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정예인 기자] 유독 마블 영화에 열광하는 한국. 그 중에서도 초능력을 지닌 슈퍼히어로는 흥행작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다.
슈퍼히어로는 오래 전부터 당대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영웅상을 대변한다. 미국을 예로 들면,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과 경제 대 공황, 실업 문제 등으로 사회 분위기가 침체됐을 때 DC코믹스의 대표 히어로, 슈퍼맨이 등장했다. 무적의 슈퍼맨은 대중들의 삶에 활력소가 됐다. 또 도시범죄로 골머리를 앓던 시기에는 고담시의 수호자인 배트맨이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에는 DC코믹스의 슈퍼맨, 배트맨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슈퍼히어로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마블 코믹스에서 내놓은 스파이더맨, 엑스맨처럼 겉보기엔 보잘 것 없지만 알고 보면 존재감 확실한 슈퍼히어로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위로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DC코믹스의 영웅들이 아닌, 마블의 영웅들을 사랑하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20세기 폭스, 디즈니, 워너 브라더스 등에서 스토리 컨설턴트로 활약했던 크리스토퍼 보글러는 저서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에서 “영웅서사에서 초인캐릭터의 능력이란, 대중이라는 보잘 것 없는 개인에게 자립과 권력에 대한 성취와 열망 그리고 대리만족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결국 관객은 영웅 캐릭터가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라는 환상을 무의식 속에 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웅 캐릭터에는 일정한 특징이 있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초능력 혹은 재력을 보유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때로는 모든 걸 내걸기도 하며, 인간적인 고민거리를 가진 인물들이 사랑을 받는다. 대표적인 예로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 ‘캡틴 아메리카’의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 분),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 분)가 있다.
이에 대해 강익모 평론가는 “한국 관객은 인간처럼 사랑하고 실수하는 영웅들을 재밌게 받아들인다. 정서적인 측면이 강조된 영웅 캐릭터들이 한 사람이 아니라 무더기로 등장하면 우리는 캐릭터에 쉽게 이입할 수 있다. 한 작품에 여러 영웅을 섞어 놓으니 비빔밥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정서에 딱 어울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마블이 시리즈를 내놓는 것 역시 한국 사람들 정서에 부합한다. 매주 방송되는 연속극을 보지 않으면 대화에 낄 수 없듯이, 마블 시리즈를 보지 않는다면 대화에 끼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특히 스마트폰, SNS가 발달된 한국에서는 트렌디한 영화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덧붙였다.
슈퍼히어로의 이야기는 단순히 ‘재미’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관객은 그저 초인적인 힘으로 인간을 구하는 구원자로서의 영웅이 아니라, 인간을 닮아 입체적인 성격을 지닌 영웅들로부터 공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보글러는 할리우드 영화의 영웅 서사 구조가 12단계로 이루어져있다고 설명하면서 “나는 영웅의 여정이 인생의 지침서,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삶의 기술에 관한 교훈을 담고 있는 완벽한 매뉴얼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참고문헌
크리스토퍼 보글러, 함춘성 옮김,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쓰기』, (무우수, 2005)
정예인 기자 yein6120@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