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저는 영원히 철들고 싶지 않아요”
철들지 않는 어른이고 싶다는 최병길 PD는 기존의 PD와는 외양부터 달랐다. 코믹의 옷을 입고 무겁고 어두운 사회상을 고발한 MBC 드라마 ‘앵그리맘’과는 달리 최병길 PD는 검은색 선글라스에 빨간 바지, 그리고 곱게 단장한 머리스타일까지. 아무리 봐도 지상파 방송국인 MBC PD로 보이지 않았으며, 더 솔직히 말하자면 노는 걸 좋아하는 철없는 삼촌처럼 보일 정도로 외견에서는 진중함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권위를 위한 권위를 싫어하고, 폼 잡는 것이 싫다고 고백한 최병길 PD는 사진에서조차 진지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디오 감독과 김희선 씨와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 세 사람 모두 ADHD인데 정말 잘 풀린 ADHD라고. 그만큼 우리 셋이 모이면 정말 시끄럽고 정신없어요. 모두가 힘들어서 조용히 있을 때도 저희가 있는 곳은 늘 시끄러웠죠.”
‘앵그리맘’ 제작발표회 당시 무대 위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인터뷰 내내 가벼우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은 묵직함을 가지고 있는 최병길 PD. 형식을 파괴하고 위엄을 버린 독특한 괴짜 PD와의 만남은 유쾌하고 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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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 “강자를 영웅으로 만들지 않은 이유?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최병길 PD가 연출한 ‘앵그리맘’은 딸 아란(김유정 분)을 학교폭력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교복을 입고 뛰어든 엄마 강자(김희선 분)의 고군분투를 다룬 작품이다. 처음 리얼하면서도 잔인한 학교폭력의 단면을 보여준 ‘앵그리맘’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고위관계자들의 비리를 그려내며 현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해 나갔다.
여러모로 호평을 받았던 ‘앵그리맘’이었지만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학교폭력의 과정을 그리는 과정이 다소 폭력적이었던 것이다. 강자가 고등학교 시절 동칠(김희원 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알리는 장면은 선정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첫 방송 나가고서 경고를 많이 받았어요. 안 그래도 방송통신심위원회(방통위)에서 A4용지를 주더라고요.(웃음) 학교폭력에 대해 너무 가볍게 그렸다면서. 사실 방통위 뿐 아니라, 방송사 자체 심의실에서 문제가 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사장님이 전화오시기도 했었고. 아무래도 학교 폭력을 코믹하게 그리는 것에 대해 우려의 표현을 보낸 이들이 많았었죠. 사실 극 초반 코미디로 그렸던 이유는 뒤로 갈수록 드라마에서 다뤄야 할 문제들이 무거웠고 또 씁쓸했기 때문이에요. 비록 코믹하지만 현실을 여과 없이 드러내야 이 드라마의 가치와 진정성이 생길 것이라고 판단했거든요.”
시청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앵그리맘’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풍자가 숨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앵그리맘’의 시작은 학교폭력이었지만, 그 끝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그늘을 향한 고발이었다. 정계와 유착된 재벌, 학교가 붕괴돼 수십 명의 학생들이 죽었음에도 돈만 있다면 ‘무죄’가 되는 사회의 정의 등은 씁쓸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공감 가능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그랬기에 많은 시청자들은 이 시대의 어머니를 대표하는 강자가 자신의 앞에 있는 거대한 악을 뛰어 넘어 문제를 해결하는 통쾌한 활극을 통한 대리만족을 꿈꿨고 또 기대했다. 하지만 ‘앵그리맘’은 이 같은 안방극장의 바람을 뒤로 하고, 강자를 세상에서 가장 강하지만 또 자녀 앞에서 가장 약한 엄마로 그려냈다.
“하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얼마든지 강자를 앞세운 통쾌한 활극을 그릴 수 있었어요. 강자가 영웅이 학교폭력 뿐 아니라, 악의 축이 됐던 정우(김태훈 분)와 수찬(박근형 분) 홍회장(박영규 분) 등에게 시원한 한방을 날릴 수도 있었죠. 하지만 TV를 틀어 뉴스를 보시면 다 아실 거예요. 드라마와 달리 오늘날의 세상은 악을 처단하기 어려운 세상이고, 개인이 부정부패 비리들을 처단했다는 뉴스를 볼 수도 없어요. 아무리 영웅이 나타난다 한들 얼마 지나지 않아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의 세상이라는 거죠. 시청률을 의식해서 판타지를 그리는 것이 맞는 것일까 싶었고, 또 강자를 영웅으로서 잘 그릴 자신도 없었어요. 강자 영웅 만들기가 도저히 글이 안 써지는 거예요. 실제 많은 사람들은 문제를 신고하는 과정 속에서 이렇게 막히고 저렇게 막힐 수밖에 없다고 봤죠. 물론 드라마는 다큐는 아니지만 현실에서 외면할 수 없었죠.”
◇ 깨지지 않은 달걀, 세월호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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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드라마를 보면 처음에 강자가 달걀를 깨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해요. 달걀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어요. 이른 바 ‘계란으로 바위치기’의 뜻도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결국 알을 깨지 못한 채 저물어 버린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겠다는 의미도 있었죠. 병아리도 되기 전에 깨져 버린 알들…깨지지 않은 달걀과 관련해 다양한 해석이 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어떤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만큼 사실 정답은 없네요.”
비록 시청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작품성만큼은 높은 점수를 받았던 ‘앵그리맘’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장면은 바로 학교 별관이 붕괴되는 장면이었다. 학교 붕괴 장면은 2014년 많은 희생자를 낳았던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했고, ‘앵그리맘’에서 다룬 묵직한 죽음의 무게에 안방극장은 눈물바다를 이루기도 했다.
“드라마 공모전 당시 제가 ‘앵그리맘’을 선택했던 이유는 바로 ‘붕괴 사고’ 장면 때문이었어요. 유럽여행 당시 이 작품을 받았는데, 보고 ‘이 작품이다’ 싶었죠. 사실 현재 MBC 분위기에서 이러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했는데, 걱정과는 달리 위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앵그리맘’의 연출을 맡게 됐죠.”
방송 후 시청자들의 뜨거운 눈물과 호평을 이끌어 냈던 ‘붕괴사고’ 장면이었어도 이를 다루기는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붕괴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세월호 참사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사회의 아픔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풍자라고 한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일. 이에 대한 부담은 없었을까.
“부담이 없었으면 거짓말, 많이 조심스러웠죠. 사실 넣으려다가 삭제했던 장면이 있어요. 무너진 건물로 피해를 당한 아이들이 툭툭 털고 일어나는 장면이었죠. 그런데 보면서 부모님들의 마음이 더 아플 것 같고, 또 약 올리는 것처럼 느끼실 것 같아서 결국 넣을 수 없었어요. 그 장면을 넣으려고 했던 것은 희망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제가 ‘앵그리맘’을 편집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바로 저 역시 붕괴 장면이었어요. 저 역시 편집을 하면서 많은 눈물도 흘렸거든요.”
◇ ‘공부가 제일 쉬웠던’ 불량 학생, PD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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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최병길 PD와 적지 않은 시간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은 바로 ‘정형화 되지 않은 영혼’이라는 것이다. PD인 동시에 애쉬번이라는 예명으로 정식 앨범을 낸 가수이자 자신의 세계를 화폭에 담아내는 화가인 최병길 PD는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워 보였다. 2010년 최병길 PD의 자작곡을 담은 앨범 ‘애쉬번’(Ashbun)의 타이틀곡 ‘바보 멍청이 똥개’라는 제목처럼, 평범함을 싫어하는 최병길 PD는 ‘자유로운 영혼’에 가까워 보였다.
그런 최병길 PD를 보니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수업을 들으며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나가는 학교생활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최병길 PD는 고등학교 때 어땠느냐고.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학교가 정말 싫었다”였다.
“학교를 정말 싫어했어요.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 가기 싫어 반항하다가 정학 당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모범생 콤플렉스가 있어서 출석은 다 했죠. 물론 성적은 나쁘지 않았어요. 공부가 제일 쉽던데요?(웃음) 세상사는 게 얼마나 힘든데…당시는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했고, 진짜 지금 와서 보면 공부가 제일 쉬웠던 것 같아요.”
학창시절 공부는 잘했다며 장난스럽게 자랑 아닌 자랑을 하는 최병길 PD에게 ‘학교’의 무엇이 그렇게 싫었느냐고 되물었다.
“권위의식에 대한 반발심은 늘 있었어요. 형식을 위한 형식 그로 인해 생겼던 말도 안 되는 룰이 그렇게 싫어서 반항도 했었죠. 여전히 권위의식을 알레르기를 일으킬 정도로 싫어해요. 저는 촬영할 때도 보면 반듯하게 앉아서 하지 않아요. 늘 삐뚤게 앉아있죠. 아까 사진도 삐딱하게 찍었어요. 저는 반듯한 것이 싫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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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인터뷰 도중 재미있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바로 ‘앵그리맘’의 주인공 김희선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스피커폰을 넘어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최병길 PD와 김희선의 모습은 마치 10년 지기 단짝 친구와 같았다. 여담이지만 최병길 PD는 후에 진행됐던 김희선 인터뷰 장소에 깜짝 등장해 ‘인터뷰를 가장한 수다’를 풀어놓기도 했다.
김희선과의 잠깐의 사담을 마친 후 최병길 PD에게 혹시 김희선 외에 ‘앵그리맘’의 강자로 생각한 배우가 있느냐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최병길 PD는 질문이 떨어지기 무색하게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김희선을 생각했으며, 그가 아닌 다른 배우는 생각한 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일단 교복과 엄마, 그 두 가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김희선 말고는 떠오르지가 않는 거예요. 그리고 도전 의식도 있었죠. 김희선 씨가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여배우 이지만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연기파 배우의 대열에 오른 것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전 김희선이라는 배우의 잠재력을 봤고, 이를 이끌어 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죠. 그렇게 작품을 시작했는데 이게 웬걸,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잘하는 거예요. 우려했던 상황도 전혀 없었죠. 즉 처음부터 끝까지 ‘앵그리맘’은 김희선 씨가 아니면 안 될 드라마였던 거예요.”
‘앵그리맘’으로 이제 막 작품을 올린 최병길 PD가 꿈꾸는 최종 목표이자 꿈은 ‘스토리텔링을 놓치지 않는 연출자이자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창작자’였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위대한 이유는 누구나 작품을 보고 재미와 공감을 동시에 전해준다는 것이죠. 그것만큼 어렵고 가치 있는 또 없는 것 같아요. 이제 막 한 작품을 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웃기지만 제 궁극적인 목표는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다양한 시리즈들을 탄생시키는 거예요. 그 와중에서 가장 중요한 ‘스토리텔링’을 놓치면 안 되겠죠. 언젠가 그런 작품을 탄생시키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