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조우영 기자]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 한 인터넷 게임 속 치트키(Cheat Key·일종의 속임수 명령어)로 더 잘 알려졌던 이 표현은 어느새 한국 힙합신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 수식어가 됐습니다. 2012년 시작돼 현재 시즌4가 방영 중인 Mnet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덕이지요.
시청률을 담보해야 하는 TV 프로그램 특성상 이슈 양산을 위한 제작진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악마의 편집'을 넘어 선정적 노랫말과 여성 비하, 판정 번복, 대형기획사 YG 소속 송민호를 둘러싼 디스(disrespect) 전까지 점입가경입니다. 일부 출연자와 심사위원의 자질 논란까지 불거질 지경이죠.
'쇼미더머니' 제작진은 "힙합의 대중화를 이끌어 냈다"며 해당 프로그램이 소위 '욕 먹어도 계속 되어야 한다'고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합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쇼미더머니'는 상업화에 지나치게 치우쳐 위악만 남아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Mnet에 과징금 2000만원을 부과했지만 그들 변화에는 비관적입니다.
'쇼미더머니'가 진짜 욕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애석하게도 '힙합의 대중화'를 부르짖는 '쇼미더머니' 제작진의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대중음악계 전반에 걸쳐 건전한 비판의 장을 마련할 '이건 뭔가요' 코너를 통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이건 뭔가요'는 현장의 목소리에 가까운 기자와 강일권 음악평론가, 옆집 동네 아저씨 같은 장태동 여행작가가 각각 주제에 부합하는 게스트를 초대해 함께 합니다.
동영상 보기 ① 요약본 "예선 시스템부터 삐걱…황당한 심사위원"
▶노현태(그룹 거리의 시인들 멤버이자 '쇼미더머니4' 참가자) : 예선 현장에서 황당한 일이 있었어요. 각 심사위원별로 조를 나눠 예선을 치렀는데 합격 목걸이가 조별로 일정량 할당돼 있었나 보더라고요. 참가자들은 그저 합격 실력이 되면 다 목걸이를 받는 걸로 알고 있었죠. 그런데 앞에서 아이돌 같은 친구가 하나 받고, 그 다음은 교복 입은 참가자가 받았아요. 세 번째 합격자가 나오려는 순간 심사위원 OOO이 "아! 목걸이가 하나 남았네" 이러면서 다시 가져가더라고요. 그 뒤로 길게 줄을 선 참가자 반 이상이 남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다 '멘붕(멘탈 붕괴)'이 온거죠. 남아 있는 목걸이 하나를 쟁취하려니 얼마나 긴장되고 떨리겠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애초 (조별로) 3개만 줄 것이었다면 심사를 모두 마친 후 최종 3명을 뽑아 주던가, 만약 본인도 미처 몰랐던 실수였다면 끝까지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결국 제 실력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고 탈락했죠. 게다가 편집돼 나온 장면을 보면 전 그냥 미친X처럼 소리만 지르다 끝난거예요.
▶강일권(음악평론가 겸 흑인 음악 전문웹진 리드머 편집장) : 노현태 씨 말씀 대로라면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긴 한데, 제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조금 다르네요.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까지 굳이 비판할 만큼 '쇼미더머니'를 두고 과연 우리가 논할 가치가 있느냐는 겁니다. 제 입장에서는 용납이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과정과 결과물이 그들 기획 취지와 괴리감이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동영상 보기 ② 요약본 "힙합 대중화 빙자한 정보 왜곡 쇼"
▶강일권 : '쇼미더머니'가 처음 시작됐을 때 많은 힙합 팬이 분노했던 지점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힙합 문화를 훼손시킨다는 거였죠. 왜냐하면 힙합이 한 문화로써 어딘가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미국 이외 슬럼가가 있는 곳의 힙합 신이 아니면 뜬구름 잡는 소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문화로서 힙합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흔히 빈민가와 갱스터를 떠올립니다. 사회 계급적으로 차별받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태어난 문화죠. 이게 사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대로 뿌리 내리기 어렵습니다. '쇼미더머니' 제작진은 힙합을 대중화 시켰다고 하잖아요. 한국 힙합을 위한다고 한단 말이예요. 여기에도 좀 변화가 있습니다. 시즌 1·2·3까지는 한국 힙합을 위해서 한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하다가 이번 시즌4 기자회견 때 보니 비판적 시각들을 의식해서인지 "힙합에 대해서 잘 모른다. 잘 모르지만 힙합에 대한 애정을 갖고 이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말을 바꾸었죠. 이 부분에서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모르는 데 어떻게 힙합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겁니까. 실명을 거론하진 않겠지만 개인적으로 자문을 위해 제작진을 한 번 만난 적 있는데, 모 피디님은 아예 힙합을 모르더라고요.
▶노현태 : 솔직히 심사위원들의 면면도 그렇잖아요. '심사'라는 게 뭡니까. 어느 정도 연륜이 있고,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랩 좀 하고 대중적 인기가 있으면 심사위원하는 겁니까?
▶강일권 : '쇼미더머니' 지원할 시점에는 심사의원이 공개되지 않았었나요? 누가 심사위원인지 알고 나가신 거 아니예요?
▶노현태 : 몰랐습니다. 지원할 시점에는 공개되지 않았었어요.
▶강일권 : 사실 시즌1 때도 심사의원들에 대한 자질 논란이 있었거든요. 실제로 여러 논란은 계속 있어 왔고, 지금 벌써 시즌4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시즌4까지 오는 과정에서 어떠한 논란과 문제점이 있었는지 이미 너무 많이 드러났습니다. 참가자 분들 역시 '쇼미더머니' 제작진과 마찬가지로 비판을 피해갈 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현태 : 네. 그래요. '쇼미더머니' 덕에 대중적 인지도을 높일 수 있어서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당연히 안 좋은 점도 있었지만, 그들 말대로 힙하퍼들이 조금이라도 더 알려질 창구가 있다면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다만 요즘 젊은 친구들 랩 스타일이 비슷비슷하잖아요. 저는 예전에 우리(거리의 시인들)가 했던 그 스타일, 힙합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강일권 : '쇼미더머니'가 한국 힙합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제작진을 비롯해서 그러한 이유를 내세우는 몇몇 뮤지션이나 팬분들, 환상에서 깨셔야 될 것 같습니다. 1차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래퍼를 이용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보면 맞아요. 아마도 제작진이 스스로 그렇게 내세웠다면 지금처럼 비판의 강도가 세진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힙합의 정서·멋·역사 뭐 이런 부분들을 들먹이니까 우스운 겁니다. 이건 진짜 엄청나게 잘못된, 너무 과장된 의욕입니다. 심지어 '디스는 힙합 문화'라는 거짓말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그걸 또 기사로 써서 옹호해주면 안 됩니다. 참여한 뮤지션들까지도 그런 무식한 소리를 해대고 있어요. 간단히 말씀 드리자면 영어권에서 '디스 컬쳐(Disrespect Culture)'라는 말 자체가 없습니다. 소위 '디스'는 힙합뿐 아닌 예전부터 있었던 하나의 '행위'예요. 중세 시대 풍자시처럼요. 힙합 신이 할 말은 하는 문화죠. 특히 미국은 할 말 하는 게 미덕으로 여겨지는 사회고요. 한국하고 다릅니다. 한국은 겸손하고 말을 아껴야 되는 문화 아닙니까. 어찌 됐든 '디스'는 힙합 음악에서 차지하는 일부분일 뿐이지 그걸 '문화'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힙합을 위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사람들이 이처럼 기본적인 사항을 모르면서 내뱉는 왜곡된 정보들에 대해 아무도 비판하지 않고 있습니다.
동영상 보기 ③ 요약본 "그럼에도, 래퍼는 왜 '쇼미더머니'로 갔나"
▶ 장태동(여행 작가) : 힙합 음악은 어떠한 부조리에 대한 저항적 요소가 많잖아요. 저항에 대한 주체가 개인 대 개인, 개인 대 사회, 개인 대 국가일수도 있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일종의 발설이잖아요.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은 우스갯 소리로 스님들이 맛있는 거 먹으러 찾아 다니는 격이예요. 저는 힙합이 '쇼미더머니'라는 틀 안에 갇히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구보다 자유로워야 할 힙합 뮤지션들이 이미 그 상업적 틀 안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봅니다.
▶ 사실 한국의 음악 시장 자체가 워낙 X 같습니다. 한국 가요계가 다른 나라보다 유일하게 좋은 게 딱 두 가지 있어요. 첫째 자유로운 표절이 가능하다는 점. 둘째, 표절을 했건 뭘 잘못했건 잠깐 쉬었다 나오면 다들 반겨준다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한국 가요계는 굉장히 좋습니다. 그 외 진짜 자기 음악하는 장르의 뮤지션들은 먹고 살기 너무 힘든 환경입니다. 그래서 '쇼미더머니' 같은 프로그램이 나왔고 잘 되는 겁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자면 왜 한국 뮤지션들이 '쇼미더머니'가 구린 걸 알면서도 참여를 하는지 백 번 이해가 되거든요. 시즌3부터는 '막장'이라는 평까지 받았죠. 그러면서 인기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뮤지션들이 자존심을 좀 포기하더라도 여기에 나가면 일단 공연 페이(출연료)가 올라가고 본인의 음악 생활이 편해지는 게 있다고 봐요. 물론 전부 다 그렇진 않겠죠. 그래도 그걸 일정 부분 노리고 나가는건 인정해야 합니다. 재미 있는 건 팬들이 뮤지션들 '먹고 사는' 생계 걱정을 해줘요. 굉장히 냉정하게 들리수도 있지만 대중이나 기자분들이 뮤지션의 생계 걱정을 한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짓이고 오만이라고 생각해요. 뮤지션이면 그의 음악이나 행보를 두고 판단해야지, 왜 뮤지션이 힘드냐 힘들지 않느냐 그걸 따져서 동정하는 지 모르겠어요. 더 심각한 문제는 '쇼미더머니' 같은 프로그램에 나가지 않고 본인의 스타일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뮤지션에 대한, 그나마 있던 관심조차도 완전 사그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제는 자기 색깔과 신념을 지키고 있는 뮤지션들을 인정해주는 것이 아닌, 오히려 그들을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쇼미더머니'를 보고 언더그라운드 힙합 뮤지션까지 음악을 찾아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동영상 보기 ④ 요약본 "힙합 대중화? 출연 래퍼의 대중화일 뿐"
▶강일권 : 결국 '쇼미더머니'가 한국 힙합을 대중화 시켰다는 주장은 여러 면에서 좀 무리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대중화라는 것은 상업화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인데, 현재로서는 해당 래퍼 본인의 대중화일뿐, 힙합의 대중화로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노현태 : 뭐, 인기 많으면 OO인거죠. 아무리 음악을 잘 하면 뭐합니까. 사람들이 모르면 땡인데. 강 평론가 말씀처럼 '쇼미더머니'가 제대로 된 프로그램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은 그래요. 어렵고 힘들게 살아온 힙합하는 친구들이 그나마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대중에게 알려지게 돼 고마운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또 참여하고 원리도 알게 되니까 서운하고 안타까운 점도 있긴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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