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감독조합, 1차 편집권 확보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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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편집 과정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못 들어오게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감독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버린 거죠. 최근 일이에요.”
A감독은 일부 투자배급사와 제작사들의 ‘갑의 횡포’를 폭로했다. 시대가 변했으니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는 말도 변한 걸까. 영화 현장에서 촬영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촬영 중임에도 감독들이 압박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감독 B도 “신인 감독들의 경우 별의별 일들이 많다”고 한탄했다. C 감독 역시 “그때 당했던 내 꼴이 우습다. 잊을 수가 없다”며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최근 한 메이저 투자배급사가 내놓은 영화는 혹평을 들었다. 손익분기점도 넘지 못했고, 감독은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연출력과 연기에 관련한 댓글은 혹평을 넘어 최악의 수준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작과정 중 감독의 의견 대부분은 무시됐다. 감독 탓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23일 서울 한 영화관에서 열린 ‘한국영화감독 표준연출계약서’ 공청회.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의 부대표인 한지승 감독이 “1차 편집권 확보가 표준연출계약서의 큰 수확”이라고 강조한 말을 이해하게 한 사례들이다.
한지승 감독은 “요즘 편집실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감독들이 배제되는 상황이 있다. 1차 편집권 확보는 특히 신인 감독들이 재능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들을 방지하자는 의미”라며 “감독의 색깔을 일단 보여주고, 이를 보고 괜찮다면 감독의 편집권을 인정하라는 요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편집권에서 자율권을 방해받는 감독들 사연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면 응당 필요한 조치다.
최근 영화감독과 제작사-투자사 간 논란은 심심치 않게 제기됐다. 2012년 이명세, 임순례, 박신우 감독이 처했던 감독 교체와 갈등이 대표적이다. 3년이 지난 지금 신인, 기성 감독을 막론하고 더 많은 불합리한 처사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감독의 권한을 확고하게 이야기할 연출자는 몇 안 된다는 게 공공연한 이야기다.
물론 한지승 감독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지금의 영화시장에서 감독이 최종 편집권을 갖게 해달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독이 1차 편집권만이라도 챙겨 연출 의도가 이랬다는 걸 확인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표준연출계약서는 고무적”이라고 강조했다. “이견 조율이 쉽지 않았는데 오랜 시간 한국제작가협회와 토론한 끝에 나온 합의 사항”이라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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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상 작품 대부분은 제작자에게 강제 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감독들의 권리 요구는 쉽지 않다. 다만 표준계약서에 기획 원안자를 확실히 적시하고, 수익분배구조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바람을 담았다.
현장에서 본격적으로 시험 운용할 예정인 표준계약서에는 투자배급사도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게 감독조합의 판단이다. 제작사와 감독 간 계약이기에 투자사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한국영화제작가협회로 창구를 일원화했을 뿐이지 투자사와도 수차 논의한 결과 나온 계약이다. 현재 감독조합은 표준계약서 최종본을 투자배급사에 전달한 상황이다. 아직 이렇다 할 답을 듣진 못했다.
DGK 법률고문인 법무법인 광장의 안혁 변호사는 “제협과 완벽한 합의를 이뤄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많은 부분을 의견 개진해 발전적인 표준계약서를 내놓은 게 의미가 있다”면서 “힘없는 신인 감독들의 상황은 더 심각한 경우도 많았다. 신인감독들이 제작사와 논의를 할 때, 대부분의 감독이 같은 표준연출계약서를 들고 온다면 제작사들
한 메이저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제작자와 감독, 투자사의 이견 조율 실패는 빈번히 있는 일”이라고 갈등을 인정하면서도 “서로가 최상의 선택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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