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당신의 스무 살은 어땠나요”
영화 ‘스물’은 ‘말맛의 달인’ 이병헌 감독의 힘 있는 대사로 관객들을 웃기고, 일상에서 건져 온 대사들로 현실감을 더해 공감까지 잡아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스무 살의 젊은 혈기가 왕성한 영화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세 명의 친구는 갈림길 앞에 서있다. 이상과 현실이라는 길 앞에서 고민에 빠진 아이들의 모습으로 영화의 막이 열린다. 대기업 입사가 꿈인 경재(강하늘 분)는 현실을, 만화가가 되고 싶은 동우(이준호 분)는 이상을, 그리고 치호(김우빈 분)는 갈림길 사이에 있는 들판을 걸으려 한다.
치호, 동우, 경재처럼 함께 스물을 보냈던 세 남자, 그리고 소민(정소민 분), 소희(이유비 분)처럼 세 명의 남자의 옆에 붙어 있던 한 명의 여자를 만났다. 현재 서른 즈음에 있는 세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는 이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중앙대학교 06학번 동기라는 박영화 씨, 오상환 씨, 윤상호 씨 그리고 홍보람 씨가 들려주는 ‘진짜’ 스물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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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치호, 동우, 경재처럼 스무 살, 두 갈림길에 맞닥뜨렸다면 어떤 길을 택하겠는가.
윤=난 가만히 있을 거예요. 선택은 하는 게 아니고 당하는 거니까요. 원래 다른 대학교를 가려고 했는데 성적에 의해 선택을 당한 셈이죠.
박.홍=그것도 선택 아닌가요? 현실적인 길을 택한 것 같아요. 일단 좋은 대학을 가자는 것이 목표였던 때니까요.
오=저도 현실 쪽이에요. 대학 응시는 해보고 원했던 곳에 붙으면 가고, 떨어지면 바로 군대들 택할 것 같아요. 시간이 아까우니까요.
Q2. 세 명의 친구,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소민은 아지트격인 소소반점에 모여 고민을 시작한다. 결론은 이상하게 났지만 사실 이게 현실과 비슷하지 않나? 진지한 고민을 하다가도 엉뚱한 결론으로 술자리가 끝나는 모습이 실제 대학생들의 모습과 흡사해 보였다.
홍=성적 욕구가 넘치는 남자들을 극단적으로 웃기게 묘사한 것 같아요. 사실 그때가 제일 호기심도 많고 자유로울 때 아닌가요?
윤=아뇨. 그건 15살 때나 그렇죠. 감독이 그것에 대해 딱히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은 거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거의 이야기의 핵심 코드처럼 나와서 괜히 신경 쓰이더라고요.
박=섹스를 너무 가볍게 다뤘다고 할까요?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모든 남자가 그렇진 않아요. 상호나 상환이도 분명 그런 이야기를 안 하진 않았지만 그리 가벼웠던 것 같진 않아요.
오=현실적이에요. 사실 남자들은 진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스물’도 그렇고, 과거 시트콤 ‘세친구’를 봐도 그렇듯 항상 화두는 그쪽으로 가잖아요. 청춘영화에 어색하고 억지스럽게 교육적인 다짐을 넣으면 더 어색했을 거예요.
Q3. 그럼 스무 살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윤=몰라요. 그냥 놀아서.
박=우리의 고민이요? 어떻게 하면 집합을 안 할까. 하하. 근데 진짜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분명 쉴 새 없이 떠들긴 했는데.
홍=맞아요. 딱히 인생의 이슈보다는 당장 ‘눈앞에 과제를 대신해달라’ 구걸하는 정도? 사실 고민이 없었던 게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박=아! 공부나 미래보다는 선후배, 그리고 동기간의 관계가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오=사람이죠. 선후배관계 속에 수많은 술자리들. 진지하고 싶지 않은 나이에 진지하게 몰아가는 분위기에 끼자니 어색하고 빠지자니 후환이 두렵고.
홍=크게 보면 관계가 맞죠. 사랑도 그 중에 하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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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홍보람 씨가 가장 찌질했던 순간으로 꼽은 벚꽃요정 사진 / 박영화·윤상호 제공 |
Q4. 영화 전반에 ‘스물=찌질함’이라는 분위기가 깔려 있다. 이 부분은 공감이 가는가?
오=이리저리 눈치보고 별 볼일 없는 나이였죠. 그래도 누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주면 자체적으로 수신거부모드였으나 시창청음수업에 임할 땐 항상 찌질해졌어요. 지금도 눈물 날 것 같은데.(이 친구는 예술경영 전공으로 작곡 전공에 특화된 수업인 시창·청음 시간을 죽도록 싫어했다. 성적도 그와 비례했고.)
윤=그때 OO가 저를 스무 번이나 거절했죠.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하하. 스무 살은 진짜 답이 없었던 시절이죠. 여러 면에서요. 그중에서도 가장 찌질했던 순간은 하루만 사귀자고 했을 때. 하루 사귀었는데 마치 그 선배 같았어요. 영화 속에서 진주(민효린 분)요.
박=저도 상호의 그 여자에게 무릎 꿇고 빌었던 게 가장 찌질했던 순간이에요. 제가 중간에서 말을 잘 못 전해서 그 여자에게 큰 상처를 줬거든요. 하하. 잊고 싶은 추억이네요.
홍=전 ‘벚꽃 요정’ 사진 찍은 거요.(‘벚꽃요정’이란 가장 못생겼을 시기인 이 여자의 스무 살. 벚꽃놀이를 하면 찍은 흑역사 사진에 친구들이 붙여준 이름이다)그 당시 내 모습이 찌질해요. 결혼식 때 영화가 영상을 만들어 준다고 했는데, 그 사진이 들어갈 것만 같아서 두려워요. 인화해 놓은 사진이라면 다 태워버리고 싶을 정도로요. 친구들 컴퓨터를 포맷해야 할까요?(웃음)
박=오! 벚꽃 요정 매스컴 타는 건가요?
윤=그거 내가 찍었어요. (소유권 주장하는 중)
Q5. 어르신들이 스무 살을 두고 ‘한창 좋을 때’라고 하는데. 당연히 그 나이 때는 크게 와 닿지 않았을 것 같다.
홍=진짜 ‘뭔 소리야’ 이랬죠. 절대 와 닿지 않았죠. 근데 이상하게 돌아보면 그 말이 공감이 가기도 하더라고요.
윤=글쎄. 진짜 누가 그래요. 지금이 제일 좋아요. 그런 말은 똥 싼 다음에 속이 후련해졌을 때 추억하는 말이죠.
박=지금은 진짜 말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라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나름 고민이 많았잖아요. 아까 말했던 인관관계 등의 것들이요.
홍=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20살이나 29살이나, 나중에 돌아보면 느껴질 것 같아요. ‘참 좋을 때였다’고요.
오=지금 회사 160명 직원 중에 내가 막내거든요. 아직도 나이 얘기하면 ‘한창 좋을 때’라는 이야기를 일주일에 서너 번 들어요. 아직도 진행 중인 거예요. 난 심란해죽겠는데….
Q6. 청춘영화에서 굵직한 사건이 하나 있을 법도 한데, ‘스물’은 그런 게 없다. 진짜 한 번 쯤 겪었을 이야기들이 많은데 그들의 일화 중에 공감이 되는 장면이 있나?
홍=그런 면에서 정말 현실적인 것 같아요. 집안 형편 때문에 학업을 선택할 수 없거나, 알바라도 할 수 밖에 없는 건 이제는 정말 흔한 일이 됐잖아요.
오=강재가 운전하면서 무척 천천히 가는 모습을 보고 스무 살 처음 운전대 잡았던 기억이 났어요. 수원에서 안성까지 40분이면 가는 거리인데 3시간이나 걸렸죠.
박=경재가 나중에 소민이랑 술을 먹는 장면이 공감됐어요. 소민이 ‘여자애들은 나쁜 남자한테 끌린다. 착한 남자가 그걸 따라하면 어설프다’라고 이야기 하는 부분이요. 그러면서 ‘좋게 이야기하면 착한 남자고, 그냥 이야기하면 병신’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병신이었던 것 같아요. 소개팅 여러 번 실패하고 나쁜 남자 코스프레를 해볼까 했는데 번번이 실패했거든요.
윤=전 섹스 이야기에 공감이 돼요. 남자들은 팔 할이 그 얘기거든요. 2는 군대 얘기.
홍=아! 개강 날 술 마시고 진상 떨었던 기억이 있네요. 강재가 술 먹고 만취해 실수한 것처럼 스무 살 때 술에 대한 일화들이 많죠. 그때 SNS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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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7. 반대로 ‘절대’ 공감이 안 되는 부분은?
박=치호(김우빈 분)가 여자 꾀려고 교통사고 내는 장면이요. 바로 고소감이지 절대 안 봐 줄걸요. 현실적으로 ‘건수 잡았다’고 하겠죠.
오=도보로 입대를 해서 추억을 남긴다고요? 매일 밤 술에 취해 있다가 눈뜨면 훈련소예요. 맨 정신에 하루하루 얼마나 괴로운데요.
Q8. 인생에서 가장 찌질했다고 생각하는 스무 살을 함께 지난 친구들과 지금까지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박=대학 때 만나긴 했지만 함께 한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친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대학교 친구들이 생각나요.
홍=진짜 대학친구들이 이렇게 오랜 기간 웃고 떠들 수 있는 에피소드가 많지 않을 텐데, 그 만큼 스무 살에 찌질했지만 스펙터클하고 소소한 즐거움이 많았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오=고등학교 때 야자시간만큼이나 붙어있던 시간이 많아서 지금 봐도 너무 반갑고 좋네요. 좀 가식적인가요? 사실 내 찌질했던 모습, 다른 곳에 소문 낼까봐 극진대우 하느라 힘들어요. 농담 같은 진심이에요. 하하.
Q9. 스물을 겪고 어엿한 직장인이 된 29살 청년으로서 지금의 스물을 겪고 있는, 앞으로 겪을 친구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해주자면?
홍=‘저 너머에 무엇이 있든 두려울 것이 없다, 우린 미치도록 젊으니까’라는 대사가 있었잖아요. 진짜 두려워할 필요도, 망설일 필요도 없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박=대학을 가든 안 가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라고 하고 싶어요. 그 시간이 오래 걸릴지 몰라도 그 시간은 아까운 게 아니라고요.
오=수긍해. 뭘 자꾸 새로운 걸 시도하려는 거야. 시키는 것만 잘하면 세상팔자 좋은데.
윤=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최준용 기자, 박정선 기자, 여수정 기자, 정예인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