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과 반성?? 이 감정은 대체 뭐니?
배우 김인권의 얼굴을 절묘하게 이용했다. 영화 ‘약장수’(감독 조치언)의 마지막 장면은 많을 걸 담는다. 하얀 분칠로 광대 분장을 한 일범(김인권)이 웃고 있는데 슬퍼 보인다. 눈물이 나는 슬픔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더해진다. 코미디 배우가 가진 다른 면을 끄집어 낸 건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데뷔 감독의 영리한 선택이다.
할머니들에게 각종 건강식품과 생활용품을 파는 홍보관 ‘떴다방’에 취직해 ‘가짜 아들’을 연기하는 소시민 가장 일범의 생존기를 그린 영화 ‘약장수’.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몇몇 단면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픈 딸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내키지 않은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만 하는 가장의 의무. 먹고사는 것의 힘듦과 어려움은 고스란히 그의 몫이다. 극적 장치를 덧칠했지만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다. 내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데,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물건) 좀 사달라”고 애원하는 게 부끄럽지 않다.
고독사하는 노인 문제도 담겼다. 검사 아들을 뒀고 ‘장한 어머니상’까지 받았지만 외로운 할머니 옥님(이주실). 툭하면 바쁘다는 아들 부부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는 엄마다. 옥님은 떴다방에서 오전과 오후 2시간씩 놀아주는 가짜 아들이 그리 반가울 수 없다. 진짜 아들에게 “애미랑 2시간만 놀아주지 않을래?”라는 엄마의 대사는 가슴을 후벼 판다. 과연 나는 도리를 다 하고 있는 걸까. ‘먹고 살기 바빠 어쩔 수 없어…’라는 핑계, 부끄럽지만 떠오를 수밖에 없다. 죄책감을 불러온다.
이 시대 아들이자 아버지이기도 한 아들들에게 울림을 줄 영화다. 물론 아들들에게만 국한된 건 아니다. 누군가의 자식이라면, 또 누군가의 부모라면 공감하는 부분이 꽤 많을 것 같다.
영화는 일범과 옥님에게로 시선을 양분시킨다. 욕심을 부린 듯한 연출법은 관객을 부담스럽게 한다. 중심을 못 잡고 산만하게 흐른다는 생각도 하게 한다. 하지만 배우들이 산만해지는 분위기의 중심을 잡는다. 연기가 몰입도를 높인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단면들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떴다방 사장 철중을 연기한 박철민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선한 얼굴이지만, 물건 판 돈을 받지 못하자 “반지라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철중. 돈이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아니, 이 사회가 그런 구조다.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악한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어 변한 듯하
때리고 부수는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같은 날 개봉해 맞붙게 됐지만, 충분히 의미 있고 한 번쯤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 오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다. 마지막 장면, 생각을 읽을 수 없는 일범의 표정 탓이다. 104분. 15세 관람가. 23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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