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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2월29일 주만주국 일본전권대사 무등신의(武藤信義)를 제거하기 위해 거지로 변장해 중국 하얼빈으로 향한 남자현 여사(1873~1933). 그는 미행 중인 일본 형사에 붙들려 갇혔고, 얼마 후 결국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약산 김원봉의 부인으로 의열단 활동을 한 박차정 여사(1910~1944)와 삯바느질을 하며 신흥무관학교 독립군 간부 양성 뒷바라지를 했던 이은숙 여사(1888~1979), 3·1 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1902~1920) 등도 있다.
광복 70주년인 2015년 여름,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재조명됐다. 몇 해 전부터 현재의 대한민국을 존재하게 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다뤄졌으나 큰 주목을 얻지는 못했다. 이들의 삶은 올해 영화 ’암살’ 덕에 좀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암살’의 주인공 안옥윤(전지현)처럼 수많은 이들이 독립을 위해 싸웠던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TV와 언론을 통해 더 많은 이름이 소개됐다.
자신의 몸을 내던져, 오직 대한민국의 독립을 원했던 이들의 용기와 나라 사랑은 영화 같았다. 안옥윤이 친일파 처단을 위해 총을 들었던 ’암살’은 실제 상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자현 여사의 거사는 실패했으나 안욕윤이 관객에게 과거를 환기하게 했다. 이 영화가 더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독립이 될 줄 누가 알았겠나?"라고 자기합리화한 밀정 염석진(이정재)에게는 수긍이 가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시대에도 독립을 요구하며 자신을 희생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염석진의 후손들이 호의호식한다. 그에 비해 독립을 위해 애쓴 이들의 후손이 그리 넉넉하게는 못사는 삶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선대의 잘못을 드러낸 이도 있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홍영표 의원은 "친일 후손으로서 사죄드린다"고 고백했다. "사법적 연좌제는 없어졌다 해도 일제식민지배에 대한 국민 가슴 속 분노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가 닿을 때마다 사실을 밝히며 사죄하고 반성하는 것이 자손인 저의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있다"고 썼다. 홍 의원이 속죄의 마음으로 민족정기사업에 힘을 쏟고 있는 이유다. 감추려고만 하는 누군가와는 달리 조부의 잘못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최근 발생한 동아제약 회장의 아들인 동아쏘시오홀딩스 강정석 사장의 주차관리요원 노트북 파손 사건은 관객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그는 자신의 차에 주차 위반 경고장을 붙였다는 이유로 이성을 잃었다. 영화 ’베테랑’의 안하무인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가 떠오른다. "나한테 이러고도 뒷감당할 수 있겠어요?"라고 말하는 유아인의 표정과 말투가 그에게도 배어있었을 것 같다.
어처구니없는 재벌가 사건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보다 앞서 SK 맷값 폭행, 한화 야구방망이 보복 폭행, 대한항공 조현아 땅콩 회항 사건 등도 있었다. 허구일 것만 같은 이야기다. 상상 속에나 가능할 것 같은 일들은 실제 뉴스에 나왔다. 재벌가의 몰상식한 행동들이다.
’베테랑’은 서도철 형사(황정민)가 고군분투, 정의 실현으로 끝이 난다. 영화는 통쾌한 한 방을 날려 관객에게 대리만족을 시켰다. 현실에서도 일부가 벌을 받지만, 금세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잊힌다. 죗값을 달게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화가 아닌 현실의 모습이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하는 황정민의 대사도 뭉클하다. 우리는 돈이 없다. 하지만 돈이 있어도 행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재벌들이 있다. 그들의 행태는 스스로 창피하게 생각해야 하고
현실 같은 영화, 영화 같은 현실 때문에 관객들이 몰입해서 ’암살’과 ’베테랑’을 보고 사랑했던 거다. 31일 영진위 기준으로 각각 1219만명, 1081만명이 봤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두 영화는 비슷한 시기 쌍천만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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