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정예인 기자] 닉 블롬캠프 감독이 신작 ‘채피’에서도 요하네스버그를 범죄의 소굴로 만들었다. 그가 매번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를 치안이 어지러운 도시로 그리는 이유가 궁금하다.
요하네스버그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번영한 상공업 도시다. 그러나 치안이 좋지 못한 탓에 크고 작은 범죄들이 기승을 부린다. 당연히 관광객들에게는 구태여 들르지 않아도 좋을 도시다. 블롬캠프 감독은 이곳에서 태어나 18살이 되던 해 캐나다로 이주했다. 10대를 통째로 보낸 만큼 그에게 있어 요하네스버그는 특별한 곳이다.
블롬캠프 감독은 캐나다인이었기에 아프리카에서 거주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소외된 주인공이 등장한다. ‘디스트릭트9’의 비커스(샬토 코플리 분)와 ‘채피’의 채피(샬토 코플리 분)는 인간도, 외계 생물도, 로봇도 아닌 채 경계에 선 인물이다. 마치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갈 길을 잃은 10대의 닉 블롬캠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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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디스트릭트9 포스터/스틸컷 |
‘디스트릭트9’의 비커스는 요하네스버그 인근 지역에 불시착해 디스트릭트9(9구역)에 임시 수용된 외계인을 통제하던 외계인 관리국(MNU)에 근무한다. 그는 디스트릭트9을 폐쇄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도중 외계물질에 노출되고,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면서 외계인으로 변한다. 비커스는 외계 신무기를 가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고, 정부는 갑작스레 사라진 그를 추적한다.
블롬캠프 감독이 비커스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종차별이다. 과거 흑인은 백인의 관리 아래 구역별로 제한된 채 거주할 수 있었고 마치 동물처럼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다. 작품 속 외계인 역시 인간 사회로부터 분리되고 격리된 존재이며 인간으로부터 결코 이해받지 못하는 생명체다. 비커스는 유일무이하게 인간과 외계생명 사이를 오가며 두 입장 모두를 헤아릴 수 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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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채피 스틸컷/포스터 |
‘채피’의 채피 역시 마찬가지다. 채피는 디온(데브 파렐 분)이 설계한 인공지능(AI)을 실험해보기 위해 제작한 로봇이다. 채피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채 인간도 로봇도 아닌 삶(?)을 살아간다. 그는 인간세계에 동화되기 위해 친구들인 갱스터와 비슷한 말투, 행동을 하지만 사람들은 채피만 보면 도망치거나 공격하기 일쑤다. 갱스터를 체포하는 로봇경찰과 생김새가 똑같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만 보면 채피는 살아남지만, 그가 인간인지 로봇인지는 결론지어지지 않은 채 작품이 마무리된다.
블롬캠프 감독이 채피와 비커스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카오스와 다름없는 요하네스버그 전반을 지배하는 흑백논리를 뒤흔들고자 함이다. 그가 그리는 요하네스버그는 오로지 돈만을 쫓는 범죄자들과 그들을 소탕할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지배자들, 반으로 나뉘어 있다. 그 사이를 채피와 비커스가 자유롭게 오가며 자신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퍼뜨리고 사회의 체계에 질문을 던진다.
블롬캠프 감독에게 있어 요하네스버그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자, 유에서 무를 창조할 수 있는 배경이 되는 공간이다. 요하네스버그에선 셀 수 없는 갱스터들이 서로에게 총을 난사하고, 은행 트럭을 탈취하며, 취미삼아 뒷골목에서 개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이 잔혹하게만 느껴지는 건 아니다. 거친 갱스터들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자면, 어딘지 모르게 정감 간다. 그것이 블롬캠프 감독이 그리고 싶었던 유년 시절의 요하네스버그가 아니었을까.
정예인 기자 yein6120@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