을 펼친다. ‘드라마피버어워드’는 한국 드라마를 수입해 모바일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피버’라는 기업이 주최하는 행사다. 서프라이즈는 ‘드라마’로 초청받은 건 아니지만, 배우그룹이자 가수그룹으로서 특별손님이 됐다.
‘원석’이라 평가받던 서프라이즈는 이렇듯 다양한 활동으로 점차 ‘보석’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태환은 “어디에 놔도 잘 굴러갈 수 있는 동그란 모양의 보석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어떤 배역을 맡아서 자신만의 매력으로 소화하기 위해서다.
“조인성 선배님의 ‘비열한 거리’ 같은 영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