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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지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사진=예스컴 제공) |
장관이었다.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 앞에 운집한 4만명의 관객. 공연 시작 직전 기적처럼 폭우가 멈췄다. 관객들의 눈빛은 단 한 사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서태지였다.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이하 펜타포트)은 그간 뮤즈(Muse),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 트래비스(Travis)등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헤드라이너로 출연해왔다. 어떠한 외국 가수가 오느냐에 따라 흥행 성적이 달라지는 국내 록 페스티벌 특성상 한국 가수가 헤드라이너로 서는 경우 자체가 드물었다.
서태지는 펜타포트의 토요일(8일) 헤드라이너로 초대됐다. 서태지컴퍼니가 직접 기획·제작한 'ETP 페스트'가 아닌, 다른 브랜드 록 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것은 그의 가수 인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를 보기 위해 모인 4만여 관객은 10년 펜타포트 역대 최다 인원이라고 한다. 해외 록밴드가 아닌 국내 가수가 이뤄낸 기록이다. 이는 어느 정도 성숙기에 들어선 국내 음악 페스티벌 시장과 서태지라는 브랜드의 힘이 만나 일군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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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지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사진=예스컴 제공) |
더불어 그는 '필승', '울트라맨이야' 등 히트곡들과 지난 9집 앨범 수록곡인 '소격동', '크리스말로윈'을 통해 펜타포트 현장을 거대한 '노래방'으로 변신시켰다. 1990년대에 대한 향수를 소환함과 동시에, 현재진행형 뮤지션으로서 존재감을 자연스레 발산했다는 평가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실 이데아'에서 타이거JK·윤미래 부부, 래퍼 비지를 출연시켜 환상의 호흡을 보여줬다. '컴백홈'에서는 현장에 있던 관객을 무대 위로 초대해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며 따스한 교감을 나눴다.
그는 연주와 보컬이 따로 흘러나오는 특별 스피커를 설치했다. 덕분에 철저히 계산되고 준비된 사운드가 한꺼번에 몰아치듯 쏟아졌다. 관객은 그 앞에서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차원이 다른 화려한 조명까지 배치한 부분도 첫 록 페스티벌을 향한 서태지 만의 '리스펙트'였는지 모른다.
총 19곡이라는 단독 공연에 견줄만한 그의 무대가 끝난 후 SNS와 커뮤니티상에서는 서태지에 대한 호평으로 도배됐다. 부정적인 의견은 거의 없을만큼 서태지는 오직 음악으로 4만여 관객을 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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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지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사진=예스컴 제공) |
'신비주의' 대명사였던 '문화 대통령'은 자신의 음악과 인생에 대해 솔직하게 밝히면서 그동안 짊어져왔던 부담감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그렇게 대중 속으로 걸어들어왔다. 그가 9집으로 활동했던 2014년 9월과 10월, 포털 사이트 최다 검색어 역시 '서태지'였다.(사생활 이슈로 검색어에 올랐다고 오해하지 말라. 그 시점은 8월이었다)
그 누가 새 앨범 한 장만으로 두 달간 국민적 관심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가. 아직도 그는 최고의 이슈 메이커이고, 매 앨범마다 새로운 콘셉트와 장르를 탐구하는 '음악 여행자'다.
서태지는 아직도 음반 작업을 하면 몇 년동안 콘셉트를 구상하고, 곡을 만들고, 후반 작업을 하고, 공연 준비를 이어간다. 마치 중요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정성껏 갖추고 다듬듯이, 그는 정교하고 '성스럽게' 앨범을 준비해왔다.
음악에 대한 진지한 탐구, 매 앨범마다 이뤄지는 과감한 혁신. 오직 음악에 대한 온전한 진정성이 빛나는 서태지가 전해주는 메시지다.
다만 철저히 '동굴' 속으로 들어가 새 앨범을 준비한다는 점이 아쉽다. 그 기간은 짧게 3년에서 5년, 혹은 7년이 될 수도 있다.
그러한 그가, 이번 펜타포트를 통해 새 앨범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동굴' 속에서 몇 달만에 나오는 이례적(?) 선택을 했다. 음악 시장의 다양성 확대다. 이번 기회에 그에게 반한 음악 팬들은 서태지를 다시 볼 것이고, 그의 음악과 연결된 다른 음악까지 들을 것이다.
대중이 오직 음악에 대해 이야기 하게 만드는 힘. 서태지가 몇년씩 '동굴'에 스스로를 가둔 채 대중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면 안 되는 이유다.
P.S) 그래서말인데요. 서태지 씨. 새 앨범이 아니더라도 가끔 '동굴'에서 이렇게 바람 쐬러 나와주길 바랍니다. '디스(disrespect 줄임말·주로 다
※ 필자 '음악 좀 아는 언니'는 가요·팝·공연 등 장르를 넘나들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엔터테인먼트업계 종사자다. 가죽 치마를 즐겨입는 그는, 거침없는 돌직구를 날리는 음악 평론가이기도 하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