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두정아 기자] “형수와 시동생의 불륜이 등장하는 ‘햄릿’은 막장입니까? 중요한 것은 소재가 아닙니다.”
개연성 없는 설정과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비상식적인 상황으로 뭇매를 맞는 이른바 ‘막장 드라마’는 수많은 질책에도 불구하고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 무분별한 복수와 출생의 비밀, 불륜 등의 요소를 내세우며 시청률 올리기에 급급하다는 비난을 여전히 면치 못하고 있지만, ‘욕하면서 본다’는 시청자 층은 여전히 존재한다. 방송사의 ‘막장 딜레마’의 답은 찾을 수 있을까.
19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방송회관에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와 한국방송비평학회가 공동 주관한 ‘저품격(막장) 드라마 이대로 좋은가? 저품격 드라마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이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개최됐다. 문제를 인지하고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에는 입을 모으며 뜻을 같이 했지만, 그 원인과 배경을 두고는 방송사와 작가 간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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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에 대한 책임전가 아쉬워”
한국방송작가협회 이금림 이사장은 막장드라마의 책임을 지나치게 작가에게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막장 드라마를) 안 쓰면 되지 않나’라는 것에서 기인하는 작가의 책임론이 가장 먼저 대두되기 때문이다.
이금림 이사장은 “작가는 철저히 ‘을’의 입장이다. 방송사에서 요구하는 드라마를 쓰지 않으면 작품 활동할 수 없다”며 “선진국을 보면 작가 시스템으로 만들어진다. 원하는 감독으로 섭외하고, 방송사도 작가가 정하는 경우도 많다. 반면, 우리는 작가가 방송사나 제작사에 계약이 돼 있다. 작가들이 작품성이나 정신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막장’에 대한 기준으로 놓고도 의견이 분분했다. 단순히 소재를 문제 삼아 막장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드라마 ‘아내의 자격’과 ‘밀회’를 막장 드라마로 칭한 MBC 장근수 드라마본부장의 발언에 “세계적인 작품 ‘햄릿’도 형수와 시동생의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다. 불륜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다뤘느냐에 따른 것”이라며 “‘아내의 자격’과 ‘밀회’에는 분명 막장 코드가 있지만 섬세한 문장력과 정신세계, 작가 의식으로 작품을 만들어냈다. 소재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 소재를 저품격으로 다뤘을 경우를 막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막장드라마에 거론되는 작가들도 처음에는 좋은 평가를 받고 시작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비난을 받는 작가가 됐다”며 “방송사에서는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시나리오만 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방송사 측에서도 시청률 및 광고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주셔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서울대 홍석경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유독 왜 작가만 매를 맞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기사를 읽다보면 마치 작가가 엄청난 권력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며 “방송사의 기획이 필요하다. 케이블이나 종편에서도 좋은 프로그램은 적은 제작비로 만들고 있다. 방송사는 더 이상 시청률 뒤에 숨지 말고, 새로운 작가들에게 얼마나 기회를 주었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방송평론가 신상일은 “작가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모든 책임은 작가가 뒤집어 써야 하느냐”며 “드라마가 무엇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사라졌고 그것이 오늘날 드라마 시청률 전체가 낮아지는 부메랑이 됐다. 진정성이 중요하다.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막장 드라마에 대한 논의는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서울대 김수아 기초교육원 강의부교수 역시 “막장드라마의 유행을 시청자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방송사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탈출구”라고 지적했다.
◇ “‘막장’ 없으니 시청률 ‘뚝뚝’…힘듭니다”
방송사도 할 말은 많다. 이날 한 SBS 관계자는 “SBS 드라마가 몇 년째 시청률이 안 좋은 상황”이라며 “드라마국에 ‘막장의 정의가 뭡니까’ 묻기도 했다. 시청률이 저조하다보니, 수익도 저조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많은 드라마들이 자극적이고 센 이야기를 통해 화제를 몰고, 그 화제가 시청률과 수익을 동반하는 구조는 사실상 ‘지름길’과 같다.
MBC 장근수 드라마본부장은 “내용이냐 개연성이냐, 형식 논리에 치우치는 것 아닌가 싶다. 시청자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것 그리고 요소와 내용 등은 시청자에 판단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본부장은 막장 드라마가 양산되는 이유로 제작비 문제를 꼽았다. 그는 “일일드라마의 경우 회당 제작비가 5000만 원이다. 적자를 면치 못하는 구조다”라며 시청률 및 수익의 부담을 드러내며 “고쳐나가야 하는 부분인데, 해결점이 뭔지 갑갑해진다”고 토로했다.
YMCA 시청자 시민운동본부 한석현 팀장은 “막장드라마의 비윤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요소들의 자극성에 시청자들이 지치면서 드라마에서 이탈해서 결국 드라마 자체가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는 상황이 왔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방송사 측에서 시청자의 요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정화하려는 노력이 먼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원인 규명·책임 전가에 머물지 말고 대책 강구해야
매년 반복되는 막장 드라마 논란은, 비슷비슷한 원인 규명과 책임 전가에만 급급한 경우가 많다. 아이윌미디어 김종식 대표는 “드라마의 질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질적으로 훌륭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방송사나 작가나 제작자에게 과감한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방심위 한정희 위원은 “저품격 드라마의 개선을 위해서는 시청률 평가 기준 외에 사회성, 독창성, 오락성을 중심으로 하는 드라마 평가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드라마에 공영성 지수를 부여해서 좋은 드라마를 만드는 작가나 피디에게는 강한 인센티브를 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막장 드라마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정적인 움직임 또한 논의됐다. 공통적으로 전문가들은 국내 방송 제작 여건에 따라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방송사의 상황을 인지하면서, 공익을 우선시하고 드라마 전체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작품을 지양하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또한 반복되는 책임 전가에 머물지 말고, 드라마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두정아 기자 dudu0811@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