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배우 이준혁이 청년실업에 시달렸던 보통의 청년이 됐다.
큰 키에 반듯한 외모, 정갈한 옷차림에, 또박또박 말하는 발성까지. 이준혁이 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모범생에 더 가까웠고, 이러한 이미지 덕분인지 그가 주로 맡았던 배역들의 직업들은 의사, 검사 등과 같은 전문직이 많았다.
그랬던 이준혁이 KBS2 주말드라마 ‘파랑새의 집’을 통해 5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에 내 집 마련까지 총 다섯 가지를 포기한 2030세대를 이르는 말)를 대변하는 신입사원 김지완으로 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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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MBN스타 |
극중 김지완의 삶은 고달팠다. 일상이 면접이라고 할 정도로 여러 회사에 면접을 보면서 면접의 좋은 예라고 알려진 대답들도 척척 해내지만 항상 돌아오는 건 ‘학벌이 걸리기 때문에 우리회사에 채용할 수 없다’는 말 뿐이었다. 낙방의 아픔을 삼키던 김지완은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 들어가지만 그마저도 녹록치 않았다. 늘 좋은 성과는 회사 상사나, 아니면 입사동기인 동시에 대기업 회장의 아들인 장현도(이상엽 분)의 몫 일 뿐이었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초중반의 역할을 주로 맡아왔던 이준혁은 처음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오랜만에 20대 청년으로 분했다. 돈 없고, 백이 없어 눈물의 아홉수를 넘고 있는 29살의 청년 김지완을 연기하는 이준혁은 “그동안 형사, 검사, 의사 같은 역할을 소화하다가 평범한 인물을 연기하게 되면서 보통사람들의 현실적인 고민들을 함께 하게 됐다. 후진하고 있는 우리 청년들의 고민과 성장담을 그려내고 싶다”고 연기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극중에서는 별 볼일 없는 신입사원이지만, 배우 이준혁은 어느덧 9년차에 접어든 배우가 됐다. 2006년 가수 타이푼의 ‘기다릴게’ 뮤직비디오를 통해 연예계에 입성해 단막극을 통해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던 이준혁은 그야말로 ‘준비된 신인’이었다. 안정된 연기와 성숙해 보이는 외모는 이준혁만의 최고 경쟁력이었고, 이내 ‘조강지처 클럽’ ‘그들이 사는 세상’ ‘시티홀’ ‘수상한삼형제’ 등 데뷔 3년 만에 유수의 드라마에서 주조연급으로 활약하며 안방극장에 눈동장을 찍었다.
매 작품마다 연기력 논란 한 번 없이 제 몫을 해낸 이준혁은 SBS 드라마 ‘나는 전설이다’를 통해 신인치고는 파격적으로 주연의 자리를 거머쥐면서 ‘김정은의 남자’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이후 ‘시크릿가든’ ‘시티헌터’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한 이준혁은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만들어 나아갔고, 그러던 중 2012년 대표작을 만나게 된다. 바로 ‘꽃개’(꽃같은 개xx)라는 살벌한 애칭을 만들어준 KBS2 드라마 ‘적도의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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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초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사랑’의 김민준 같은 카리스마 있는 악역을 꼭 해보고 싶다고 고백했던 이준혁은 그로부터 약 5년 만에 그토록 바라던 악역을 이장일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준혁이 연기한 이장일은 쉬운 캐릭터가 아니었다. 극중 이장일은 자신과 아버지의 살인죄를 덮기 위해 죽마고우인 김선우(엄태웅 분)의 머리를 치고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는 악행을 저질렀던 인물이다.
‘적도의 남자’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이장일의 서늘함을 표한 이장일은 큰 움직임이 아닌 세세하면서도 섬세한 감정변화로 극을 지배했다. 그가 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카리스마는 ‘엄포스’로 불리던 엄태웅에 지지 않을 정도였으며, 그의 열연에 시청자들은 ‘발연기를 하는 배우’라고 열광하기도 했다. 여기서 발연기는 연기를 못한다는 뜻이 아닌, 발만으로도 극의 긴장감을 표현했다는 찬사의 뜻이다.
“드라마 찍는 내내 차갑게 대했다. 장일이는 용서할 수 없는 캐릭터잖나. 내가 동정하면 그 긴장감이 깨질 것 같았다. 비극적 상황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도마 위에서 팔딱팔딱 뛰는 생선의 느낌을 표현하려 했다”(이데일리 인터뷰 中, 2012년)
‘적도의 남자’로 연기의 정점을 찍었던 이준혁이지만 이후 그의 선택은 ‘군입대’였다. 한창 잘 나가던 시기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돌아온 이준혁은 한층 여유로워져서 돌아왔다. 그가 군 전역 이후 선택한 브라운관 복귀작은 MBC 드라마 ‘내 생애 봄날’이었다.
“제대 이후 더 오래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대본에서 보이는 따뜻함이 절 끌어들였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했던 작품인 ‘적도의 남자’에서 연기했던 장일이 정신적인 문제가 많았는데, 그와 달리 ‘내 생애 봄날’은 따뜻했거든요.(‘내 생애 봄날’ 제작발표회,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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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MBN스타 |
이준혁의 말처럼 ‘내 생애 봄날’은 전반적으로 따뜻했던 톤을 자랑한 드라마였다. 그 흔한 악역도 없었으며 한 여자를 두고 벌어지는 두 형제가 갈등을 그리기도 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자극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장이식을 받은 봄이(최수영 분)을 짝사랑하는 동욱을 연기한 이준혁은 형과의 갈등에 힘들어 하면서도,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위해 떠내 보내는 남자의 복잡한 마음을 절절한 감정으로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이준혁의 연기 인생에 있어 첫 멜로물이기도 했던 ‘내 생애 봄날’은 그의 연기인생의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기도 했다. 이준혁은 ‘내 생애 봄날’의 촬영을 마친 이후 연기의 방향성에 대해 “과거 작품 선택 기준이 저에게 있었다면, 이제는 제 연기를 통해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내가 표현한 감정을 시청자들에게 공유해서 채널을 틀었을 때 ‘재미있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었다.
그리고 선택한 작품이 바로 ‘파랑새의 집’이다. 물론 이준혁이 연기하는 신입사원 김지완은 엄밀히 말해 현실 속 신입사원들과는 다르다. 실수투성이 신입사원들과 달리 김지완은 주인공인 것을 티내듯 외모, 실력 모든 면에서 출중한 이른바 ‘판타지’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김지완에 공감을 보이는 이유는 바로 어찌됐든 역경을 극복하며 마침내 웃는 그의 모습 속에서 작은 위로를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신인시절부터 안정된 연기력으로 시청자에게 다가갔더 배우 이준혁, 이제 시청자들의 공감을 꾀하는 배우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