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유병재. 그 이름 앞에 어떤 직업을 써야할지 문득 고민이 된다. tvN ‘SNL코리아’ 작가라고 써야할지, 개그맨이라고 써야할지, 방송인이라고 해야할지. 그러자 유병재가 말한다. “코미디언이라고 해주세요. 작가랑 방송인 그 모든 게 다 들어있는 단어니까요.”
유병재와 인터뷰가 있던 3월31일은 마침 MBC ‘무한도전’에 식스맨 후보로 이름을 올린 직후였다. 그야말로 예능 대세다. tvN을 접수한 건 옛날의 일이고, MBC ‘라디오스타’에서도 활약을 벌이더니 이번엔 ‘무한도전’이다. 지상파의 주요 프로그램만 탁 찍고 오는 것 아니냐는 장난 섞인 물음에 그는 “다른 프로그램에는 섭외가 안 들어온다”고 특유의 멍하고도 슬픈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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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무한도전’에 나가게 된 건 연락을 받았다. 마침 상암동 바로 앞에서 촬영을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잠깐 들린 셈이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 가게 됐다. 제가 빅데이터 추천 순위는 1위가 어떻게 선정됐는지는 모르겠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분들보다 덜 노출이 돼서 궁금해서 저를 뽑아주신 것 같다. 1, 2회차 정도만 지나면 바로 꺼질 것 같다. 거품이라기보다는 원래 관심이라는 금방 생겼다가 금세 가라앉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댓글이나 반응은 크게 신경 안 쓰는 편이다.”
한창 방송가를 누비고 다니던 유병재는 조만간 ‘본업’인 작가로 돌아온다. 그것도 드라마 메인 작가로 말이다. 그가 극본과 주연을 동시에 맡은 tvN 새 금요드라마 ‘초인시대’ 이야기를 꺼내자 ‘무한도전’의 질문에는 말을 사뭇 아끼던 유병재의 눈빛이 달라졌다. “사실 ‘무한도전’을 나간 것도 아직 많은 분들이 ‘초인시대’ 만드는 걸 몰라서이기도 했다”고 농담할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초인시대’를 세상에 내놓는 소감을 물었다.
“메인작가를 하는 것도 처음이고 주인공을 하는 것도 처음이다. 이 아이템은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아이템 중에서 고른 건데 시대상에도 잘 맞고 재밌을 것 같아서 선택하게 됐다. 겉은 히어로물인데 속은 이제 막 사회에 나가기 시작하는 20대의 이야기다. 제가 20대이기도 하고, 학교를 떠나서 사회에 발을 들이는 친구들의 모습이나 소위 말해서 ‘삼포 세대’의 이야기도 담고 싶었는데 소재와 잘 맞물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다 보니 더 그런 요소들이 잘 맞아떨어졌다. 만드는 과정이 더욱 재밌었다.”
‘초인시대’는 다른 것보다 ‘유병재’라는 이름 하나 때문에 기대감을 증폭시킨 작품이기도 했다. 그만큼 유병재라는 이름에 거는 기대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극본과 주연을 맡고 있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이름 값’으로 기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부담을 느낄 만도 하다. 하지만 유병재는 “그렇게 부담을 느낄 만큼 드라마를 아시는 분이 별로 없던데”라고 머리를 긁적였다.
“부담감은 가지려고 했는데 ‘초인시대’를 하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웃음) 제가 이런 드라마 만드는 걸 잘 모르시는 것 같다. 그래서 ‘무한도전’ 나간 것도 제가 많이 노출이 되면 드라마에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해서 그런 건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시청률과 반응은 하늘만 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4, 5회 대본들은 정말 마음에 든다. 젊은 친구들의 공감을 살 만한 내용들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전체적인 느낌을 ‘웃프게’(웃기고 슬프다는 말의 줄임말) 가려고 했다. 어떻게 나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재미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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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초인시대’는 초능력을 가진 취업도, 사랑도 순탄치 않은 남자들이 겪는 드라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히어로물의 외피로 담은 20대 젊은이들의 현실 이야기다. 캐릭터들도 꿈은 있는데 취업을 못하는 사람,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 취업 대신 ‘창업’이라는 꿈을 쫓는 돈키호테 형 사람 등 캐릭터 면면에 젊은이들의 현실을 담았다. 유병재가 유독 ‘삼포세대’(사랑, 결혼, 출산을 포기한 젊은이들을 가리킴. 즉 각박한 현실 속에 치열하게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뭘까.
“그냥 제가 사는 이야기고,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제게 우울하고 서러운 감정들이 많다. 그런 것들을 이용해서 웃기는 게 재밌다. 또 요즘 취업도 못하고 사랑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 놓인 젊은이들을 쓸모없는 사람처럼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가뜩이나 제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은 키도 작고, 못생기고, 세련되지도 않고, 허세도 많은 일명 ‘루저’들이다. 그런 친구들에 초능력을 주면 재밌겠다는 생각해서 히어로물을 가지고 오게 됐다. 출발은 그랬지만,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의 힘든 현실들과 맞닿는 부분들이 많아졌다. 예를 들어서 극중 저의 능력은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다. 그 능력을 주어지게 한 것도 청춘, 우리의 세대에 제일 필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설정한 것도 있다. 엔딩 같은 부분도 주제의식에 잘 부합하도록 만들었다.”
유병재는 ‘SNL코리아’에서도 ‘을’(乙)들의 이야기인 ‘극한직업’ 코너를 꾸렸다. 이번에도 지극히 을들의 이야기다. “요즘 청춘들을 슬프다고 단정 짓기도 어렵지만, 대접을 잘 못 받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는 유병재에게 ‘을’들의 일상에 집중한 특별한 사연이 있는지 물었다.
“취준생 이야기만 담는 게 아니라 뒤로 갈수록 비정규직의 서러움 등을 담은 에피소드들도 등장할 예정이다. 최종적으로 ‘초인시대’는 ‘을’(乙)을 위한 드라마다. 그냥 제가 사는 현실이 그렇고, 우리 주변의 모습이 그렇다. 그리고 이런 을의 이야기들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분위기이고 공감을 많이 해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소재로 사용했다. 그런 이야기를 다루는 게 만드는 사람으로 책무나 의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사회적인 문제들을 풍자를 하고 해학적으로 접근하는 게 코미디고 재밌다. 개인적으로는 ‘자학코드’를 좀 가지고 있는데,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걸 웃음으로 승화하는 게 좋은 에너지를 내놓는 것 같고 재밌는 것 같다. 소재가 슬프지만 그걸 슬픔으로 안 끝내고 웃음으로 비트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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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을들의 서러움과 현실을 담은 ‘초인시대’는 그럼 어떤 면에서 웃음을 줄 수 있을까. 유병재는 “사실 저는 굉장히 웃기다. 어제도 4, 5회 분량까지 나온 대본을 쭉 봤는데 진짜 좋은 게 많더라”고 말하며 웃음 포인트가 확실하다고 자부했다. 작가 유병재가 꼽는 ‘초인시대’의 관전 포인트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 회는 그나마 덜 걱정이 된다. 저번 ‘SNL코리아’에서 면접 보는 콩트가 등장했다. 면접을 보다가 ‘꼰대’ 스타일의 면접관에게 욕을 하고 뛰쳐나가는 그런 이야기였는데 그게 웹상에서 많이 화제가 됐다. 첫 회에는 그 콩트와 비슷한 장면들을 몰아넣었다. 큰 줄기도 당하고 살다가 한 번 그렇게 ‘반격’하고 다시 당하고 사는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기본적으로 ‘초인시대’에는 열정페이와 같은 요즘 젊은이들을 힘들게 하는 대상들을 향한 욕을 한꺼번에 모았다. 그래서 ‘통쾌’까지는 아니더라도 공감할 만한 요소들이 많은 것 같다. 외피만 히어로물이고 속 안에는 20대들의 평범한 이야기라서 사랑, 취업 두 개 가지고 ‘계속 하려고 하는데 안 되는’ 웃픈 이야기들이 담길 예정이다. 나중에는 악당도 나오는데 악당도 시대상에 맞는 인물이다. 그런 부분들을 잘 봐주셨으면 좋겠다.”
유병재는 “‘SNL코리아’ 식구들도 굉장히 많이 나온다”며 배우들의 연기에도 기대를 가져달라고 덧붙였다. 얼마 전 MBN스타와 인터뷰를 가진 정이랑이 ‘초인시대’에 카메오로 출연했다는 것을 알리며 “유병재가 쓴 대사가 참 쫀득쫀득하더라”고 극찬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를 대신 전하자 유병재는 “연기를 잘 살려주시시는 배우들 덕분”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SNL코리아’ 크루 분들도 정말 많이 나오시는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장면과 대사를 잘 살려주신다. 정이랑 누나뿐만이 아니고, 정상훈, 권혁수, 정연주, 한재석 등 거의 모든 크루들이 나온다. 출연 배우들은 정말 연기들의 호흡이 잘 맞아가고 있다. 사실 아직 촬영을 많이 못해서 아직 친해지지는 못했지만, 워낙 잘 하시는 분들이라 저만 잘 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저도 잘 하는 것 같다. 농담이고, 그냥 하던 것처럼 했다. 연기라기보다는 그냥 평소의 제 모습의 연장선상이다. 조금 오글거리는 표현이지만 ‘을(乙)을 대변’하는 걸 또 했다.”
그의 말에는 상당 부분에서 ‘코미디’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그는 직업을 ‘코미디언’이라고 해달라고 당부할 정도로 코미디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SNL코리아’를 시작한 것도, 데뷔 전 UCC 제작에 매달린 것도, 지금 SNS에 촌철살인 게시물을 올리는 이유도 전부 ‘코미디’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눈앞에서 만난 유병재는 매사에 차분하고 자신의 말에 따르면 “슬프고 서러운 정서를 타고난”사람이다. 코미디와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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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성격과 코미디는 다른 것 같다. 오히려 이상하게도 코미디 하는 분들 중에서 우울하고 조용한 성격을 가진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성격과 웃기는 걸 좋아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저는 김영철 씨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렇게 활발하게 웃기는 스타일도 정말 있지만, 저같이 조용하게 웃기는 스타일도 있는 거다. 어렸을 때부터 코미디를 쭉 했다. 결과물이 웃음으로 나오는 게 정말 좋다. 제 성격이 급한 게 있는데 피드백이 바로 나오는 것도 좋다. 일반 회사에서는 무언가의 결과물이 나오고 이것에 대한 피드백이 나오려면 몇 시간, 혹은 며칠이 걸리지 않나. 코미디는 다르다. 1초도 안 돼서 웃음으로 나온다. 그 부분이 성격과 맞는 것 같아서 제가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물론, 돈도 주고.”
자신이 사랑하는 코미디와 그의 친구들 세대가 겪는 이야기를 혼합한 ‘초인시대’가 대중에게 어떤 의미로 남으면 좋을까. 그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 물론, 그냥 웃으셔도 좋고, 안 웃으셔도 좋지만”이라고 말을 이었다.
“저도 처음 만들다보니 큰 욕심이 있는 건 아니다. 단지 ‘특이하다’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모든 작품들을 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촌스럽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라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보시는 분들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기도 하고.”
사람들을 웃기려고 했던 유병재는 어쩌다보니 ‘을’의 아이콘이 돼 버렸다. 본인도 이를 뿌듯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유병재가 20대 청춘들에 바치는 ‘웃픈’ 자화상은 어쨌든, 희망을 노래하는 ‘청춘 연가’가 될 전망이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