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지난 5월21일 개봉한 영화 ‘간신’은 연산군 11면, 1만 미녀를 바쳐 왕을 쥐락펴락했던 희대의 간신들의 치열한 권력 다툼을 담았다.
배우 김강우와 주지훈, 천호진, 임지연, 이유영, 차지연 등이 열연했고, 민규동 감독의 첫 19금 사극이다. 특히 1만 미녀들의 등장과 파격 노출, 베드신 등으로 개봉에 앞서 많은 화제를 모았고, 대만과 프랑스, 일본, 태국, 홍콩까지 추가 판매를 확정하기도 했다.
매우 흥미로운 소재와 이야기인 만큼 소설가 정명섭에게 ‘간신’ 속 내용에 대해 의뢰해봤다.
↑ 사진=포스터 |
A. 실제로도 연산군은 조선의 임금들 중 유일하게 시집을 낼 정도로 예술가적인 기질이 많았다. 연산군일기에는 그가 남긴 시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이를 통해서 연산군이 감수성이 풍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간신’ 속 연산군 눈 주위에 붉은 반점이 있고, 또 폭군으로 묘사되다 보니 외모가 다소 흉측했을 것 같은 대중들의 인식이 있다. 고증을 통한 그의 실제 외모는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A. 실록에는 연산군이 면창을 앓았다고 나온다. 면창은 얼굴에 난 부스럼을 뜻하는데 증상이 심해서 명나라에서 약을 구해올 정도였다. 연산군의 눈 주위에 난 붉은 반점은 이 면창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선조 때의 대신 이덕형이 쓴 책에는 연산군을 만난 적이 있던 노인의 회고담이 적혀있다. 노인의 말에 따르면, 연산군은 키가 크고 살결이 하얀 편이었는데 눈은 늘 충혈 되어 있었고, 수염이 적은 편이었다고 한다. 영화 '간신'에 나온 김강우가 분장한 연산군은 실제 외모도 그렇지만 분위기도 잘 맞춘 편으로 보인다.
연산군에 대해 흔히 알려진 것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폭군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간신’에선 연산군을 연기한 김강우는 “연산군의 광기가 선천적이라는 전제로 연기를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도 연산군은 어머니가 죽기 전부터 폭군의 기질을 보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와 관련한 사례들이 있는가.
A. 연산군일기에는 학문을 좋아하지 않고 행실이 좋지 못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하지만 세자 시절의 연산군은 전형적인 폭군의 모습만을 보이지는 않았다.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자리에서 예의 바르게 행동해서 사신이 크게 감탄한 사례도 전해진다. 전해지는 야사에는 아버지인 성종이 죽자마자 애지중지하던 사슴을 활로 쏴 죽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실제로 채홍사에 징집된 처녀들이 ‘간신’과 같이 왕을 모시기 위한 가무, 잠자리 등 각종 기술을 배웠는지.
A. 채홍사들에게 뽑힌 처녀들은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외모와 키에 따라 흥청과 운평, 광희로 나눠졌다. 그리고 처용무 등 춤과 노래를 가르치고 성과가 좋으면 별도로 포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잠자리를 위한 특별한 교육을 받았다는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설사 그런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사관들이 실록에 남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연산군 시절에서 환관 김처선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김처선은 연산군의 채홍사에 간언을 하다가 다리와 혀가 잘리고 부모의 묘는 부관참시 당했다. 실제 역사 속에서 채홍에 대해 김처선이 한 간언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A. 김처선이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실록에는 규간, 즉 임금의 잘못을 꾸짖어서 죽음을 당했다고 나온다. 아마 곁에서 지켜본 연산군의 성적 방종과 타락, 그리고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을 그만하라고 간언한 것으로 보인다.
‘간신’에서 장녹수는 요부라기보다는 권력 암투를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역사 속에서 장녹수는 흥청 중 한명이었는데 실제로도 권력욕이 있었나.
A. 사람은 누구나 남위에 군림하고 싶어 하는 권력욕을 가지고 있다. 요부라는 이미지를 가진 장녹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연산군의 총애를 받자 자연스럽게 재물이 몰렸고, 자신의 친척들을 관리로 삼았다. 연산군일기에는 연산군이 내리는 상과 벌이 모두 그녀에게서 나왔다고 적혀있다.
‘간신’ 속 임숭재(주지훈 분)는 권력욕에 눈이 먼 캐릭터로 그려지는데 역사 속에서 왕과 함께 음란행위를 즐기던 인물로 알고 있다. 임숭재 역시 여색을 밝히던 인물이었는가 또는 실제 친구였는가.
A. 임숭재는 성종의 딸 혜신옹주와 결혼한 부마였기 때문에 궁궐을 자주 드나들면서 연산군과 가까이 지내면서 총애를 받았다. 연산군일기에는 임숭재가 자신의 누이동생과 부인을 연산군과 관계를 맺도록 했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당사자도 여색을 탐했을 것으로 보인다.
↑ 사진=스틸 |
A. 연산군은 즉위 초기 여진족과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대책을 세우는 등 나름대로의 업적을 남겼다. 또한 연산군의 행위를 왕권 강화책의 일환이라고 재평가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연산군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사람들의 고통과 국가의 미래를 아랑곳하지 않았던 전형적인 폭군이다.
임숭재는 성종 때 시문과 서예 솜씨로 당대에 이름을 날리기도 했으며, 중국어에도 능통해 성종에게 엄청난 총애를 입고 종친임에도 문관에 등용됐다. 임숭재가 영화처럼 간신이 된 이유는.
A. ‘간신’에서 연산군은 내 조정에는 충신은 없고 충견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임숭재가 간신이 된 이유는 연산군의 총애를 받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임숭재와 그의 형이 잇달아 왕실과 혼인을 한 것을 두고 다른 신하들의 견제를 받았고, 결국 아버지 임사홍이 유배를 떠나면서 그 역시 성종의 재위기간 내내 소외되어야만 했다. 부당한 탄압을 받았다는 복수심에 눈이 먼 임사홍과 임숭재는 연산군의 비위를 맞추는 것으로 중앙 정계에 복귀하였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폐비 윤씨 문제를 거론하면서 사화를 일으켰다. 그 후 임사홍과 임숭재는 간신의 길을 걷게 된다.
‘간신’ 속 설중매(이유영 분)는 색에 능한 팜므파탈로 그려진다. 하지만 역사 속 설중매는 고려 말과 조선 초에 활동했던 기생으로 왕씨를 섬기다가 이씨를 섬기는 사람이라고 대신들을 비꼬기도 했다. 역사 속 설중매는 어떤 사람인가.
A. 설중매는 연산군 때의 기생이 아니라 고려 후기의 기생이다. 뛰어난 미모와 재치 있는 말솜씨로 많은 남성들을 사로잡았는데 조선 건국 후 열린 잔치에서 정승이 그녀에게 거처 없이 떠도는 처지라고 희롱을 하면서 수청을 들라고 한다. 그러자 설중매는 왕씨를 섬기다 이씨를 섬긴 사람을 모시는 것이 뭐가 어렵겠느냐고 대꾸한다. 비록 기생이지만 기개가 있는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미색이 뛰어나고 춤과 노래에 재능이 있는 기녀들을 뽑아 올리는데, 실제 그 시대에서는 이 기녀들을 뽑으면서 배출된 지역, 혹은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A. 연산군은 자신이 총애하는 흥청에게 자주 포상을 내리고 그녀들이 죽으면 거창하게 장례를 치러주기도 했다. 또한 흥청의 가족들도 특별한 대우를 받아서 세금을 면제받거나 집과 토지를 하사받았다. 흥청들이 지방의 본가를 방문할 경우에는 관리를 보내서 호위를 하게 했다. 가족들 역시 자연스럽게 위세를 부렸는데 한양에 올라와서 남의 집을 함부로 빼앗는 등의 횡포를 부리기도 했다.
중종반정 이후 연산군 폐위와 더불어 수많은 운평들의 운명은 어땠나.
A. 중종반정 이후 운평이 폐지되면서 모두 고향으로 돌아갔다. 다만 장녹수와 가깝게 지내거나 연산군의 총애를 받고 남의 재물을 빼앗은 운평들은 처벌을 받았다. 아울러 그들에게 주어진 재물도 모두 회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