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성숙한 성의식이 담긴 TV 프로그램들이 등장하며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다.
지난 3월31일 종영한 tvN 드라마 ‘호구의 사랑’에서는 여주인공 도도희(유이 분)가 성폭행을 당한 후 아기를 가져 미혼모가 된다. 그럼에도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강호구(최우식 분)와 그의 가족들의 응원을 힘입어 도도희는 성폭행범을 고소하고 끈질긴 법정공방을 벌인다.
드라마에서는 성폭력, 미혼모 뿐만 아니라 남자 주인공 강호구의 동생 강호경(이수경 분)의 모습을 통해 젊은이들의 솔직하고 당당한 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강호경이 콘돔을 가지고 다니며 “내 몸은 내가 지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 등이 이에 해당한다. 확실히 ‘호구의 사랑’은 개방적이고 솔직한 성에 대한 시선을 드라마에 담아내 남다른 의미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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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CJ E&M |
최근 방영을 시작한 Mnet 드라마 ‘더러버’에서는 2030세대 동거 커플의 일상을 그리면서 위트있는 시선으로 성을 바라보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커플들의 성관계를 묘사하는 장면이나 성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다른 드라마의 여성들과는 달리, 여성 캐릭터들이 적극적으로 성생활을 주도하는 등 솔직하고 현실적인 모습을 담았다.
이에 대해 ‘호구의 사랑’ 윤난중 작가는 MBN스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성’이라는 것이 ‘폭행’과 관련되기 전에 ‘성’ 그 자체로 다른 의미를 가진는 것을 깨달았고,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성 말고, 진짜 우리 삶에 녹아들어있는 성을 이야기해보고자 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이라는 가치에 집중해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 작가는 “‘생명’의 탄생을 같이 경험하게 된 청춘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임신, 출산, 아기, 미혼모를 소화시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드라마가 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며 “인물들을 각양각색의 청춘으로 설정하고, 그들의 연애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가장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이기 때문에, 더 사적인 연애와 코미디를 구사하고자 했다. 캐릭터들이 청춘이었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성’을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더러버’의 김태은 PD는 드라마의 제작발표회에서 동거라는 키워드를 내세운 이유에 대해 “2030세대의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던 차에 동거 소재를 선택하게 됐다. 소소하고 그래서 더 특별한 일상을 풀어내고 싶었는데 동거라는 배경이라면 그런 이야기를 더욱 심도있고 공감대를 높여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배우 최여진은 드라마 안의 성 묘사에 대해 “일상적인 커플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행동인데 우리나라 문화는 아직 보수적인 부분이 있어서 가려지고 숨겨진 면이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이라면 누구나 이런 행동들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걱정은 안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 오정세는 단순한 파격과 섹시를 쫓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자극적인 것보다는 그 밑바닥에 깔린 ‘사랑’이라는 감정에 더욱 치중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파격적이고 신선하고 재미를 위해서 에피소드를 과하게 표현할까봐 저와 현경 씨가 말한 것은 서로 사랑하는 잊지 말자는 것였다”며 “밑에 깔린 사랑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성 이야기를 좀 더 솔직하고 자극적이지 않게 다루는 요즘의 방송가 흐름에 대해 ‘호구의 사랑’ 윤난중 작가는 “예전에도 성인시트콤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성’ 이라는 것이 유쾌한 개그 코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들은 있었다. 하지만 성폭행 피해자가 여주인공인 로맨틱코미디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적잖이 놀라운 일이다.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라 가능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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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CJ E&M |
이어 윤 작가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성생활을 하나의 건강한 개인의 사생활로 인식하고 있다. 콘돔 에피소드는 여동생이 오빠에게 직설적인 화두를 던진다는 의미도 있었겠지만, 사실은 온 가족이 고스톱을 치던 거실에서 엄마아빠가 호경의 콘돔을 주워줬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뒀다”며 “자료조사와 방송반응을 통해 느낀 바로는 개방적인 성의식에 불편함을 보이는 쪽도 많다. 하지만 부모세대와 자식세대, 남자와 여자가 어떤 맥락으로 성을 함께 공유해야하는지가 이제 모두의 고민인 것은 사실”이라고 이를 다룬 이유를 밝혔다.
이에 덧붙여 윤 작가는 이제 성에 대해 더 정확히 설명하고 보여줄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기가 엄마배꼽에서 나온다는 미담은, 아이들이 때가 되면 자연스레 성의 신비를 알게 되길 바란다는 우리네 부모님들의 깊은 배려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숨길수가 없는 시대에, 성의 방식도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숨길 수가 없다면, 정확히 설명하고, 보여줄 수 있다면, 더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 건강해지는 것이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이처럼 방송가에서는 ‘이왕 다 드러냈다면 정확하게 설명해줘야 한다’는 주의로 성을 바라보고 있다. 단순히 유머 코드, 개그 요소가 아닌 성 자체에 더욱 집중하는가 하면, 사랑과 책임감이 전제된 성은 건강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강조하는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관계자들 모두 이런 변화에 대해 “열렬히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왜곡되고 우월주의에 찌든 성관념이 아닌, 건강하고 아름다운 성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 많은 관계자들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