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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종영한 MBC 드라마 ‘여자를 울려’는 김정은, 하희라, 이태란 등 이른바 ‘여걸’들의 전쟁터였다. 얽히고설킨 캐릭터들이 보여준 연기 대결에서 우열을 가리는 건 무의미한 일이었다. 다소 석연치 않은 전개도, 이들의 열연 앞에선 무색해졌다.
여자들이 울고 웃던 그 시각, 홀로 빛나는 남자가 있었다. 바로 강진우 역의 송창의다. 송창의는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을 묵묵히 지켜가는 순애보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크게 오열하거나 소리치지 않아도 묵직한 존재감으로 시청자를 잔잔하게 설득시킨, 배우 송창의가 보여준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진우의 대사 중 이런 게 있었어요. ‘쉽게 올 수 없는 사랑’이라 말하는 덕인(김정은 분)에게, ‘잊어버렸던 사랑이 떠오를 때 오면 된다. 나에겐 기다리는 것도 사랑이다’라고 말하죠. 입체적으로 표현돼야 할 때도 있지만, 사랑을 그런 대사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극중 강진우는 재벌가 막내아들로, 제대로 된 사랑 한 번 못해보고 정략결혼을 했다. 하지만 아내는 자살했고, 아들은 어머니의 죽음이 아버지 때문이라는 원망에 사로잡혀 방황하며 힘없는 친구들을 괴롭혔다. 그런 진우 아들의 폭행을 못이겨 차도로 뛰어들었다 황망하게 죽은 동급생의 어머니는 공교롭게도 진우의 뒤늦은 첫사랑, 덕인. 그렇게 진우는 덕인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끈을 이어간다.
“우여곡절이 많은 사랑이었어요. 진우의 아이 때문에 덕인의 아이가 죽었잖아요. 어쩌면 두 사람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게 현실이고, 시청자들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우셨을 거란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선 초반부터 그 내막을 염두에 두고 갔기 때문에, 한 사람은 용서를 해 나가고 또 한 사람은 용서를 바라며 가는, 이 같은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을 많은 생각과 함께 연기했습니다.”
다수의 드라마에서 소위 지르는 사랑 아닌, 삼키고 감내하는 사랑의 숭고함을 표현해온 송창의였다. 이미지 적으로는 ‘여자를 울려’에서도 크게 변화는 없었다. 다양한 변주를 꾀하고 싶은 게 배우의 생리라면, 때로는 답답할 법도 한데, 송창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사실 무대에서 하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꼭 임팩트 있는 캐릭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한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 캐릭터와 달리, 개인적으로는 저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편이거든요. 작품을 하면서 그런 사랑을 배워가는 것 같아요. 전작 ‘세결여’ 때도 그랬죠. 한없이 이해해주고, 기다려주고. 늘 미안하고 내 탓이라 여겼죠. 이런 사람이 있다면 세상이 너무 아름다울 것 같지 않나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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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도 늘 미안해하는데, 사실 이 사람이 무슨 죄를 그렇게 지었나 싶어요. 정략결혼 후 아내가 자살하고, 아이가 비뚤어진 환경에서 생활한 사람일 뿐인걸요. 하지만 이 사람의 마음이 진정성으로 다가갔기 때문에 (사랑이 가능했던 것 같고), 인물을 통해 여러 가지를 많이 배웠습니다.”
그는 “‘세결여’ 때도 이런 남자가 다 있나 싶었다”고 눙치며 “그 때도 ‘대인배 중의 대인배를 맡겨주신 데 대해 감사드렸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 송창의가 배우로서 가장 가치 있게 두는 지표는 바로 메시지다.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주는 데 동참하고, 그 부분에서 연기해나가는 게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사회에는 아직도 얘깃거리들이 많이 있잖아요. 제게 가치 있는 일이란,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 데 동참하는 거예요. 이번 작품도 학교폭력 가해 학생의 아버지, 그리고 잘못된 기성세대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도전하고 싶었고요. 시청률도, 상도 좋지만 첫 번째는 그 부분입니다.”
‘여자를 울려’는 중반 이후, 일각으로부터 ‘산으로 간 전개’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끝내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종영했다. “작가님이 얼마나 머리가 아프셨을까 싶다”는 그는 “진우 입장에선 분명 진우 죄는 아니지만, 환경이 만들어낸 죄, 재벌가에 막내아들로 태어난 죄, 그로 인해 용서를 구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던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용서와 화해의 드라마였고, 제 자리를 찾아가는 작품이었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따뜻함을 전달하고자 하는, 그 마음은 얼마나 따뜻한가. 그렇게 그는, ‘가슴으로 연기하는 배우’였다. 때로는 눈에 확 띄지 않아도, 그의 눈빛과 음성이 오랫동안 시청자의 가슴에 기억되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영화 ‘초록물고기’를 좋아합니다. 평범하면서도 일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마치 옆집 사는 사람을 관찰하듯 하는 그런 작품이요. 앞으로도 배우로서, 그게 악이든 선이든,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공감되고 이해되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psyon@mk.co.kr/사진 WS엔터테인먼트[ⓒ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