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박정선 기자] “천천히 걸을 줄도 알아야죠.”
영화 ‘극비수사’, 배우 유해진의 연기 변신일까. 물론 영화를 보기 전 ‘유해진이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대중들의 반응은 기대보다는 우려에 무게가 기울었다. 그간 수많은 영화에서 호들갑스럽고 능구렁이 같은 성격을 연기하던 유해진은 최근 tvN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 어촌편’을 통해 그 이미지를 더욱 견고히 했다.
하지만 ‘극비수사’는 결코 유해진이 연기 변신을 한 작품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삼시세끼’에서도 유해진은 재기 발랄한 입담을 뽐내다가도 뒷짐을 지고 파란지붕집 뒷산을 유유자적 거닌다. 유해진의 실제 성격을 고스란히 담아낸 프로그램이 바로 ‘삼시세끼’일 거다. 빠른 템포로 대중을 홀리다가도 금세 템포를 늦추면서 자신 안에서의 조화를 이루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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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어디 사람이 항상 100m 달리기만 할 수 있나요? 천천히 걸어가는 것도 필요하고, 500m도 뛸 줄 알아야죠. 이 작품에서는 전혀 웃기고 싶지 않았어요. 기본적으로 코미디적인 요소가 있는 영화는 아니잖아요. 오히려 빼는 작업을 많이 했죠. ‘이렇게 하면 웃지 않을까? 수위를 낮추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죠.”
‘극비수사’는 1978년 부산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유괴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유해진은 진정한 도(道)의 가치를 추구하는 도사 김중산을 연기한다. 그는 유괴된 아이가 살아올 것이란 확신을 갖고 형사 공길용(김윤석 분)을 도와 아이를 찾는다. 두 사람의 성격은 다르지만 아이를 찾아야 한다는 한 가지 목표를 공유하면서 두 사람은 균형을 맞춰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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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적으로는 윤석이 형이 동(動)이었다면 저는 정(靜)을 원했어요. 그 밸런스가 맞아서 괜찮았던 것 같아요. 형이 동인데 저 역시 그랬다면 문제가 됐겠죠? 윤석이 형과는 사석에서 많이 만났는데, 이번처럼 한 작품에서 길게 호흡한 적이 없어요. 그간 작품을 보면서 항상 느껴왔지만, 이번 작품을 같이 하면서 더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중산은 하늘의 뜻을 전달하지만 도사로서의 모습과는 거리감이 있다. 도사라는 직업은 그저 하나의 설정에 불과하다. 그가 도사로서 관객들에게 주는 메시지 보다 오히려 평범한 아버지이자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이미지가 진하게 여운을 남긴다. 특히 유해진은 김중산에게서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가난하지만 소신이 있었어요. 저희 아버지도 대쪽 같은 분이셨어요. 김중산이 극에서 낡은 와이셔츠에 푸르스름한 정장바지를 입고 닳아서 떨어진 구두를 신잖아요. 생각해보니 제가 어렸을 적 아버지의 모습이더라고요. 아버지의 모습을 많이 떠올렸어요. 특히 스크린으로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아, 저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구나’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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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그만큼 유해진은 ‘도사 김중산’보다 ‘아버지 김중산’에 초점을 맞췄다.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유괴된 아이를 찾고자 하는 간절함이 관객들에게 전달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특히 유괴된 아이를 구한 이후 김중산이 가족들과 함께 모기장 안에 뒤엉켜 잠을 자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그 모기장 신이 아주 짧게 나오잖아요. 그런데 그 장면이 저의 정서에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었어요. 그 장면만은 감독님께 굳이 재촬영을 고집했어요. 예쁘지 않나요? 가족끼리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 자는 모습이? 하하. 물론 실제로 아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만약 가정을 꾸린다면 그런 모습이었으면 해요.(웃음) 그래도 극중 김중산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진 않아요. 소신이 있다는 건 좋은데, 현대에는 또 다른 게 있잖아요. 딸은 그런 딸이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하하.”
유해진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진하게 묻어났다. 도사 김중산을 아버지 김중산으로 해석하고 그리면서 관객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냈던 것처럼 그는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사람’을 중요시 여겼다.
“작품을 선택할 대는 절대 굽히지 않는 저만의 기준이 있어요. 시나리오 자체의 재미를 느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사람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린 작품이라야 해요. 절대 장난치지 않아야 해요. 그건 코미디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아! 그리고 다른 것보다 ‘계속 배우하면서 살겠네’라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하하.”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