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와 권력을 향한 야망 속 숨은 순수라기 보단 한 남자의 순수한 사랑이 격하게 돋보인다. 이는 마치 핏빛 기록이 아닌 핏빛 사랑과도 같다.
[MBN스타 여수정 기자] 왕이 될 수 없었던 왕자 이방원(장혁 분)과 여진족 어미 소생으로 정도전의 개가 된 민재(신하균 분), 쾌락만을 쫓는 부마 진(강하늘 분), 곱고 또 고운 기녀 가희(강한나 분). 이들이 한데 얽히고설켜 영화 ‘순수의 시대’를 이끌어나간다.
명확하다 못해 정확한 캐릭터의 성격은 인물들의 관계를 돋보이게 만들고 흠잡을 데 없는 배우들의 연기는 놀랍다. 특히 이번 작품이 첫 주연인 강한나는 신인 여배우의 스크린 등용문과도 같은 ‘노출’과 ‘베드신’을 과감하게 소화해냈다. 단순히 벗는 게 아니라 가희의 감정을 담았기에 결코 노출에만 시선이 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기력에 더 눈길이 가게 된다.
‘빅매치’와 드라마 ‘미스터 백’으로 관객을 홀렸던 연기 요물(?) 신하균은 거친 행동과 순수한 사랑 그 사이의 균형을 맞추며 민재로 다시 한 번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파격 노출과 베드신도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여태까지 보이지 못했던 모습을 ‘순수의 시대’를 통해 선보인다.
장혁과 강하늘 역시 늘 그렇듯 맡은 배역을 제대로 소화했다. 사극 드라마로 이미 시청자를 만나고 있는 장혁은 욕망에 눈 먼 이방원으로 분했다. 그저 욕망에만 사로잡힌 인물이 아니다. 가끔씩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더해 친근하기까지 하다. ‘쎄시봉’으로 감미로운 목소리를 선사했던 강하늘은 생애 첫 악역에 도전하며 이보다 더 나쁘고 잔인할 수 없다. 영화를 본 관객은 “촬영을 하고 인격적으로 죄책감을 느꼈고 심적인 어려움도 컸다”고 밝힌 강하늘의 고충을 십분 이해할 것이다. 어려웠겠지만 야비하고 자극적인 진 역을 소화한 강하늘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네 배우들은 각자가 맡은 캐릭터를 빛내며 극에 활력을 더했다.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만 좋다고 영화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건 착각이다. 이들의 연기를 뒷받침해주고 부연설명해줄 이야기와 연출력이 부족하다면 아무리 연기의 神이 와도 어색할 뿐이다.
공개된 예고편이나 티저 등을 본다면 ‘순수의 시대’는 정확하게 세 남자의 욕망에 대한, 왕국 조선의 운명에 대한 핏빛 기록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빗나갔다. 세 남자의 욕망이 드러나지만 오직 민재만 돋보였고, 그 역시 욕망보단 사랑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때문에 욕망과 분노에 대한 정보만을 알고 간 관객 입장에선 배신감을 느낄 만도 하다. 욕망과 분노는 베이스를 깔 뿐, 그 중심에는 로맨스가 강하다. 오히려 배신을 쫓는 가희에 집중하면 배신감이 조금은 반감될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만족스럽고 익숙한 역사적인 인물과 새로운 인물의 조화도 좋다. 조선 개국 7년이란 익숙한 배경을 아름다우면서 신선하고 세련되게 스크린에 옮긴 것 역시 탁월했다. 하지만 이들을 한데 모으는 연출력이 아쉽다. 반찬은 참 많은데 함께 먹을 가장 기본이 되는 밥이 없어 젓가락 둘 곳이 마땅치 않은 셈이다. 오는 3월5일 개봉.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 사진=포스터,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