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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 넘기자고 시작한 게 25년이 됐다. 처음엔 음악보다 음악을 소개하는 게 재미있었다. 지금은 힘든 하루에 지친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나의 가벼운 농담에 피식 웃으며 기운을 되찾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디스크쟈키(DJ) 배철수가 25년간 ‘배철수의 음악캠프’(이하 ‘배캠’) 자리를 지켜온 이유는 이처럼 간단했다. 팝음악 전문 프로그램으로 폭넓은 청취층의 사랑을 받아온 ‘배캠’. 하루 2시간씩 만 25년, 총 1만8천 시간을 이어왔다. 이는 동일 타이틀, 동일 디제이 음악방송으로 국내 최장수 기록이다.
12일 서울 상암동 MBC 신사옥에서 열린 MBC 라디오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 25주년 기자간담회. 배철수는 이날 ‘디스크쟈키’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철학과 라디오 프로그램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디스크쟈키는 소멸돼 가고 있다”며 “물론 라디오 방송은 계속 진행되고, 진행자들도 많이 나오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디스크쟈키는 앞으로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철수는 ‘진짜 디제이’로 25년을 지냈다. 지난 1990년 3월 19일 첫 방송된 ‘배캠’은 다양한 팝 음악과 관련 정보를 제공하면서 학계의 대가, 음악계의 대가를 초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청취자들의 귀를 사로잡아왔다.
디제이로 발탁됐을 당시 밴드 활동에 집중하고 있었던 배철수는 “과감히 음악을 접고 방송을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왔다. 서툰 진행 실력에 지적도 많이 받았지만 25주년 축하 인사도 많이 받았다”며 “개편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더 오래 하고 싶은 생각은 없기 때문에 개편 때마다 주어지는 6개월마다 재미있게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내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면 위대한 운동선수의 등번호를 영구결번 하듯 차라리 프로그램이 영구 폐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배철수와 함께 호흡하는 정찬형 피디는 오는 13~15일 사흘간 진행되는 특별 생방송 ‘라이브 이즈 라이프(Live is Life)’를 앞두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또 16일 ‘배캠과 함께 한 25년’, 17일 ‘배캠 라이브 아티스트 하이라이트’, 18일 ‘3일간의 축제 Live Is Life 하이라이트’, 19일 ‘배캠 25주년 집중토론: 배캠의 진로를 묻는다’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됐다.
바쁜 일정을 앞둔 상황에서 정 피디는 ‘배철수’라는 존재에 더 큰 힘을 보탰다. 그는 “배철수를 빼곤 우리 프로그램을 논할 수 없다”며 “90년대 자료를 찾다보면 배철수의 앳된 목소리가 담겨 있는데 지금은 ‘다락방’처럼 케케묵은 냄새가 나는 ‘인간 배철수’가 됐다. 스스로가 25년 만에 ‘추억이 가득한 다락방’이 됐는데 앞으로도 현대인들에게 다락방 역할을 하는 디제이가 되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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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철수에게 ‘배철수의 음악캠프’란?
“삶 그 자체입니다.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애인이기도 하죠. 제게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떼어내면 남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모든 스케줄은 라디오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조정해요. 어떤 일이든 라디오에 방해가 되면 하지 않는 편이고요. 물론 돈을 엄청나게 주면 생각해볼 수는 있겠죠. 하하. 저도 25년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네요. 청취자들에게도 많이 배우고. 그간 출연해준 분들에게도 마찬가지죠.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25년에 걸쳐 ‘인간 배철수’를 만든 셈입니다. 제게 가장 소중한 프로그램입니다. 두 번째는 물론 아내입니다. 하하.”
-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그만둔 후의 모습을 상상 상상해본 적 있나요?
“매일매일 생각합니다. 그만두면 ‘여행을 가야지’ ‘뭘 해야지’ 여러 계획을 세우지만 늘 거기에 그쳐요. 사람이 아침에 했던 생각을 저녁에 바꾸기도 하니까요. 생각해봐야 소용도 없고, 늘 그날그날 할 방송 생각 뿐이에요. 라디오에 많은 힘을 쏟기도 하고요. 모르는 음악을 내지는 않거든요. 선곡 중 99%를 알아요. 그러려면 많이 들어봐야죠. 저도 모르는 음악을 청취자에게 들어보라는 건 아니잖아요? 어제는 4시경에 방송국 엘리베이터 앞에서 유재석 씨를 만났는데 ‘벌써 나오셨냐’고 묻더라고요. ‘원래 이 시간에 나온다’고 했죠. 남들이 보기엔 방송 2시간 전에 나오는 내가 이상해 보일 수 있겠네요. 솔직히 말하면 할 일이 별로 없어요.”(웃음)
- 디스크쟈키로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평가하면 어떨까요?
“진짜 어울리지 않지만 성실하다는 것? 하하. 또 솔직하다는 점이 강점이네요. 입에 발린 말은 잘 못하거든요. 옳은 건 옳고 틀린 건 틀렸다는 걸 돌려서 말하지 않아요. 그래서 청취자들과 다투기도 하고요. 단점은…. 음, 너무 많네요. 따뜻함이 부족한 것 같고, 남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고, 고집이 세죠. 일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알 텐데, 제가 양보를 잘 안 해요. 주위 사람들은 아마 많이 피곤할 거예요.
- 그런 성향은 어떤 사건사고가 있어도 음악을 멈추지 않는 데에서 드러나는 것 같은데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슬픈 일들이 있었을 때에도 음악을 내고 이야기를 나누고 농담을 던졌어요. 우리는 시사 프로그램도 아니고, 꼭 사회적인 뉴스에 대해 코멘트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늘 이런 지적을 받을 때마다 각 프로그램마다 역할이 다르다고 설명해요. 정치사회 문제는 하루 종일 들을 수 있지 않느냐고요. 저는 우리 프로그램에서 다만 2시간만이라도 퇴근길의 지친 몸과 마음을 좋은 음악과 디제이의 실없는 농담으로 풀 수 있다면 만족해요. ‘피식’ 웃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그것이 바로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앞으로도 변함없을 겁니다.”
- 25년간 청취자 성향도 많이 바뀌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배캠’을 듣는 25년 전 청취자들이 남아있어요. 60대 청취자도 많아요. 젊은 세대는 부모님을 따라 듣을 수도 있겠고요. 우리 프로그램 외에 이런 다양한 청취층을 가진 곳은 없는 것 같네요. 다양한 세대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 함께 하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 언젠가부터 라디오에서 음악을 듣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는데요.
“맞아요.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초기에 음악을 20여 곡 정도 틀었어요. 지금은 많이 낸다고 해도 15곡 정도에 그치죠. 다섯 곡이 비워진 시간은 제가 이야기로 채워야 합니다. 그럼에도 라디오 중 ‘배캠’은 음악을 많이 내는 프로그램이라는 거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음악만 틀면 라디오를 안 들어요. 피디들도 고민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해야 라디오를 많이 듣게 할까. 결국은 대중의 기호에 맞춰야 한다는 거죠. 음악이 줄었다는 건 그에 대한 반작용일 테고요. 어쨌든 사람들이 많이 듣게 돼야 음악을 많이 낼 수 있다는 것, 동시대 대중의 요구에 의해서 방송은 만들어진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 대중이 팝음악을 계속 들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팝음악을 단순히 미국이나 영국의 대중음악으로 생각하는 건 옛날 사고방식입니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문화 중 하나로 보는데요. 영화에 비유하자면, 우리나라 영화 산업이 잘 되고 있는 건 감독이나 작가들이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발전해온 것이라고 생각해요. 음악도 마찬가지죠. 각계각층의 작사가, 작곡가, 프로듀서, 연주자들이 거의 다 팝음악을 들은 세대란 말이죠. 그들이 계속 음악을 듣고 새로운 걸 시도하며 음악을 발전시켜 온 것입니다. 팝을 듣지 않고 우리 음악 안에서 복제와 재생산을 해간다면 어느 순간 세계 음악계의 흐름에서 도태될 거예요. 우리 음악도 소중하지만 밖으로 열려있는 창문을 닫아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가장 많이 소개한 곡은 무엇인가요?
“20세기 음악을 논하는데 비틀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비틀즈 음악이 아마 가장 많이 나간 것 같은데, 정확한 건 통계를 봐야겠죠. 하하.
- 팝음악에 비해 한국음악이 발전해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한류 열풍이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데 특정 장르에 그치는 것 같아요. 록, 재즈 등 다방면에서 노력하는 후배들이 많습니다. 뮤지컬도 잘 되고 있는 것 같네요. 음악을 비롯한 모든 예술 장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다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프로그램에서는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려고 노력하는 거고요. 록앤롤, 재즈, 테크노, 일렉트로닉, 힙합까지. 물론 모든 노래를 소개할 수 없어 아쉽지만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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