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사전제작 시스템,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 과연 꿈이 아닌 현실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반(半) 사전제작 시스템으로 방영된 2014년 OCN 드라마 ‘나쁜 녀석들’은 성공을 거뒀고, 이후 많은 드라마들이 사전제작 드라마를 내세우고 있다. 그야말로 ‘사전제작 드라마’가 최근 방송가의 트렌드가 된 셈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전제작 시스템이 한국 방송 시스템에 정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전문가들의 의견들이 많다.
많은 방송 제작 관계자들은 사전제작 시스템에 대해 “일단 편성과 방영권에 대한 보장이 없어 리스크가 크다”고 진단했다. 우리나라 드라마 방송 시스템은 드라마의 편성과 방영이 모두 방송사에 있다. 아무리 드라마를 찍어도 방송사에서 편성 시간을 내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이다. 정치적, 경제, 문화적 이슈에 따라 방영이 취소되는 경우도 많아 이럴 경우 제작사가 모든 위험 부담을 안고 가야 한다. 드라마 제작사에서 쉽사리 100% 사전제작 시스템을 채택할 수 없는 이유라고 제작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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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나쁜 녀석들 포스터 |
제작비용이 올라간다는 것도 사전제작 시스템을 안정화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관계자들은 “사전제작 시스템은 제작지원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보통 4회차 방영 이후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제작 지원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는데, 사전제작의 경우 기획만 가지고 제작지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원을 받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제작비 증가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하며, 작품성이 높아지는 만큼 제작비용이 올라가기 때문에 이는 고스란히 제작사나 방송사가 안고 가야하는 부담이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세한 드라마 제작사들은 사전제작 드라마를 꿈도 꾸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들은 사전제작 시스템을 향해 “지금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시스템”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시장 규모가 사전제작 시스템이 가지는 리스크를 모두 흡수할 수 있을 만큼 커야 한다는 게 방송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드라마 시장은 100% 사전제작 시스템이 일반적인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매우 작은 규모다. 드라마의 흥행 여부에 일희일비 할 수 밖에 없는 게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우리나라 드라마 시장이 좀 더 규모를 키웠을 때야만이 사전제작 시스템이 완벽하게 안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또한 모든 편성이 정확하게 짜여져 돌아가는 지상파 방송사에는 더욱 사전제작이 어렵다는 판단도 많다. 2009년 방영했던 MBC 드라마 ‘2009외인구단’은 당초 20부작으로 기획돼 사전제작으로 촬영됐다. 하지만 18회분이 촬영된 후 갑작스럽게 MBC로부터 16부 조기종영 통보를 받아 편집을 감행했다. 당연히 극의 흐름이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은 미완성인 채로 종영했다. 사전제작 시스템과 현재 방송 시스템의 입장 차를 보여주는 일례다. ‘월화’ ‘수목’ ‘주말’ 등 일정한 편성띠가 자리 잡은 방송사는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의 다음 편성, 그 다음 편성까지 이미 확정하는 경우가 많다. 즉, 정해진 편성 시간 안에 모든 드라마를 구겨 넣어야 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단점들을 모두 보완할 수 있는 방송사가 바로 케이블 방송사다. 케이블 방송사인 tvN의 경우 드라마 제작사인 CJ E&M의 계열사다. 그만큼 방송사와 제작사 간의 입장 차를 금방 조율할 수 있다. 편성이 비교적 자유로운 것도 장점으로 꼽혔다. 한 관계자는 “지상파 방송사는 시청자층이 불특정다수다. 하지만 케이블 방송사는 비교적 주요 시청자층이 고정돼 있다. Mnet은 1020세대, tvN은 2030세대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점이 사전제작 드라마를 만들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정해진 시청자를 위한 드라마를 만들기에 알맞다는 뜻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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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MBN스타 DB |
하지만 아직까지 케이블 방송사도 100% 사전제작이 아닌 반(半) 사전제작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100% 사전제작에 부담을 느끼는 인상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현실적이지 않은 게 바로 사전제작 시스템이다. 분명 필요하고 완성도를 위해서는 좋은 시스템이지만, 사전제작 시스템이 자리 잡기까지는 아직 몇 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용감하게 100% 사전제작 시스템을 들고 일어난 것이 바로 KBS2 ‘태양의 후예’와 배우 이영애의 복귀작 SBS ‘사임당’이다. 이 두 드라마가 성공하면 우리나라에 사전제작 드라마가 자리 잡는 기한은 더 빨라질 수 있다. 이 드라마들에 시청자들 뿐만 아니라 드라마 관계자들도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