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이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이 조강자의 마음일 거예요. 어쩌면 몇 년 후에 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남 일 같지 않고 찍으면서 씁쓸하기도 하고, 교복을 입기까지 또 통쾌하기도 하네요.”(MBC 드라마 ‘앵그리맘’ 제작발표회 당시)
90년대 배우 김희선은 ‘예쁨’의 상징이자 톡톡 튀는 신세대의 대표주자였다. 뛰어난 미모 덕분에 안방극장 여주인공 자리를 꿰찰 뿐 아니라, 당대 미인들의 전유물이기도 한 불치병의 걸린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분하면서 청순가련으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며 대표 이상형으로 군림해 왔었다.
김희선은 드라마 ‘웨딩드레스’ ‘프로포즈’ ‘세상 끝까지’ ‘토마토’ 등 각종 작품을 흥행시키는 것은 물론, 수십 편에 이르는 CF를 휩쓸기도 했다. 김희선이 하고 나오면 머리띠조차 ‘김희선 머리띠’라는 이름으로 불티나게 팔리면서 그 인기를 증명해 나갔었다.
↑ 사진=MBN스타 |
데뷔와 함께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전성기를 보냈던 20대의 김희선이었지만, 이후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이 같은 영광은 조금씩 퇴보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요조숙녀’ ‘스마일 어게인’ 등 출연 작품의 흥행실패라는 쓰라린 맛을 보았으며, 과거 자신의 전유물이었던 CF들을 하나 둘 씩 후배 배우들에게 물려주게 된 것이다. 이 시기 매번 반복되던 연기 패턴이 식상하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희선은 지난 2012년 출연했던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서 “떨어진 인기를 온몸으로 느끼나”는 MC 이경규의 질문에 “내가 하고 있던 내 CF를 어린 후배들이 할 때 느낀다. 재계약에 실패했을 때”라고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배우 김희선의 인기가 떨어질 때쯤 인간 김희선의 인생은 새롭게 피어났다. 2007년 10월 한 모임에서 만난 사업가 박주영과 비공개 결혼식을 치르며 가정을 꾸린 것이다. 즐거운 신혼생활을 보낸 김희선은 그로부터 2년 뒤인 2009년 1월 첫 딸 박연아 양을 낳게 된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한동안 브라운관에서는 김희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 지냈다.
“친구 같으면서도 존경받을 수 있는 엄마. 좋은 말 벗, 같이 취미도 즐기고 때론 깊이 있는 충고도 해줄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어디서든지 엄마를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엄마라면 더욱 좋겠어요.” (2009년 연합뉴스와 인터뷰 中)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이후 배우 김희선의 연기방향은 크게 달라진다. 2012년 SBS 드라마 ‘신의’를 통해 안방극장에 컴백한 김희선은 미모는 그대로 이지만, ‘예쁜 척’을 버린 털털한 연기로 눈길을 모은 것이다. 이후 2014년 KBS2 드라마 ‘참 좋은 시절’을 통해 경상도 사투를 쓰는 억척스러운 여자 차혜원을 통해 20대의 김희선의 모습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차혜원을 소화한 김희선에는 과거 ‘김희선 머리띠’와 같은 화려한 액세서리나 화장법 대신 삶의 처연함과 첫사랑에 대한 애틋함과 같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드라마를 보고 학교폭력이 근절될 것이라고 바라지도 않고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아요. 다만 드라마를 통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드라마를 통해 좋은 반향이 일어나 좋은 쪽으로 해결되면 좋겠지만 거기까지 바라는 건 무리일 것 같아요. 그저 옆집 아이나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앵그리맘’ 제작발표회 중(中)
2015년 3월 김희선은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를 통해 다시 시청자들 앞에 섰다. 김희선이 연기하는 조강자는 학교폭력에 신음하는 딸을 위해 고등학교로 잠입, 학교폭력과 정면대결을 펼치는 인물이다. 데뷔 후 처음으로 엄마 역할에 도전하는 김희선이지만 실제 한 아이의 엄마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도 절절한 연기력으로 모든 것을 소화하고 있다. 극중 걸쭉하고 차진 욕설 대사는 기본, 사춘기 딸에게 상처 받는 모습이나,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학교에서 발견하게 된 딸의 상처에 눈물짓는 조강자의 눈물은 안방극장을 울릴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앵그리맘’ 제작발표회 당시 교복에 대해 “저는 교복이 그렇게 짧은 줄 몰랐다. 그 안에 속바지를 입는데 어느 날은 속바지가 바깥에 나올 정도로 짧더라.” “치마 뿐 아니라 블라우스가 너무 타이트해서 속옷이나 안의 옷을 겹겹이 입으면 단추가 안 잠길 정도.” “교복 치마 입고 단상위에 올라갔다가는 속옷이 보일 것 같다.” 등의 말을 털어놓았던 김희선은 영락없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현재의 김희선은 전성기인 20대 때와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나이가 드니 연기하기 편해졌다. 예전에는 인형처럼 눈물만 흘리는 역을 많이 했다면 지금은 사실 눈물 콧물 다 흘린다”라는 김희선의 고백처럼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미모’를 내려놓았다. 내려놓은 미모 만큼 더욱 깊어진 김희선, 엄마가 된 김희선의 연기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